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에 韓 방산만 뜬다고?…세계 방산시장 판도 바뀐다 [Focus 인사이드]

방종관 2024. 2.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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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같이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무는 개별 문제나 세부적인 사항(detail)이고, 숲은 큰 그림(big picture)을 의미한다. 방위산업(이하 방산) 측면에서, 언론에 수시로 보도되는 수출계약 소식은 전자라고 볼 수 있다. 세계 방산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면 이는 후자에 해당한다. 후자의 관점에서, 세계 방산시장의 최근 동향을 3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


미국의 압도적 위상 강화

세계 방산시장에서 미국의 위상은 압도적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5년 단위로 세계 방산시장의 국가별 점유율을 발표하고 있다. 2013∼2017년과 2018∼2022년을 비교하면, 미국의 점유율은 33%에서 40%(+7%P)로 증가했다. 2023년 1∼9월, 무기수출 계약 총액은 800억 달러로서 이는 평년의 5배에 해당한다. 2023년, 세계 100대 방산기업 분포에서도 미국의 비중은 전년 42개에서 51개로 9개나 늘어났다. 이를 종합하면, 미국의 시장 점유율이 조만간 50%를 초과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단지 시간문제일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 방산기업인 록히드마틴의 F-35 생산 시설. 록히드마틴


이러한 추세 속에서 미국은 방위산업을 재정비하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발간된 『국가방위산업전략서(NDIS)』가 대표적이다. 문서의 위상 측면에서 ‘일반문서’를 국방부 ‘기획문서’로 격상하고, 목표ㆍ4대 중점ㆍ25개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공급망의 회복 탄력성(Resilient Supply Chains)을 강조하고 있다. 생산설비 증설, 인력 확충, 설계ㆍ생산의 디지털화 등이 포함된다. 흥미로운 점은 부품 공급라인에 중국 업체 655개(10년간 4.2배 증가)가 포함된 것에 대해 우려한다는 점이다. 공급망의 재편과정에서 배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방위산업의 상대적 쇠퇴는 미국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시장 점유율이 증가하던 시기에 러시아는 22%에서 16%(-6%P)로 감소했다. 2014년 크름반도 병합으로 시작한 서방의 제재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러시아 무기의 문제점이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2023년 11월, UAE 방산 전시회에서 러시아도 다수의 무기를 전시했지만, 계약 실적이 전혀 없는(서방국가는 670억 달러) ‘굴욕’을 당한 바 있다.


서유럽 재건과 동유럽 진출

탈 냉전시기, 유럽에서 대규모 재래식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국방예산이 줄어들면서 방위산업도 축소됐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러한 흐름을 반대로 돌려놓았다. NATO 회원국(31개) 중에서 국방예산이 GDP 2%를 초과하는 국가의 숫자는 2014년 3개에서 2024년 18개로 늘어날 것이다. 독일도 재무장을 선언하고, 1000억 유로(약 144조원) 규모의 특별방위기금을 편성한 바 있다.

유렵의 대표적 방산기업인 BAE Systems의 연구 시설. BAE Systems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이 방위산업 재건에 나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독일 정부는 무기수출 승인 관련 기준을 완화하고, 절차를 간소화했다. 프랑스 방산기업들도 수출을 늘리려고 현지생산과 기술이전을 확대하고 있다. 라인메탈ㆍBAE Systems 등을 포함한 주요 방산기업들은 생산 설비를 증설하고, 수천 명 단위의 인력을 추가 고용하고 있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한다면 ‘유럽의 안보자강’은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위산업은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서 최우선 순위를 부여받을 것이다.

또한, 서유럽 방산강국들은 적극적으로 동유럽 시장 확보에 나서고 있다. 독일 라인메탈은 “우크라이나에 연간 400대 규모의 전차생산 공장을 설립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ㆍ프랑스의 방산 업체들도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화포ㆍ장갑차 생산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했다. 유럽 방산기업 CEO들은 노골적으로 ‘유럽산 무기 구매가 우선이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한국 방산의 동유럽 시장 확대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방산 신흥 국가들의 부상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 방산시장에서 한국만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물론, 한국의 도약이 두드러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스라엘ㆍ튀르키예의 방산수출 역시 대폭 증가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중동 지역에서도 일부 국가들이 단순한 무기 수입에서 탈피해 방위산업 육성과 세계 방산시장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UAEㆍ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적이다.

UAE의 방산전시회 IDEX 2023 모습. IDEX


이스라엘의 세계 방산시장 점유율은 2.3%이다. 순위로는 한국에 이어서 10위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방위산업은 한국의 롤 모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수출 중심이고,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국방과학기술도 한국보다 2단계(세계 7위) 앞서 있다. 2010년대 후반, 한국의 수출액이 20억∼30억 달러였던 시기에 이스라엘은 50억~70억 달러를 달성했다. 2022년, 한국이 172억 달러를 수출해 이스라엘(약 110억 달러)을 처음으로 추월한 것이다. 2023년, 독일에 고고도 지대공 요격미사일 애로우-3(미국 THAAD와 유사), 덴마크ㆍ네덜란드에 PLUS 다연장로켓 수출을 계약한 바 있다.

최근, 튀르키예는 무인기를 중심으로 방위산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활약한 ‘TB-2 바이락타르(Bayraktar)’가 대표적이다. 이미 30여개 국가에 수출하여, 미국 프레데터(Predator) 계열의 시장 점유율을 추월했다. 특히, 개발업체인 바이카르(Baykar)는 무인기만으로 17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으며, 총 매출 대비 수출의 비중이 80∼90%에 달한다. 최근, 바이카르는 튀르키예 최대 방산기업으로 성장했으며 2023년 국가 방산수출 총액 55억 달러(세계 12∼13위로 추정)의 30%를 담당하고 있다.

UAE는 1990년대 중반부터 중동 최대의 방산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국영 ‘EDGE Group’를 설립해 기본화기ㆍ장갑차 등을 국산화하고, 선진국과 공동 개발한 단거리 미사일의 수출을 추진할 정도이다. 최근, 무기수입이 41% 줄어들었고, 세계 방산시장의 20위 이내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비전 2030’에 방위산업을 포함하고 있다. 국부펀드를 활용하여 설립한 국영기업 ‘SAMI’는 세계 100대 방산기업에 포함될 정도로 성장했고, 2022년부터 격년 단위로 방산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군사 격언에 “어떠한 전술적 성과도 전략적 실패를 만회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상위 차원의 상황판단과 결심이 잘못되면, 하위 차원에서 단편적인 성과가 있을지라도 결국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세계 방위산업의 판도가 격변하고 있고, 한국의 방위산업은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한국 방산이 누렸던 강점도 효과가 약화하고 경쟁은 가열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세계 방산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방종관 서울대학교 산학협력교수ㆍ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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