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제 머리카락 잘라... 골 때리는 시나리오였다"
[지한솔 기자]
▲ 영화 <아네모네> 박성진 배우 |
ⓒ 인디스토리 |
구매만 했다면 1등에 당첨되었을 로또 복권의 행방을 두고, 구매를 부탁했던 아내와 구매하지 않았다는 남편의 신경전이 펼쳐진다. 지난 7일에 개봉한 영화 <아네모네>는 1등 로또를 쟁취하려는 용자(정이랑 분)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순간들을 맞닥뜨리며 겪는 이야기를 그린 블랙 코미디다.
<아네모네>는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리즈의 배우 정이랑이 1등 당첨 로또를 필사적으로 추적하는 용자 역을 맡아 관심을 모았다. 정이랑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배우 박성진은 극 중에서 잠에 들었다가 머리카락을 잘리고, 화장실에 갈 권리마저 빼앗겨 기저귀를 차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편 성진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영화에서 성진은 아내 용자에게 사오라고 부탁을 받았던 로또 번호가 진짜 1등이 되면서 온갖 수난을 겪는 인물이다. 성진은 아내가 부탁한 1등 당첨된 로또의 행방에 대해 "깜빡하고 안 샀다"고 답하면서 생애 최고의 고난을 겪게 된다. 평소에도 백수 남편이라는 이유로 아내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왔지만 이번에는 1등 당첨금이 걸려 있기 때문에 아내의 행동이 다소 과격해진다. 로또를 구매하고 숨겼을 것이라 의심한 아내는 성진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버리고 기저귀를 채워 화장실도 못 가게끔 감시한다. 끝도 없이 고문 당하는 이 모든 장면들은 놀랍게도 박성진이 모두 직접 소화했다고 한다.
장편 영화에 처음으로 주연으로서 이름을 올리게 된 박성진에게 <아네모네>는 어떤 의미일까. 영화가 개봉하고 시간이 흐른 지난 22일 배우 박성진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바라고 상상만 해오던 순간"
- 영화 <아네모네>에 첫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관객들을 만난 소감이 어떤가.
"소감에 앞서,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안 본 눈'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 영화 속에서 기저귀 바람의 모습을 관람하시느라 모두 고생하셨다(웃음). 뻔한 답변일 수 있지만, 무척 설레고 기쁜 순간이었다. 배우가 되겠다며 서른 살에 군 전역을 하고, 연기 학원에 다녔다. 단편 영화를 시작으로 하루빨리 배우로서 성장하길 꿈꿔왔다. 바라고 상상만 해오던 순간이 실제로 일어나니 얼떨떨하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구분이 안 될 정도다."
- 첫 주연으로 <아네모네>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귀신> 정하용 감독과의 인연이 영향을 미쳤나.
"아무래도 감독님과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감독님과의 이야기를 하자면, 2018년 6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때 학생이었던 감독님의 단편영화 촬영에 갔었는데, 거기서 정하용 감독님과 처음 뵙고 잠깐 인사를 나눴었다. 그로부터 1년 후에 온라인에서 독립영화 배우 모집 공고를 보고, 프로필을 접수했다. 그게 정하용 감독님의 <귀신>이라는 작품이었다. 감독님께서 1년 전에 잠깐 인사를 나눴던 저를 기억해주셨다. 그렇게 <귀신>으로 감독님과 재회를 하게 되었고, 그 뒤로 박성진이라는 사람에게 많은 호기심을 가지셨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인 것 같아서 정말 좋았다. 그래서 <아네모네>로 제안해주셨을 때, 진심으로 행복했다."
▲ 영화 <아네모네> 박성진 배우 |
ⓒ 인디스토리 |
- 극 중에서 온갖 수모를 다 겪는 성진을 연기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감독님께 전화를 먼저 받았다. '시나리오를 썼는데, 성진아. 머리를 짧게 자를 수 있니?'라고 물으시더라. 어떻게 자르는 것인지 여쭤봤더니 '아니, 자를 수 있어, 없어?'라고 하셔서, 무조건 자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이번 영화 찍으면서 좋은 추억 하나 만든다고 생각하자'라고 하셨고, 그렇게 시나리오를 받아봤다. 아, 참 골 때리는 시나리오였다."
- <아네모네>에서 성진은 가장 고생하는 캐릭터다. 그만큼 배우로서는 도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캐릭터로서 관객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매우 우스꽝스럽고 비호감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영화 속 성진이 현실의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다른 영화나 드라마처럼 멋있게 울고, 멋있게 반응할 수 있을까'같은 의문이 생겼다. 결론은 '절대 그럴 수 없다'였다. 멋있지 않게 보이려고 고민도 했고, 울부짖는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 성진은 용자의 남편이기도 하다. <귀신>에서도 함께 출연했던 정이랑과 이번에는 부부로서 온갖 케미를 보여주었다. 배우님과의 호흡은 어땠나.
"촬영 전 정이랑 배우님과 2~3일에 한 번씩 만나서 연습실도 가고, 한강을 걸으면서 대사도 맞춰보고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제가 정이랑 배우님께 많이 의지했다.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서도 도움을 받았는데, 그래서 배우님이 저 때문에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분명 정이랑 배우님도 엄청 힘든 컨디션이었을텐데, 본인보다 제 컨디션을 많이 걱정해주셨다. 정말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 용자 이외에도 성진은 온갖 인물들에게 맞고, 쫓기고, 도망친다. 촬영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사실 <아네모네>를 촬영하기 한 달 전쯤 제 왼쪽 발목 인대를 다쳤다. 걷는 것도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하루종일 뛰어다녀야 하고, 3인4각 달리기까지 있어서 더 걱정되었다. 다행히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어서 달리는 신까지 촬영을 잘 마쳤다. 영화로 보면 약간 뒤뚱거리면서 뛰는 모습으로 담겼더라. 근데 그게 성진이라는 인물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성진을 연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용자에게 온갖 고문을 받고, 결국 로또를 샀다고 말하고 집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용자에게 맞는 장면이 있다. 뒷걸음질 치고, 주먹도 피하고, 발차기도 피하고 반항하면서 도망치게 되는데, 그 장면이 액션의 호흡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원 테이크로 촬영한 장면이었는데 제일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 영화 속 성진이라는 캐릭터의 파격적인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분장으로 소화한 것이었을까.
"분장은 이마에 있는 점 하나 뿐이었다(웃음). 100% 제 머리로 촬영했고, 제 머리카락이 실제로 잘려나간 것이었다. 남자들은 장발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나? 저도 그런 부푼 꿈을 갖고 한창 머리를 기르고 있던 시기에 마침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 시기상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 배우로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장르는 어떤 것인가.
"아직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라곤 생각한다. 하지만 공포나 스릴러, 액션 장르의 영화를 해보고 싶다. 범죄수사물도 좋고, 나쁜 범죄자 역할도 해보고 싶다. 반대로 범죄자를 때려잡는 형사도 많이 해보고 싶다."
- <아네모네>로 만난 관객, 그리고 앞으로 만날 관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아네모네>를 통해서 이제 막 수면 위로 올라온 새내기 배우이지만, 다음 작품, 또 그다음 작품에서 관객들을 만날 때마다 '아, 박성진! 꾸준히 성장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하나씩 성장하면서 넘치지 않고 채워지는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
인터뷰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박성진 배우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아네모네>는 7일에 극장에서 개봉하여 절찬 상영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한솔 시민기자의 블로그 '곰솔이의 영화연애'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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