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의 절충안이 ‘파묘’였죠” [쿠키인터뷰]

김예슬 2024. 2. 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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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쇼박스 

과거 자주 오른 뒷산에 있던 산소 하나. 그곳은 어린 장재현 감독의 놀이터였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몰려오더니 무덤을 파헤친다고 했다. 무속인은 굿을 하고 사람들은 땅을 팠다. 어린 장 감독은 충격에 빠져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의 눈에 들어온 100년 넘은 다 썩은 관. 궁금하지만 보고 싶진 않고, 한편으론 또 보고 싶은 이상한 감정.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장 감독이 들려준 영화 ‘파묘’의 시작점이다.

‘파묘’는 오컬트라는 큰 분류 아래 여러 이야기를 심었다. 풍수지리에 능통한 지관과 장의사, 무당이 얽혀 음험한 기운이 가득한 묘를 이관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감독은 전작인 ‘사바하’를 마칠 때쯤부터 이 같은 소재를 생각했다고 한다. 당초 무서운 호러를 기획하던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산업이 위축되자 “어렵게 영화관에 왔는데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공포를 보여줄 순 없다”는 생각에 방향을 틀었다. “극장에서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체험적이고 화끈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골몰한 결과가 ‘파묘’다. 장르를 전환하며 주인공 역시 파묘를 의뢰한 박지용(김재철)에서 상덕(최민식)·영근(유해진)·화림(김고은)·봉길(이도현) 4인방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직업, 성격만큼이나 연령대 역시 다양하다. 감독은 “자식뻘 세대와 협업하는 꼬장꼬장한 상덕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서로 기댈 수밖에 없는 세대가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힘을 합치는 데 의미를 뒀다”고 부연했다.

으슬으슬 오싹한 공포감을 자아내던 영화는 ‘험한 것’이 정체를 드러내며 방향성을 달리한다. 총 6장 중 1~3장은 호러, 4~6장은 크리처물에 가깝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시나리오 작업 단계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단지 재미난 유령영화에 머물고 싶진 않아서”다. 감독은 “주제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에 이야기의 허리를 일부러 끊었다”며 “작가적인 욕심 때문”이라고 했다. 후반부에 나오는 ‘험한 것’을 두고는 “크리처물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일반적으로 괴수들에게 대사가 없는 것과 달리 ‘험한 것’은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말한다. “대사와 외형으로 그것이 품은 주제를 함축하기 위해” 설계해서다.

‘파묘’ 스틸컷. 쇼박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장 감독은 무속에 관심이 많다. 가톨릭 퇴마 영화인 ‘검은 사제들’, 불교와 연결점을 가진 ‘사바하’ 역시 출발점은 무속신앙이었단다. ‘파묘’는 “무속신앙 세계관의 피날레”를 위해 만든 결과물이다. 묵혀왔던 아이디어들도 쏟아부었다. 굿 하는 장면도 “멋보다는 목적성을” 살렸다. ‘파묘’에는 대살굿을 비롯해 혼 부르기 굿과 도깨비 놀이라 불리는 제주도 굿이 등장한다. 가장 기능적인 건 초반부 화림이 행한 대살굿이다. 귀신으로부터 인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살을 대신 맞고자 신을 받는 행위다. 감독은 “사전 조사와 시나리오 작업을 2년 반가량 병행하며 자료를 많이 모은 덕에 디테일을 살릴 수 있었다”고 자부했다. 이 때문일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파묘’를 선뵌 감독은 현지에서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을 가졌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감독 역시 “오컬트보다 더 잘 맞는 표현”이라며 만족해했다.

‘파묘’는 무덤 속 귀신과 대적하지만 귀신을 때려잡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감독은 “‘우리 귀신 잡으러 가자’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파묘’ 속 인물들은 뒷걸음질 치다 얻어걸린 개념으로 귀신과 맞설 뿐”이라고 했다. 감독은 ‘사바하’ 속 웅재(이정재)를 언급하며 “밝은 인물들이 어두운 세계로 들어가는 설정을 좋아한다.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먹고살기 위해 어떤 세계로 진입하는 게 좋다”면서 “‘파묘’ 4인방도 그런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파묘’는 개봉과 동시에 관객몰이를 이어가는 등 인기를 얻고 있다. 감독은 “‘검은 사제들’은 이야기 없이 캐릭터만 보인다, ‘사바하’는 반대로 이야기가 무거워 캐릭터들이 손해 봤다는 평을 들었다”면서 “이번엔 본능적으로 절충안을 찾아가며 작업했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며 웃었다. 이어 “꾸준히 발전하고 진보하는 게 내 목표”라면서 “차기작 역시 어둡긴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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