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억 썼는데 VVIP 탈락하셨네요···백화점 고객 관리 깐깐해졌네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4. 2.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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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뉴엘 블랙, 트리니티, 쟈스민 블랙, PSR블랙. 롯데·신세계·현대·갤러리아 등 국내 4대 백화점 VVIP(최상위 등급 고객)를 지칭하는 용어다. 각 백화점은 이들에게 발레(대리주차) 서비스는 기본, 그들만을 위한 편의 공간 제공, 한정판 명품 먼저 구매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 최근 백화점 VVIP 마케팅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등급을 신설하거나 종전 최상위 등급 기준을 높이는 등 ‘물 관리’에 들어가면서 더더욱 희소성을 키우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대백화점이 지난해 신라호텔에서 VVIP 400여명을 초청해 진행한 프라이빗 행사에서 사회자가 미슐랭 3스타를 21년 연속으로 획득한 파리 포시즌스 호텔 프렌치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 ‘크리스티앙 르 스케’를 소개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VVIP 왜 공들이나

명품 매출의 30% 이상 차지

백화점이 VVIP를 등급제로 나눠 특별 대우하는 이유는 뭘까.

이들 매출 비중이 절대적이어서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본점의 경우 명품 매출의 30% 이상이 이들에게서 나올 정도”라며 “지속적인 관리, 재방문 유도를 통해 ‘록인 효과(Lock in·자물쇠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 시절 백화점 매출이 뚝 떨어졌을 때도 각 백화점이 전담 직원, 일명 ‘퍼스널 쇼퍼’를 구성, 원격으로 명품 쇼핑을 대행하는 등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면서 매출 방어에 성공했던 사례는 지금껏 유통가에서 회자된다.

각 백화점은 보다 쾌적하고 동선이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이들의 체류 시간을 극대화해 추가 매출을 올리려 한다.

이런 전략이 실제 매출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남경숙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교수팀의 2021년 논문(백화점 내 휴게 공간의 사용자 중심 디자인 특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백화점에서 소비자가 체력과 정신적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구매 시간 연장의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현대백화점이 최고 등급 전용 고객 편의 공간인 ‘쟈스민 블랙 라운지’를 덴마크 출신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데이비드 툴스트럽’에 의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특유의 모던한 분위기, 한옥의 대들보를 형상화한 천장과 창호 등 한국 전통 건축 기법을 다양한 소재와 결합해 품격을 높였다’고 홍보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백화점 인력 관리,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도 VVIP 마케팅은 이점이 있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이들 전담팀을 운영하는 것이 어찌 보면 추가 인력을 써야 해서 비용 부담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일종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강화했을 때 기대 이상의 매출이 나올 수 있고 해당 인력도 전담 고객만 관리하면 되기에 피로도가 오히려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저성장, 고금리로 경기 침체 여파에 백화점 매출액이 최근 꺾이고 있지만 명품 시장만큼은 성장세가 살아 있다는 점에서 ‘큰손’ VVIP 관리 중요성은 더해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최근 발간한 ‘스테이트 오브 패션 2024(State of Fashion 2024)’ 보고서에서 올해 명품 패션 산업 성장률을 3~5% 수준으로, 비(非)명품 패션 산업 성장률 2~4% 대비 높다고 전망했다.

어떤 혜택 있길래

그들만의 파티, 100% 사전 예약 라운지 이용

“발레 서비스도 좋지만 무엇보다 라운지에서 쾌적하게 쉴 수 있고 꼭 매장에 가지 않아도 퍼스널 쇼퍼에게서 신상품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신세계백화점 VVIP 등급인 트리니티 회원 A씨 얘기다. 트리니티 회원이 되려면 신세계백화점 전체에서 개인 매출 최상위권에 들어야 하고, 이 중에서도 소정의 심사 과정까지 거쳐야 한다. 트리니티 회원이 되면 백화점 상품 최대 10% 할인, 전 점 VIP 라운지 이용, 전 점 발레와 무료 주차(종일), 신세계 클래식 페스티벌, 마티네 콘서트 등 문화 행사 초청, 기념일·명절 기프트, 1:1 퍼스널 쇼퍼 서비스, 신세계 아카데미 할인·우선 접수 서비스, 신세계인터내셔날·면세점·까사미아와 프리미엄 아울렛 사이먼 최상위 멤버십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일반 고객이 누릴 수 없는 경험도 VVIP에게는 빈번하게 제공된다.

현대백화점이 지난해 신라호텔에서 VVIP 고객 400여명을 초청, ‘프라이빗 파티’를 진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21년 연속 미셰린 3스타를 획득한 파리 포시즌스 호텔의 총괄 셰프 ‘크리스티앙 르 스케’가 직접 만든 코스 요리와 유명 가수의 공연으로 구성, 호평을 받았다. 이 밖에도 VVIP 고객 100여명을 대상으로 경기 소재 유명 골프장 전체를 대관해 KPGA 골프 프로와 동반 라운딩(프로암)을 진행하는 등 ‘남다른 경험’을 주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인다. 이들에게 주요 특급 호텔·공항 발레파킹, 상시 할인·한도 제한 없는 10%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것도 눈길 끈다.

