가수로 데뷔한 2011년 이후... 날 무너뜨린 섭식장애
거식증, 폭식증 같은 하위 질환명으로 더 잘 알려진 섭식장애(Eating Disorders)는 현상으로서의 증상만 놓고 보면 수 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뿌리 깊은, 인간적인 질환이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모임으로, 지난 2023년 2월 말 국내에서 첫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주최했다. 올해도 두 번째 행사(2/28~3/5)를 준비 중이다. 이번 연재기사를 통해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기획하고 준비해 온 과정과 고민을 펼쳐 보이고, 섭식장애를 경험한 당사자들과 가족, 치료자의 글을 통해 지금-여기 섭식장애의 진실을 밝히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더 자세한 소식은 여기(https://www.instagram.com/rabbitsubmarinecol/)서 확인가능하다. <기자말>
[바바라]
저는 가수이자 현재는 주로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올해 서른여섯 살인 저는 20대 전부를 가수 활동으로 보냈습니다. 지상파 데뷔를 준비하며 인생 처음으로 극단적인 수준의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고, 다이어트 늪에 빠진 것처럼 점점 더 아주 어두운 바닥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연예계 준비하며 시달린, 끊임없는 외모와 몸매 품평
▲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바바라. |
ⓒ 바바라 |
가수로 데뷔한 2011년부터 3년 동안 저는 다이어트약을 복용했고, 먹어도 괜찮은 음식이라고는 삶은 고구마와 생채식뿐이었습니다. 거기에 고강도의 운동을 병행하며 방송과 공연 스케줄을 소화했습니다.
뒤이은 것은 알코올중독이었습니다. 제가 속해 있던 소규모 기획사가 돌연 해체돼 버린 뒤, 새 회사에서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잠시 휴식기가 주어졌을 때였죠. 몇 년째 익힌 음식을 먹지 않고 술은커녕 음료수도 입에 대지 않고 살았던 저는, 술을 마시며 체중을 유지하는 방법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바바라. |
ⓒ 바바라 |
2014년부터 저는 일본에서 가수 활동을 하게 되었고, 보컬 트레이닝 일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밤마다 심해지는 알코올중독 증상은 여전했고, 기이한 섭식장애 행동 역시 계속됐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170cm의 키에 체중은 52kg 수준이었고, 근육량이 심각하게 줄어든 상태였기 때문에 툭하면 다치고 뼈가 부러지기 일쑤였습니다.
다이어트약 중독에 알코올중독... 내면 직시가 두려웠다
언젠가는 피부과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었고, 병원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5.5까지 떨어진 것이 발견돼 바로 입원해 응급으로 피를 수혈받기도 했습니다. 몸이 심각한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가수 활동을 하며 받은 정신적 고통과 내 몸에 대한 증오를 잊으려 저는 더더욱 술을 마시고 고용량의 다이어트약을 삼켰습니다.
역시 거식증과 알코올중독을 겪었던 미국 작가 캐럴라인 냅이 책 <욕구들>에 그렇게 썼었죠. 자신은 알코올중독 증세가 가장 심각했을 때 일중독에도 빠져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는 계속 올라갔다고요. 저 또한 알코올중독과 다이어트약 중독으로 매일 밤 스스로를 망가뜨리면서도 일에는 계속 매달렸습니다.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모든 폭력을 스스로 막아낼 힘도, 저를 지켜줄 만한 가까운 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굶고, 약을 먹고, 술을 마시고, 폭식하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매일 일상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비밀스럽게, 또 아주 지독하고 끔찍하게 혼자 스스로를 죽여가고 있었습니다.
2018년, 기획사와의 갑작스러운 계약 종료로 가수 활동이 공식적으로 끝이 난 뒤에야, 저는 정신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망가져있는지는 몰랐던 제게 내려진 진단은 중증 우울증, 범불안장애, 높은 수준의 알코올 의존도였습니다.
