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실리 모두 챙긴 류현진의 사실상 '종신 계약'

이준목 2024. 2. 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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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한화 이글스 류현진, 8년 총액 170억 계약

[이준목 기자]

 한화 이글스 시절 류현진
ⓒ 연합뉴스
 
'괴물' 류현진이 KBO리그로 돌아왔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지난 22일 류현진과 8년 총액 170억 원의 조건으로 입단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서 류현진은 지난 미국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정리하고 12년 만에 독수리군단의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됐다.

류현진은 한국 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로 꼽힌다. 동산고를 졸업하고 2006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2번으로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어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데뷔 첫 해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며 18승 6패 1세이브 204탈삼진 평균자책점 2.23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신인왕과 트리플크라운, 정규리그 MVP를 동시 석권했다.

이후 2012년까지 통산 98승 52패 1세이브 1238탈삼진 평균자책점 2.80을 기록하며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군림했다. 국제대회에서도 맹활약하며 한국야구대표팀의 2008 베이징올림픽,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에 크게 기여했다.

2012시즌을 마치고 류현진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미국 진출을 타진했고, LA 다저스와 6년 3600만 달러(약 482억 원)라는 당시로서는 초대박 계약을 맺으며 빅리그 입성에 성공했다. 친정인 한화 구단에게 약 2573만 달러(344억 원)이라는 포스팅 비용도 선물로 안겼다.

류현진은 미국에서도 정상급 투수로 활약했다. LA다저스와 토론토 블루에지스를 거치며 빅리그 10시즌 통산 186경기에 출전하여 1055.1이닝간 78승 48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27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다.

커리어하이인 2019시즌에는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2의 성적을 기록하며, 생애 첫 올스타 선정과 평균자책점 1위 타이틀,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 2위라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그해 FA 자격을 얻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8000만 달러(약 1071억 원)의 대박 계약을 맺기도 했다.

다만 여러 번의 큰 부상으로 공백기가 길었던 게 아쉬웠다. 다저스 시절인 2015년 왼쪽 어깨 관절와순 파열, 2022년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인한 두 번째 토미존 수술 등으로 시즌을 통째로 날리며 수술과 장기간의 재활을 거쳐야 했다. 11년의 메이저리그 커리어와 가진 재능에 비해 누적 기록에서는 아쉬움이 남은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현진의 눈부신 활약은 KBO리그 출신 선수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류현진의 성공 이후 강정호, 박병호, 김현수, 김광현, 오승환, 김하성 등 빅리그에 입성한 KBO리그 출신 선수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 미국과 일본 등 외신들도 '류현진은 빅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아시아 출신 좌완투수'로 극찬하며, 비록 부상 경력이 있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는 평가를 내렸다.

류현진은 당초 2024시즌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 듯했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팔꿈치 수술을 받은 류현진의 재기에 의구심도 있었지만,  류현진은 복귀 시즌에 11경기에서 3승 3패 평균자책점 3.46의 성적을 거두며 어느 정도 건재를 증명했다. 현지 언론들은 다시 FA가 된 류현진을 1~2년 계약에 3, 4선발 정도로 준수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류현진의 기대와 달리 MLB 구단과의 계약체결은 지지부진했다. 김하성의 소속팀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비롯한 몇몇 구단이 실제로 협상을 진행했으나 류현진이 원하는 조건을 끝내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에 친정팀 한화가 역대 최고 대우를 보장하며 러브콜을 보냈다. "이미 기량이 건재할 때 한화와 KBO리그로 반드시 복귀하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한 바 있었던 류현진의 마음도 움직였다.

