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룡 선거구’ 방지법 발의해놓고 4년간 방치한 여야

이종선 2024. 2. 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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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본회의서 획정위 원안 처리 유력
서울 노원구 공릉역 옆 동일로에 있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노원을)의 선거 사무소와 같은 당 고용진 의원의 선거 사무소(현 노원갑)가 인접한 모습.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가 국회에 제안한 획정안 초안에 따르면 서울 노원 갑·을·병 선거구는 노원 갑·을로 합쳐진다. 여야는 이견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이런 내용의 선거구획정안을 29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4·10 총선을 47일 앞두고 여야의 선거구 획정 협상이 난항에 빠졌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면적의 8배가 넘는 ‘공룡 선거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야가 초대형 선거구를 방지하기 위한 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고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야는 오는 29일 본회의에서 선거구획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3일 “지역별 의석 증감을 둘러싼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지난해 1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내놓은 대로 선거구획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히면서 원안 통과 가능성이 커졌다.

선거구획정위 획정안에 따르면 인구비례 등에 따라 지난 총선 대비 서울과 전북에서 의석이 각각 1석 줄고, 인천·경기에서 1석씩 는다.

여야 간 핵심 쟁점은 전북, 부산 등의 지역별 의원 정수다. 민주당은 ‘텃밭’ 전북에서 1석을 빼는 걸 수용할 수 없다며 부산 의석을 1석 줄이자고 제안했다.

국민의힘은 이를 거부하면서 “전북 의석을 유지하려면 대신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라”고 역제안했다. 그러자 민주당이 여야 간 잠정 합의안을 백지화하고 획정위 원안대로 통과시키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여야는 획정위 획정안이 나온 이후 협의해 서울 종로·중·성동구 일대와 강원, 전남 순천·광양 등에 대해 현행 선거구를 유지하고 경기 양주와 동두천·연천을 붙여 갑·을로 나누는 데 잠정 합의했었다.

잠정 합의안이 무산되면서 현재 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 선거구를 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이렇게 되면, 선거구 면적이 4900㎢로 서울 전체 면적(605.21㎢)의 8배에 달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국민의힘 위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획정위 안에 따르면, 6개 시·군을 아우르는 초거대 선거구가 탄생한다. 서울 국회의원 1인당 평균 관할면적의 323배”라고 주장했다.

이 지역 현역의원인 이양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6개 시·군을 의원 1명이 감당하는 건 지역주민의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수도권·대도시의 인구가 증가하고, 농촌 인구는 감소세인 상황에서 인구를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선거 때마다 ‘초대형 선거구’ 논란은 재현될 수밖에 없다.

여야는 이를 고려해 21대 국회에서 초대형 선거구 탄생 방지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4건 발의했다.

지난해 2월 신정훈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국회의원 선거구는 5개 이상 시·군·구로 구성할 수 없다’는 조항을 담았다. ‘농·산·어촌의 지역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만 돼 있는 조항도 ‘농·산·어촌의 지역대표성이 반영돼야 한다’는 의무 규정으로 수정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 달 지역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해 농·산·어촌의 경우 예외 규정을 둔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허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선거구 획정에서는 인구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초대형 선거구 방지법 중 가장 오래된 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21대 국회 개원 직후인 2020년 6월 발의한 개정안이다. 개정안에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획정하기 위해 종전의 국회의원 지역구를 통합 또는 분구하는 경우에는 시·도별 국회의원 지역구의 평균 인구수가 적은 시·도의 순으로 통합하거나 평균 인구수가 많은 시·도의 순으로 분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이 담겼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발의 3년 8개월이 지나도록 정개특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여야는 정개특위를 열 때마다 비례대표 선출 방식이나 선거구 획정을 두고 서로 유리한 주장만 반복하며 싸웠다.

여야의 고질병인 ‘선거구 지각 처리’에 대해서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선거구획정위는 2020년 총선에서 여야가 후보 등록일 20일 전에야 선거구획정안을 확정짓자 입장문을 내고 “선거구획정의 지연은 헌법상 국민에게 부여된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침해를 초래한다”며 “다음 총선 전 반드시 획정기준의 확정 시한 및 확정 시한 미준수 시 해결 방안도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여야는 선거구 획정 늑장 처리에 대한 벌칙 규정을 담은 법 개정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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