프라이버시 보호도 부쩍 신경 쓰는 분위기다.

갤러리아백화점 최고 등급인 PSR블랙 멤버는 퍼스널 쇼핑 공간이자 라운지인 ‘PS룸’을 100% 사전 예약제로만 운영한다. 백화점 관계자는 “PSR블랙 회원이 머무는 시간 동안 프라이빗 쇼핑, 퍼스널 쇼퍼의 1:1 맞춤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자격 기준 강화…물 관리도

롯데는 MVG 대신 에비뉴엘 블랙 신설

‘아비투스(habitus).’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을 뜻하는 말로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이다. 이 단어를 딴 책 ‘아비투스(도리스 메르틴 저)’를 보면 최상층은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등 총 7가지 자본의 아비투스를 갖춰야 한다고 썼다. 이 중 문화 자본은 돈만 있다고 단숨에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일정 자격에 사회적 위상, 품격, 교양 등을 두루 갖춰야 한다는 것이 책의 골자다.

이채호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백화점 VVIP 등급제도 이런 경영 철학 아래 운영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파텍필립이나 에르메스가 초고가 제품을 살 때 이전 구매 이력 등 여러 기준을 채우게 하는데 그 이유는 진짜 그 명품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지, 충성 고객인지를 따져 철저히 우대해주며 재구매를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백화점 역시 최고 등급 심사 때는 단순 1인당 구매액 외에도 얼마나 오래, 자주 백화점을 이용했는지, 평판은 어떤지 등 소위 ‘문화 자본’까지 따져 계층 상승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각 백화점이 등급 기준을 잇따라 높이는 건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 현대백화점은 기존 최고 VIP 등급인 ‘쟈스민 블랙’의 연 구매액 기준을 1억2000만원 이상에서 1억5000만원 이상으로 상향했다. 여기에 더해 본점·무역센터점·판교점의 쟈스민 블랙 고객 중 구매액, 방문 일수 등을 따져 ‘프레스티지’ 등급을 올해부터 신설, 이들을 따로 관리하며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신세계백화점은 ‘트리니티’ 회원제와 별도로 다이아몬드 등급을 7000만~1억원 이상으로 1000만원 올렸다. 트리니티와 다이아몬드 등급 사이에는 연간 구매 금액이 올해 기준 1억2000만원인 새로운 등급(가칭 VIP)을 내년에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 종전 플래티넘, 골드 기준 금액도 1000만원씩 올렸다.

롯데백화점은 종전 ‘MVG’ ‘VIP’ 등급제를 올해부터 ‘에비뉴엘’로 바꾸고 블랙, 에메랄드, 퍼플, 오렌지, 그린으로 나눴다. 최고 등급인 에비뉴엘 블랙은 신세계 트리니티처럼 자체 선정 기준으로 정해 특별 관리한다. 에비뉴엘 퍼플 등급은 종전 연간 구매 실적 4000만원, 6000만원이었던 것을 올해부터는 1000만원씩 올렸다.

갤러리아백화점 역시 VIP 상위 등급인 ‘PSR WHITE(화이트)’ 기준을 연간 구매 금액 1억원 이상에서 1억2000만원 이상으로 상향했고 ‘Park Jade(파크제이드) 블랙(7000만원)’ ‘Park Jade 화이트(5000만원)’도 최근 각각 1000만원씩 올렸다.

갤러리아백화점 광교점 VIP 라운지. (한화갤러리아 제공)
등급 강화 계속될까

소수 정예·특별 대우 니즈 커

각 백화점이 이처럼 일제히 VIP 등급 기준을 강화하면서 기대하는 효과는 뭘까.

한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종전 라운지 이용 고객이 코로나19 이후 급증하면서 쾌적한 쇼핑에 방해가 된다는 종전 VIP 고객 불만이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고도의 행동경제학 전략이 숨어 있다고 분석한다.

경영 컨설팅 회사 사이먼쿠처코리아의 노정석 대표는 “흔히 정치학에서 주로 쓰이는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편승 효과)가 경영학에서는 ‘따라 소비하려는 심리를 자극한다’는 쪽으로 해석된다”며 “VVIP 등급을 높여놓으면 그 기준을 채우기 위해 좀 더 고객들이 많은 돈을 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등급 강화, 세분화를 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상도 뒤따른다. 이채호 교수는 “VVIP 멤버들은 VVIP 등급이 더 높아질수록, 즉 상위 그룹에 속하기가 더 어려워질수록 특별 대우 인원은 줄어드는 대신 혜택은 늘어날 것을 기대해 소수 정예를 원할 것”이라며 “이런 욕구를 반영하다 보면 백화점 VVIP 등급 요건은 매년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7호 (2024.02.21~2024.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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