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복지부-의료계 ‘28차례’ 만났지만… 의대 정원 '규모' 논의는 없었다

신은진 기자 2024. 2. 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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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간 진행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DB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충분히 논의했다'는 정부와 '한 번도 동의한 적 없다'는 의료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한 치의 양보 없는 주장에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각종 의혹만 증폭한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헬스조선이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 공식 소통 채널인 '의료현안협의체'의 총 28차례 회의 결과를 단독 입수해 분석해봤다. 의료현안협의체는 약 1년 간(2023년 1월~2024년 1월) 진행된 후 종료된 상태다.

◇공식 만남만 28차례는 '사실'-동의한 적 없다는 말도 '사실'

정부와 의료계의 말을 각각 따져보면, 둘 다 거짓말은 아니다. 대통령실의 '의료개혁에 대한 오해와 진실 Q&A'에도 공개됐듯, 정부는 의협과 공식적으로만 28차례 만남을 가졌다. 의협 외의 학회, 병원계, 소비자단체 등과의 만남을 모두 포함하면 130회 이상의 논의를 했다.

그러나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록을 보면, 의협 말대로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대한 의료계 동의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총 28차례 회의 중 '규모'에 대한 논의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차수의 회의에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의사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12차 회의(6월 29일) 전까진 '의대 정원 확대'가 주요 안건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제4차 회의(3월 22일) 결과를 보면, 복지부는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 방안으로 ▲필수의료 강화 및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한 필수의료 인력 재배치 ▲효율적 활용 및 양성 등을 제안했다. 의협은 ▲(가칭)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개설 제한을 대안으로 제시해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 차이는 회의 초반부터 확인됐다.

그럼에도 복지부와 정부는 협의체를 통해 비교적 순조로운 소통을 이어갔다. 복지부는 7차 회의(4월 20일)에서 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필수의료인력 확충에 대한 ‘기본원칙’ 및 ‘합리적 방향’에 대한 논의를 요청했고, 10차 회의(6월 8일)에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 인력 검토 확충된 의사인력이 필수·지역의료로 유입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고 의협에 제안했다.

문제는 12차 회의 직전에 발생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의대 정원 문제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산하 분과위원회에서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발언(6월 27일)하면서,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난 2020년 정부와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의정협의체에서 논의하기로 9·4 의정합의를 한 바 있다. 의협은 9·4 합의에 따라 의대 정원 논의를 하자고 건의했고, 복지부는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서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협과 충실히 논의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다만,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 수요자 및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의견수렴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추가로 전했다.

15차 회의(10월 26일)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인력배치‧양성과 근무환경 개선 등을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됐다. 규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복지부도 "의대정원 확대는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의대정원 확대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회의에선 같은 논의가 반복됐다. 의협은 "정부가 요구하는 의대정원 논의는 적정인력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마련되고, 적정보상 및 법적 책임 완화 등 필수·지역의료 분야로의 유입방안이 마련한 후 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복지부는 "정부에서 진행한 수요조사는 단순 기초조사로 해당 결과가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며, "적정 의대 정원에 대해 의협과 정부에서 제시하는 과학적인 기준과 근거를 상호 검토하여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복지부는 의협에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매 회의 전하고, 설득했다. 22차 회의(12월 20일)에선 "여론조사에 따르면 89%가 넘는 국민이 의대정원 증원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바, 국민의 뜻을 의료계가 알아줘야 한다"고 했고, 23차, 24차 회의(12월 27일, 1월 10일)에선 "국민의 대다수가 의대정원 확대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상황에서 의협이 국민적 수용성 및 사회적 책임을 바탕으로 적정 의사인력에 대한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의협은 의료사고 부담완화, 적정보상,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 의대생 증원 시 의학교육의 질 담보 방안 등 보다 구체적인 대책만 제시한다면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협은 "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고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올라오는 유명무실한 의료전달체계 등 근본적인 대책 없이 공급만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필수·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 의료현안협의체 규정 위반·지원 약속만… 협의체 파행 이어져

결국 의대 정원 확대 규모에 대한 논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채 25차 회의(1월 17일)부터 의료현안협의체는 파행길을 걸었다. 앞서 정부와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기로 합의했으나, 복지부가 1월 15일 별도의 공문을 통해 의협에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고, 의협이 이에 불응하면서 갈등이 극에 달한 것이다.

의협이 의대 정원 확대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던, 전공의 근무 환경 개선과 의학 교육의 질 담보를 위한 교원·교육기자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이 나오지 않은 것도 협의체 파행에 큰 영향을 줬다. 특히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이 전공의를 대표해 11차례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했으나, 정부는 구체적인 지원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

복지부는 26차 회의(1월 24일)에서 전공의 단체의 요청에 "의대증원에 따른 의학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교육 인프라와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준비할 것이며, 의학교육평가인증기준 개선, 교수인력 확대, 필수·지역의료 분야 교육확대 등 다각적인 대책 방안을 마련해 갈 예정이다"고만 답변했다.

사실상 마지막 회의였던 27차 회의(1월 31일)에서도 논의는 더이상 진전되지 못했고, 28차 회의는 시작과 동시에 파행됐다.

정부 사정에 밝은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논의한 건 사실이다"며 "의료계가 무작정 의대생 증원을 반대한 게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럼에도 증원 규모에 대해선 한 차례도 논의하지 못했다"며 "의료계는 늘어난 의대생을 제대로 책임질 수 있도록 확실한 지원을 약속받은 후 의대 증원을 논의하길 원했으나 정부가 확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공식 소통기구였던 의료현안협의체에서조차 거론된 적 없던 '2000명 증원'이 등장해 의료계의 반발이 더욱 큰 상황이다"며, "정부가 의료계와 진정으로 소통할 생각이 있다면 의료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납득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로 의대 증원 문제를 다시 논의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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