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시스템 발전이 경제위기를 부른다?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입력 2024. 2.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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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불안정한 경제 안정화시키기

책의 저자는 하이먼 필립 민스키다. 미국의 포스트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이며 워싱턴대 교수, 바드대 레비경제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금융 시스템 변동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금융위기의 취약성과 특징에 대해 집중 탐구했다. 1980년대 몰아치던 금융 규제 완화 유행에 반대하고, 중앙은행의 금융 안정 역할을 강조해 정부의 금융 시장에 대한 개입을 지지한 학자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불안정한 경제 안정화시키기’ ‘케인스 혁명 다시 읽기’ ‘대공황은 다시 발생할 수 있는가: 불안정성과 금융에 관한 에세이’ 등이 있다.

하이먼 필립 민스키
2008년 금융위기, 죽은 민스키를 살려내다

책의 초고가 쓰인 1986년은 미국이 인플레이션과 사투를 벌이던 시기다. 다들 경제 불안정이나 경제위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부나 학계 모두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에만 몰두했다. 민스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 상황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경제 대공황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민스키 또한 그의 연구 주제인 금융위기와 금융 안정이 당시에는 관심받는 주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책이 집필된 시대보다 주목받게 된 시기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민스키는 훌륭한 연구자였지만, 살아생전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민스키와 그의 책이 처음 관심받은 때는 러시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이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중 하나인 ‘핌코’의 펀드매니저 폴 매컬리가 민스키 이론에 주목했다. 당시 세계 자본 시장은 악순환에 빠진 상태였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시장이 폭락할까 봐 혹은 다른 투자처에서 손실을 보고 현금이 필요해진 투자자들이 갖고 있던 자산을 헐값에 팔았다. 값싼 자산이 쏟아지면서 시장 전체 자산 가격이 폭락했고, 이는 더 심한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매컬리는 이런 상황이 민스키 이론과 매우 유사하다고 느껴 이를 ‘민스키 모먼트(Minsky Moment)’라고 불렀다.

그러나 1990년대 말 금융위기가 종식되고 21세기 초입의 경제 황금기를 맞으며 민스키와 그의 책은 다시 사람들 뇌리에서 잊혔다. 그리고 인류는 그 망각에 대한 대가를 다시 치러야 했다. 전 세계 경제의 방향성을 바꾼 2008년 금융위기를 마주하면서 말이다.

2007년 부동산담보대출이 부실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경제위기가 시작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시장에 엄습할 무렵,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경제지들이 민스키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신호탄이라고 이야기되는, 월가에서 다섯 번째 규모를 자랑하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부실 자산으로 인해 JP모건에 인수되던 2008년 3월, 민스키는 드디어 재평가받게 됐다.

금융이 불안정하면 경제위기가 닥친다

책의 초반부 내용은 평이하다.

첫 장에서는 일반적인 경제 시스템의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 뒤이어 정부가 어떻게 경제위기를 막을 수 있는지 소개한다. 1975년의 일을 예로 든다. 경기 침체 징조가 나타났을 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 역할을 맡았다. 그로 인해 당시 경기 침체가 더 심각한 경기 불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불황을 막았던 정부 정책의 원리를 자세히 분석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과 설명을 토대로 금융 불안정성 가설을 주장한다.

가설 내용은 대략 이렇다. 호황을 맞으면 기업 이윤이 점차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기업가의 수익에 대한 기대는 올라간다. 사업가들은 낙관론을 펼치고 이는 곧 투자 증대로 이어진다. 투자 증대는 당연히 부채 증가를 유발한다. 낙관적인 기대가 유지되면, 낙관론은 투자자와 투기자에게 전염된다. 산업계와 금융계에 낙관론이 만연한다. 기업은 돈을 빌리기 더 쉬워지고 계속해서 부채가 증가한다. 금융이 발달해 있다면 부채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모두가 낙관론에 빠진 시기, 위협은 조심스레 다가온다. 호황이 지속돼 생산량이 많아지면 인플레이션이 낮아져 물건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동시에 부채가 누적된다. 이자 비용이 늘어나고 기대수익은 낮아진다. 그러나 발전된 금융은 이 기업들의 사업이 유지될 수 있도록 현금을 계속해 조달해(빌려)준다. 어느 순간, 기업이 더 이상 채무를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특히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할 때, 불어난 채무가 기업을 덮친다.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 기대수익이 순식간에 낮아져 증가한 부채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채권자들은 기대수익이 낮아진 기업에 계속해서 돈을 빌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출이 막힌 다수 기업은 빚을 상환해야 한다. 기업들이 채무 이행을 위해 자산을 동시에 팔면 자산 가격은 폭락하고 우리는 금융위기를 겪는다.

민스키는 ‘금융 불안정성 가설’을 토대로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는 이유를 파헤친다. 과도한 낙관론이 탄탄한 기업까지 연쇄적으로 도산 위험에 노출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 금융 시스템 불안정으로 건실한 기업마저 도산하는 시기를 금융 시스템 붕괴의 시작점으로 본다. 여기서 따온 개념이 1998년 금융위기 때 폴 매컬리가 언급한 ‘민스키 모먼트’다.

다시 금융위기가 닥치면 주목받을 책

그러면 금융이 발전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런 불안정성과 금융위기의 위험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대해 민스키는 “본래의 케인스주의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해답을 내놓는다. 민스키가 주창한 ‘본래의 케인스주의에 입각한 정책’이란, 자본의 구조조정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 그리고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최종 대부자 역할로 정리할 수 있다. 단순하게 큰 정부, 큰 중앙은행이 아닌 명확한 공리적 목적을 갖고 전 경제적인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 민스키는 자본의 구조조정 과정을 회피하고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학파 주장에 반대한다. 이는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하고, 정의에 어긋나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스키는 금융을 주시한 경제학자다. 1900년대 많은 경제학자가 금융과 투자의 실무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경제학은 금융과 투자를 공부하는 학문이 아닌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시장 참여자 개인 수준(미시)과 경제 전체 수준(거시)에서 고민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스키는 다른 경제학자와 달랐다. 금융정책기관, 중앙은행 그리고 월가 금융기관들과 교류하며 금융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졌다. 특히 워싱턴대에 재직할 때 만든 마크트웨인 은행과의 긴밀하고도 오래된 관계는 그에게 금융기관 관점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금융위기를 바라볼 기반을 만들어줬었다. 민스키는 케인스, 피셔, 칼레츠키, 슘페터 등의 저명한 경제학자들 주장을 체득하고 여기에 금융 현장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적용해 다양한 글을 써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쓰인 ‘불안정한 경제 안정화시키기’는 인류가 금융위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민스키 모먼트라는 단어를 만든 매컬리는 2008년, 이 책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민스키의 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가치가 있다. 헤지, 투기 그리고 폰지 단위로 완성된 그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은 지난 반백 년 동안 미국의 부동산과 부동산담보대출 시장에 완벽하게 적용됐다.”

비록 살아생전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민스키와 그의 저서는 금융 산업과 금융기관에 의한 경제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우리가 금융위기를 걱정하는 한,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경제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7호 (2024.02.21~2024.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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