게다가 심장 근육에 매우 해로운 고용량의 식욕억제제(다이어트약)를 약 8년간 매일 복용해 온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병원에선 우울증 치료와 중독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심리상담도 시작하며 그동안 무서워서 들춰보지 못했던 제 삶도 하나하나 되짚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망치는 행위도 충분히 괴로웠지만, 거기서 빠져나와 회복하는 과정은 몇 배로 더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게 괴로워 다시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좋은 전문가들이 곁에 있었지만 늘 외로웠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알아주는 건 술과 다이어트약뿐인 것 같았습니다.
치료 6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금주에 성공한 지도 3년이 다 되어갑니다. 다이어트약을 끊은 것도 1년이 넘었습니다.
회복은 나를 기다려주는 시간... 그럼에도 감사하는 이유
섭식장애에서 빠져나오는 회복의 시간은 곧 나를 기다려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복해서 스스로를 망치기만 했던 제 자신을 몇 백 번이고 참아주고 위로해주어야 했습니다. 끊임없이 저와의 관계를 다져온 6년이라는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괴로우면서도 가장 멋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요.
저는 현재 허리 디스크 치료를 받고 있고, 만성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고, 여전히 밤에 자던 중 깨어나 무언가를 먹다가 잠들어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을 갖고 있습니다. 굶으며 학대하던 시절 두 번이나 부러진 왼쪽 발목은 재활 타이밍을 놓쳤고, 또 갈비뼈가 골절되는 등 후유증이 있었습니다. 허리 디스크는 그 뒤 찾아온 추가 후유증일 겁니다.
섭식장애는 마음의 도미노처럼 느껴집니다. 한 번 굶어봤을 뿐인데. 한 번 다이어트약을 먹어봤을 뿐인데, 그 행동은 마치 도미노처럼 저의 정신과 건강을 차차 무너뜨렸습니다.
▲ 바바라는 현재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하며 가수를 꿈꾸는 십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
ⓒ 바바라 |
그럼에도 저는 제가 그 지옥에서 빠져나와 오늘을 사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근엔 제가 있어야 할 자리,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을 고백해, 현재 섭식장애와 싸우는 청소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찾는 중입니다.
저는 현재 입시 보컬을 가르치는 강사입니다. 대학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을 꿈꾸는 수많은 지망생들,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아이들, SNS 인플루언서를 꿈꾸며 노래하는 아이들을 매년 만나고 있습니다.
2011년 당시 제가 겪었던 다이어트 압박과 끔찍한 언어폭력, 여자 가수에 대한 최악의 인식은 13년이 지난 지금 나아졌다곤 하지만, 그럼에도 잔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스스로 내재화하는 '마른 몸'에 대한 선망은 한층 더 심해져 있습니다. '마른 몸'이 좋다는 식의 미디어 메시지, 노골적인 외모지상주의, 상술이 우선이 되어 식욕억제제 처방을 남용하는 의료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은 휘둘리며 상처받고 건강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가 섭식장애와 식욕억제제 오남용에 대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학교 등 교육 현장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의무 실시하길 바랍니다. 십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 제가 어렸을 때 곁에 좋은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아이들에게 다양한 몸에 대한 긍정을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걸 알려주고, 지금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걸 깨닫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와 매일 대화하고, 또 세상의 메시지를 자기 시선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드럽고 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사회의 몫이길 바랍니다.
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섭식장애 인식주간의 한 세션을 맡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에 출연하고 최근 <이것도 제 삶입니다> 회고록을 출간한 박채영님과 무대에 섭니다. 오는 3월 3일 일요일 저녁 7시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콘서트 제목은 '눈속임 지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에요.
저는 섭식장애와 중독 경험을 노래에 녹여낸 여성 뮤지션 곡을 부르려 합니다. 함께 공감과 연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바바라는 2011년 < Neo Beat Generation >이라는 앨범으로 데뷔한 소울 가수이자 현재는 가수를 꿈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컬트레이너입니다. 오는 3월 3일 섭식장애 인식주간에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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