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수만명 몰렸는데…'생숙' 수분양자들 거리 나온 까닭
생활형숙박시설(생숙) 수분양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오는 8월 준공을 앞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의 ‘롯데캐슬 르웨스트’ 수분양자들이 23일 오후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시행(마곡마이스PFV)·시공사(롯데건설) 측에 해결을 촉구하는 집단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은 현재 생숙을 거주 용도로 사용할 경우 올해 10월부터 이행강제금(시가표준액의 10%)을 부과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더해 최근 금융권 대출 한도가 크게 줄면서 잔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시행·시공사 측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지난 20일에는 안산시청 앞에서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인테라스’ 수분양자들이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롯데캐슬 르웨스트’ 수분양자 송모씨는 "대부분의 수분양자들이 최초 분양 받을 당시 향후 시설을 주택으로 쓸 수 있고, 분양가의 70% 정도를 대출 받을 수 있다는 시행사의 안내를 받았다"며 "그런데 지금 와서 생숙은 거주가 불가능한 부동산 상품으로 위험성이 크다며 분양가의 20% 정도만 대출이 가능하다는 금융권 설명을 듣고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는 대출이 막혀 잔금을 치르지 어려울 경우 전세를 놓을 수 있지만, 주거시설이 아닌 생숙은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롯데건설은 이 생숙의 시공을 맡았으며, 시행사인 마곡마이스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의 지분(22.4%)을 보유하고 있다.
롯데건설 측은 이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분양공고시 주택 용도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공고문에 표기했고, 위반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는 내용의 확약서도 받았다”며 “지난해보다 금융권 대출 한도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수분양자들의 주장처럼 분양가의 20~30% 수준은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건축법 적용받는 변종주택 '생숙'
레지던스라고도 불리는 생숙은 건축법과 공중위생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변종(變種)주택’이다. 2012년부터 도입됐는데, 당초 장기투숙 수요에 맞춰 손님이 자고 머물 수 있도록 취사 시설을 갖춘 숙박시설로 분양됐다. 하지만 전입신고가 가능하고 거주에 불편함이 없는 데다 건축법령에서 특별한 규제도 없어 숙박업소가 아닌 주택으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아파트 겹규제로 집값이 크게 오른 2020~2021년에는 ‘생숙 청약 광풍’이 불었다. 아파트 청약과 달리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재당첨제한, 거주의무 기간, 전매제한 등에서도 자유로와서다. 이렇다 보니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가 ‘불나방’처럼 생숙 청약에 모였다. 실제 당시 마곡지구 ‘롯데캐슬 르웨스트’도 876실 모집에 57만5950건의 청약 건수가 접수돼 평균 657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건설·시행사들도 아파트 분양가 규제 등을 피해 생숙이나 오피스텔로 눈을 돌렸다.
정부는 투기 조짐이 보이자 규제를 강화했다. 2021년 5월 건축법 시행령을 고쳐 숙박업 신고를 의무화하고, 주거용으로 사용 시 이행강제금 부과를 결정했다. 소유주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이행강제금 부과를 2년간 유보하고, 주거용 오피스텔로의 용도변경 시 건축기준을 일부 완화하는 특례를 적용했다.
하지만 오피스텔 용도변경 특례는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592개 단지 10만3820실의 생숙 중 오피스텔로 변경된 단지는 1173가구(1.1%)뿐이다. 오피스텔로 전환하려면 분양 계약자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주차장 등 건축기준도 맞춰야 하는데 이미 준공한 경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생숙 소유주들의 주장이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이행강제금 부과를 1년 더 연장했지만, 용도변경 특례는 더 이상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준주택으로 변경"…국토부 "원칙 변함없다”
앞으로 생숙을 둘러싼 마찰은 더 커질 전망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청약 광풍’이 불던 2~3년 전 분양한 생숙이 올해와 내년 1만3000여실 가량 준공될 예정이라서다.
부동산 시행·건설업계는 정부에 생숙을 오피스텔과 같은 준주택으로 인정해달라며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 관계자는 “당장 주거시설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는데 규제가 과도하다”며 “서울·수도권 주택 공급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생숙과 같은 비아파트 시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거와 숙박 기능을 담은 ‘하이브리드형 체류형 주거시설’의 하나로 생숙이 활용될 필요가 커지고 있다”며 “생숙을 주택법상 준주택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생숙 규제만 풀 경우 다른 건축물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올해 10월까지 숙박업 신고 계도기간을 주고, 이를 어기면 이행강제금으로 부과한다'는 원칙에서 달라진 게 없다”며 “추가적인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검토도 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비아파트 규제 완화 요구에 관한 청원’ 검토 보고서를 통해 “생숙은 통합 주거서비스(식사·세탁·청소 등)을 결합한 새로운 주거형태임을 감안할 때, 주택과 유사한 수준으로 필수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에 한해 준주택 포함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적었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동안 5만명의 동의를 받아 제출하면 그 내용에 따라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된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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