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위 기록한 '살인자ㅇ난감'이 던진 질문
[이정희 기자]
▲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스틸 이미지 |
ⓒ Netflix |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이 공개 2주차 글로벌 시리즈 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21일 기준 넷플릭스 TOP10 웹사이트에 따르면, <살인자ㅇ난감>은 지난 11일부터 18일까지 총 550만 뷰를 기록하며 인기를 입증했다.
<살인자ㅇ난감> 감독과의 대화나 배우들과의 인터뷰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냐"는 질문은 제목 속에 들어가 있는 'ㅇ' 때문이다. 하지만 우문현답처럼 배우들과 제작진은 보는 사람이 느끼는 대로 읽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제목만이 아니다. 8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 시리즈는, 제목처럼 다른 해석이 분분하다. 어쩌면 <살인자ㅇ난감>이 계속 화제의 중심에 머무는 이유는 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드라마 속 '정의 구현'에 있지 않을까 싶다. 저마다의 확증편향식 정의로 사분오열된 오늘날의 시대처럼 말이다.
'정의'가 '감각'이라니
드라마의 첫 번째 주인공 이탕(최우식 분)은 평범하다 못해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가는 대학생이다. 그는 본의 아니게 비오는 날 골목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분명 그 살인은 우발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살인을 목격한 맹인 여성이, 아니 사실은 맹인이 아니었던 여성이 그에게 돈을 요구한다. 겨우 가진 모든 것을 털어 200만 원을 마련했는데, 매달 내놓으라는 말에 이탕은 망치를 다시 한 번 들었다. 이번에는 우발적 범죄가 아니었다. 이탕은 그렇게 또 한 번의 살인을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저질렀다.
알고 보니 그가 죽였던 두 명은 모두 연쇄 살인범, 존속 살인범이었다. 자신의 살인에 억눌렸던 이탕은 혼란스럽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매번 살인의 시간이 다가오면 그의 목에서 삐죽삐죽 소름이 돋는다는 것. 그 감각에 의지해서 이탕은 으슥한 뒷골목에서 술에 취한 채 폭력을 행사하던 청년 두 명을 또다시 죽인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들은 한 여고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이제 이탕은 본격적으로 '어둠의 히어로'로 나선다. 일찌기 이탕의 남다른 예지력을 알아보고 그를 적극적으로 스카웃하려 했던 해커 노빈(김요한 분)의 조력에 힘입어 이제 이탕은 살인할 사람을 골라 죽이는 심판자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살인자ㅇ난감>은 평범한 청년 이탕이 적극적 심판자로 나서게 되는 이야기로 초반을 구성한다. 우발적 살인이 자발적 살인을 거쳐 정의의 심판으로 나아간다는 아이러니한 서사를 통해 주인공 이탕에 보는 이들이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장치를 만든다. 마치 현대 미술의 낯설게 하기처럼 말이다. 소름이 돋는 감각에 의한 살인이라니, 과연 그런 심판도 정의가 될 수 있을까?
▲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스틸 이미지 |
ⓒ Netflix |
그런 이탕의 맞은 편에 자리한 사람이 바로 형사 장난감(손석구 분)이다. 묘하게도 모든 이들은 사건이 보여주는 것만을 따라갈 때 유일하게 이탕을 주목한 사람이다. 첫 만남에서 그는 "그래서 죽였어요?"라며 이탕을 몰아갔다. 안타깝게도 편의점의 파리 한 마리가 이탕을 돕는 바람에 그의 범죄를 단번에 증명할 수는 없었지만, 장난감의 감각은 이탕을 놓지 못한다.
형사 장난감은 집요하다. 그리고 그의 집요함은 법을 향한다. 나쁜 놈들이 법 앞에 처단되는 그것 만이 그의 정의이다. 그리고 그런 장난감이 추구하는 정의의 끝에는 병상에 누워계시는 아버지가 계신다. 그가 오래도록 쫓고 있는 송촌(이희준 분)에 의해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그를 더욱 집요하게 범죄로 향하게 만든다.
어떻게든 법의 테두리에서 해결하려는 장난감이었기에 노빈이 송촌의 자료를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자 그걸 밀어낸다. 하지만 정직이라는 위기의 순간, 수사를 멈출 수는 없어 스스로 경계 너머 한 발을 내디딘다. 그리고 젊은 남녀 두 명을 살해하고 이제, 그 할아버지인 재벌에게까지 송촌의 손이 뻗어갈 때 장난감은 '반납하지 않은 총기'를 들고 나선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 송촌이 장난감의 눈 앞에서 그의 아버지를 가차없이 쓰러뜨리자 장난감은 총구를 연다. 지난 번 결국 차마 쏠 수 없었던 총, 하지만 그로 인해 그의 후배가 쓰러졌다. 그리고 송촌에 의해 비로소 밝혀진 진실, 그 앞에서 장난감의 총구는 가차없다.
여기서 장난감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그는 법적 정의를 구현한 것일까? 송촌에게 총구를 내미는 순간 이탕의 목에 소름이 돋았다. 살인자를 만나면 돋는 소름, 결국 장난감도 '살인'을 한 것일까? 그토록 오랜 시간 쫓았던 송촌, 그런데 그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자 장난감은 믿었던 법의 테두리를 넘는다.
애틋하게 그를 아꼈던 서장은 어머니의 연인이었고, 우직한 형사인 줄 알았던 아버지는 몰래 마약를 빼돌려 이득을 챙기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젊은 날 송촌에게 그 마약이 든 한약 상자 심부름을 시켰고, 그 덕분에 애꿏은 사람이 범죄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열성적이던 젊은 경찰 송촌에게 살인자였던 부모를 들먹이며 앞길을 막았다. 장난감이 믿었던 '법'의 성채가 무너진 순간, 장난감 역시 그 법의 정의를 넘어서고 만다. '법'은 개인의 욕망과 사적 복수 앞에서 무기력했다.
▲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스틸 이미지 |
ⓒ Netflix |
그런데 여기 또 한 명 정의의 수호자가 있다. 바로 장난감이 집요하게 쫓던 인물이자, 역으로 이탕을 집요하게 쫓는 전직 히어로 송촌이다.
장난감의 아버지를 쓰러뜨린 송촌은 이제 더는 강력계 형사가 될 수 없었다. 범죄자가 되어버린 송촌, 하지만 살인범의 자식이란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던 송촌은 뢰빈과 손을 잡고 스스스 '히어로'가 되고자 했다.
이제 칠순의 노인이 되어 당뇨로 인해 손이 시커멓게 죽어가고 손톱이 빠져나가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는 불의를 보고 눈감을 수 없다. 자신이 타고가던 택시 앞에서 희롱하다 외려 큰 소리를 치는 두 남녀를 옥상에 불러앉혀 그는 반성문을 쓰게 한다. 그의 작은 가방에는 지난 인생 그가 죽인 이들의 숱한 피묻은 반성문이 쌓여있다. 그건 그가 살인자가 아니라 '심판자'라는 증거가 되니까.
그런데 그가 이탕을 쫓는다. 노인 송촌은 궁금했다. 반성문을 받아야만, 아니 받고서도 석연치 않은 자신과 다른 확신범 이탕의 정의가 무엇인지.
<살인자ㅇ난감>은 20대와 40대, 그리고 70대, 미스터리와 추리물에 스릴러까지 주인공마다 다른 색채의 드라마로 빚어낸다. 결국은 세 사람이, 세 세대가 만나 니가 옮은가, 내가 옳은가 난장을 벌이게 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답이 명확하지 않은 질문이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 저마다 만들어 낼 수 있는 해석의 공간이다. 그래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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