관건은 한화가 류현진을 잡기 위해 과연 어느 정도의 대우를 보장할 수 있느냐였다. 류현진의 위상과 상징성을 고려할 때 '최고 대우'는 당연했지만, 샐러리캡이나 노장이 된 류현진의 부상 리스크 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우가 부실하면 류현진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없고, 그렇다고 무리하다가는 KBO리그 시장 규모에서 감당하기 힘든 '악성 계약'이 될 위험도 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화와 류현진은 서로의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조건으로 합의점을 찾아냈다. 류현진이 한화가 맺은 8년 170억은, 명목상으로는 KBO리그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이다. 이전 FA 최고 기록은 2022년 양의지와 두산 베어스가 맺은 6년(4+2년)에 152억 원이었다.

그런데 총액으로는 최고액이지만 연 평균으로 치면 약 21억 2500만 원으로 오히려 김광현(37억7500만 원), 양의지(25억3300만 원)같은 현재 KBO리그 정상급 선수들보다 낮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시장 가치를 기준으로 봐도, 거의 4분의 1 수준 이상으로 연봉이 줄어든 셈이다. 여기에 류현진의 계약에는 구단과 선수측 합의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세부적인 옵트아웃 조건들도 걸려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금액보다 더 주목해야 할 핵심은 '계약기간'에 담긴 상징성이다. 2024 시즌 37세가 되는 류현진에게 8년 계약은 사실상 한화와의 '종신계약'을 의미한다. 박민우가 2022시즌 종료 후 NC 다이노스와 8년(5+3년) 140억 원의 조건으로 FA 계약을 맺었지만 당시 29세였다. 만일 류현진이 계약 기간을 모두 채운다고 하면 44세가 되어 구단의 레전드인 송진우(43세 7개월 7일)의 최고령 경기 출장 기록도 넘을 수 있다.

한화는 류현진이 구단과 한국 야구에서 가지는 위상을 감안하여 '사상 최대 총액과 최장기간 계약'이라는 타이틀로 자존심을 세워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현재 프로야구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샐러리캡 압박에 대한 부담도 다소 덜 수 있게 됐다.

170억원이라는 총액은 계약기간과 별개로 류현진에게 지급할 최소한의 보장금액이라는 기준으로 책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류현진이 앞으로도 몇 년이나 더 전성기의 기량과 부상없이 건강을 유지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어차피 류현진이 40세를 넘어서 굳이 메이저리그처럼 옵트아웃을 통해 계약 기간 도중 다시 FA 시장에 나갈 가능성도 낮다.

결국 '8년'이라는 기간을 류현진이 반드시 다 채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화 구단이 그만큼 류현진을 신뢰하고 선수생활 끝까지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계약기간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보장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덧 나이도 노장에 접어 들었고 큰 부상 경력도 여러 차례 있는 류현진에게 장기계약은 그 자체로 에이스에 대한 예우와 심리적 안정이라는 의미가 크다. 류현진이 송진우만큼 오래 기량을 유지하며 선수생활을 이어간다면 가장 더할 나위 없지만, 한 4년 정도만 건강하게 활약한다고 해도 170억 원이라는 계약규모는 결코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류현진으로서는 기량이 건재할 때 한화로 돌아와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됐다. 한화 암흑기의 시작을 지켜보면서 메이저리그로 떠났던 류현진이, 친정팀을 암흑기에서 구원해내는 에이스로 거듭나는 것은, 명예로운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위한 가장 완벽한 서사라고 할 수 있다.

한화는 1999년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끝으로 24년째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가을야구에 나간 것도 2018년(3위)이 마지막이다. 류현진도 화려한 개인 경력에 비하여 정작 프로에서는 KBO리그와 메이저리그 모두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한화는 지난해 국가대표 노시환과 문동주 등이 리그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고, 검증된 외국인 듀오 페냐-산체스와 모두 재계약한 데다 스토브리그에서 안치홍, 김강민, 이재원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여기에 류현진까지 가세하면서 명실상부하게 스토브리그의 화룡점정을 찍게 됐다.

이제 한화는 류현진이 은퇴하기 전에 5강을 넘어 우승의 희망까지도 기대할만한 팀으로 목표치가 달라졌다. 과연 류현진과 한화의 '두 번째 동행'은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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