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대통령 마주칠 기회 있다면, 입조심하세요 [안호덕의 암중모색]

안호덕 입력 2024. 2. 2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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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덕의 암중모색]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 2024년에 벌어지는 일들

[안호덕 기자]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할 때 R&D 예산과 관련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을 향해 항의를 하던 중 제지를 당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성희 의원이나 신민기 대변인은 해당 행사 구성원이면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통령이 참석한 중요 행사를 망치는 걸 사전에 계획하고 실행했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아래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연구개발(R&D) 예산 복원을 외치던 졸업생이 경호원들에게 들려 나간 사건에 대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보험금을 뜯어내는 보험 사기범 행태가 떠오른다고 비난했다. 

졸업생은 정당 대변인이기 전에 카이스트에서 공부한 공학도였다. 행사를 망치는 걸 사전에 계획했다는 건 밝혀지지 않는 추론일 뿐이다.

윤재옥 원내대표 주장대로 논란이 된 행위가 보험 사기라면 가해자는 R&D 예산 복원을 외친 졸업생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교육부만 해도 2024년 R&D 사업예산을 전년 대비 60% 삭감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대학의 석·박사 과정 연구자들이다.

야당과 과학계 등에서 온갖 우려가 나왔음에도 과학기술계 카르텔 때문에 부정하게 사용되었다며 R&D 예산을 난도질한 게 윤석열 정부다. 졸업생들의 분노가 뻔히 보이는데도 단상에 올라 "여러분의 손을 굳게 잡겠다"던 대통령, 항의를 유발하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염치없는 축사다.

지나간 과거인 줄 알았는데

졸업식은 졸업생들의 잔칫날이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박수쳐주고 격려해야 할 손님이다. 대통령 축사를 듣기 위해 졸업생과 가족들이 모여든 것도 아니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주인공인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끌어낸다는 것은 상식 이하의 행위다. 국민은 항상 대통령을 중심으로 서야 하고 엄숙하게 박수를 쳐야 한다는 건 독재정권에서나 있을 수 있는 발상이다.

대통령 행보에 기업 총수들을 병풍 세우고, 명품백을 '조그만 백'이라고 부르는 부끄러운 저자세에 "박절하지 못해서"라고 응답하고, 듣기 싫은 소리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는 광경. 지나간 과거인 줄 알았는데 너무 자주 등장한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지목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취임 3년 차 대통령에게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야당의 이야기도, 언론의 비판도, 국민들의 외침조차 듣지 않는다.

대통령 주장에 반하면 야당도 척결해야 할 이권 카르텔이 되고 방송국도 국익을 해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를 성토했던 대통령은 취임 3년 만에 권력의 힘으로 국민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 절대 권력자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열한 번째, 부산이 활짝 여는 지방시대'에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 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의 안건 발표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가 12회를 넘겼다. 대통령이 민생 경제를 위해 소통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되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그런데 토론다운 토론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언론에 비치는 대통령의 모습은 토론 속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게 아니라 공약 발표하듯 대통령이 발언하고 참석자들은 박수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대통령 발표 내용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 많다. 첨예한 이해관계 때문에 추진 속도보다는 과정이 중요시되는 것들도 한둘이 아니다. 야당과 이렇다 할 정책 조율 한번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약속들은 적절성과 실현 가능성 모두 의심될 수밖에 없다.

"재탕, 삼탕 정책 나열만 있고, 알맹이가 없는 맹탕 토론회." 12번째 민생토론회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이다. "총선을 앞둔 선거용 정책홍보행사"라는 비판도 덧붙였다.

R&D 예산을 왜 삭감했냐고 물을 수 있었다면, 여당에서는 김포 등을 편입시켜 서울 메가시티를 만들겠다는데 지방시대를 여는 게 가능한 일이냐고 물을 수 있는 토론회 자리였다면, 이런 비판을 피해 갈 수 있었다. 대통령 홀로 말하고 참석자들은 박수치는 사진들, 대통령실 누리집 민생토론회 1∼12차 홍보 사진은 장소와 참석자만 다를 뿐 거의 같은 모습이다.

'정치 좀 잘 하세요' 이런 말, 해도 될까?
 
 지난 1월 18일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전주시 덕진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며 참석자들과 악수하는 동안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해 끌려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이나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대 목소리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주장을 빠트리지 않는다. 야당의 특검법 추진도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한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에 대한 검찰 수사 요구도,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국정기조를 바꾸야 합니다'라고 말한 행위도, 카이스트 졸업생이 R&D 예산 복원을 외친 것도 모두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불순한 정치적 의도'라는 마법 같은 되치기 몇 번이면 대통령은 금세 피해자가 된다. 잼버리 파행, 오송 지하차도 참사, 채 상병 사망 등, 여러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에도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정부와 여당이다. 정치적 의도라는 색안경을 쓰고 있으니 모든 게 음모로 보이는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은 우려스럽다. 더 놀랄 게 있을까 했는데, 졸업식장에서 경호원들이 졸업생을 끌어내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거듭되는 민생 토론회에 대통령은 늘 중앙이고 중심이다. 정치적 음모, 이권 카르텔, 심지어 보험사기 같다고 대통령을 두둔하는 국민의힘도 국민보다는 대통령 심기가 우선이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 2024년에 벌어지는 일들은 폭력적이고 일방적이다. 권위적이고 진부하다.

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넘쳐나는 요즘이다. 민생을 챙기겠다며 부쩍 재래시장을 많이 찾는 대통령. 마주칠 기회가 있다면 '고물가에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정치 좀 잘해주세요' 같은 말을 해도 될까? 혹시라도 경호원들에게 입 틀어막혀 들려 나가고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불순한 행동이라며 집중포화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설마 그렇게야 하겠냐마는 날마다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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