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택배를 불태웠는데... 재난문자가 도착했다
[김상목 기자]
▲ 영화 <벗어날 탈 脫> 포스터 이미지 |
ⓒ 씨네소파 |
개봉을 맞이해 몇 곳에서 특별상영으로 서보형 감독의 예전 단편들을 옴니버스 상영하는 기획전이 진행되고 있다. 감독은 전통적인 영화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인 영상작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기획전 상영대상인 4편의 단편만 언급하고자 한다.
<선잠> 2016.
흑백의 화면은 다세대주택 실내를 비춘다. '수인'과 '정화'는 오래된 연인 사이다. 둘은 여느 멜로물이 보여주듯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함께 소박한 만찬을 누리고 같은 자리에 눕는다. 하지만 근사해 보이던 풍경은 서서히 갈등과 권태로 기울어진다. 우리가 SNS나 방송에서 '밈'으로 낄낄거리며 즐기곤 하는, 극성맞은 여자친구의 행태 때문에 견디지 못하는 남자친구 전형 같은 상황에 처한 수인은 난처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정화의 태도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능해 보인다. 수인이 보기에 정화가 극성스러울 수 있지만, 연기자를 꿈꾸는 정화는 중요한 오디션을 앞두고 부쩍 예민해진 상태다. 게다가 그가 보기에 수인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나무늘보처럼 느릿하다.
정화가 <죽은 아빠의 윤리> 영화 오디션을 보고 돌아오니 문은 잠겨 있고 전화기는 꺼져 있다. 아무리 수소문해 봐도 수인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제 정화는 행방불명된 수인을 뒤쫓으며 중요한 오디션을 준비해야 한다. 간신히 부동산을 통해 단서를 찾지만 그 과정에서 남자친구가 전 여자친구와 동행한다는 첩보를 접하니 더 마음이 복잡해진다. 필사적으로 수인의 행방을 탐문하던 정화는 어쩌면 그가 집 안에 계속 고착된 채로 있는 건 아닌지,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상태는 아닌지 고민스럽다. 일상의 균열에서 벗어나고픈 남자는 마치 겨울잠을 자듯 변이가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여자는 복잡한 일상을 오디션 연기에서 승화시켜낼 수 있을까?
<솧> 2018.
흑백톤은 아니지만 화면은 극도로 단순한 블랙&화이트 배경으로 일관한다. 차갑다. 아주 차갑다. 영화의 대부분은 한 여성이 같은 자리에서 질문에 응하는 장면으로 구성된다. 상황은 3부로 나뉘어진다. 1부는 여성의 룸메이트가 석연찮은 죽음을 맞은 정황을 경찰이 탐문하는 것처럼 들린다. 심문이 조여들 듯 강화되자 여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 상황에서 영화의 제목인 <솧>이 화면에 새겨진다. 다음 상황은 지금껏 구도가 사실은 영화 출연배우를 뽑기 위한 오디션 연기라는 걸로 드러난다. 경찰은 감독, 여성은 배우 지망생이었다. 이제 화기애애해질 것 같던 대화는 기이한 시나리오와 상황 설정 때문에 부조리한 분위기로 변해간다.
영화의 포인트는 '시선'이다. 감독의 시선을 대행하는 카메라는 1부에선 여성 증인을 고압적인 어조로 심문하며 손전등 불빛처럼 위아래로 흘낏거린다. 누군가는 감독이 배우를 성적 대상화하는 불편함을, 그게 아니라도 평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자기 연출의 도구로 착취하려는 욕망을 느낄 법하다. 2부에서 과잉된 '메소드' 연기 요구와 호구조사의 불편함은 3부로 이어진다. 상황을 밀어붙여 원하는 바를 확보하려는 감독과 빠져나갈 여지를 필사적으로 궁리하는 배우가 공방을 주고받는다. 뒤늦게 배우 맞은 편에 위치한 감독이 관객의 시선에 노출된다. 그리고 현실인지 아닌지 모호한 엔딩을 통해 감독과 배우가 최초로 한 화면에 들어온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이 응시하는 '프레임' 속 이야기로 귀결된다.
제목인 <솧>은 중세 고어로 '거푸집' 혹은 '심연'의 의미를 지닌다. 감독은 배우가 본인의 비전을 위한 거푸집에 채워지는 쇳물이 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배우가 감독의 욕망에 완벽히 부응해줘야 하는가? 그런 영화제작 과정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심리 드라마로 펼친다.
▲ 영화 <벗어날 탈 脫> 스틸 이미지 |
ⓒ 씨네소파 |
<탈날 탈>은 현대 공포문학의 정석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익숙한 일상의 장소와 경험이 알고 보면 뒤집혀진 보도블록의 하단 면 축축한 습기와 들러붙은 벌레들에 대한 음침한 기억으로 전이되는 질감을 떠올리게 한다. 또는 평범한 주변 공간이 이세계의 입구 마냥 의심하게 만든다. 그 어딘가에 이 영화의 자리가 있다.
불 꺼진 방안, 환하게 빛나는 건 오직 별 의미 없이 켜진 텔레비전 홈쇼핑 광고뿐이다. 남자는 멍하니 광고를 지켜본다. 갑자기 현관 도어락을 누르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엄습해온다. 신경이 쓰인 남자가 문을 여는 순간부터 평범한 복도식 아파트는 다른 차원으로 변모한다. 남자는 문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의 집은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속 베스트베스트 백작의 성처럼 도달할 수 없다. 귀환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남자 앞에서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고 집 안에선 불이 켜졌다 꺼졌다 마치 집이 생명체처럼 작동하는 중이다. 대체 지금 상황은 어떤 이유일까? 남자는 사유할 틈이 없다. 한밤중 고요한 아파트 바깥에 추방된 그는 오직 익숙한 상자 안으로 피신을 염원한다.
마침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온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한 아내와 노모는 그에겐 이제 외양만 익숙할 뿐 이해 불가능한 타자로 인식될 뿐이다. 남자는 의심하면서도 별로 내색하지 않고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과연 이걸로 모든 게 정리된 걸까. 이세계로 우연히 빨려들었다가 겨우 헤쳐나온 남자가 서 있는 곳은 원래 그가 있던 장소가 맞는지 우리는 정답을 낼 수 없다. 이성과 합리로 쌓아 올린 현대사회에 대한 무수한 의심과 불신을 표현하려는 작업은 프란츠 카프카 혹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중력장 안에서 무한히 반복재생된다.
<일식> 2021.
해당 작업은 코로나19가 창궐해 정지된 영화창작으로 어려움에 처한 독립영화인 지원사업 응모로 탄생했다. 그런 상황을 반영하면서도 감독은 야심차게 3부작 형식에 도전한다. 하지만 해당 사업인 '영화진흥위원회 일자리 연계형 온라인·뉴미디어 영상콘텐츠 제작 지원'은 무정하게도 3개의 프로젝트 중 2부에 해당하는 기획은 거절하는 바람에 3부작 프로젝트는 1부와 3부만 불완전한 형태로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그런 정세적인 상황을 반영하듯 영화는 통 풀리지 않는 야외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스태프와 배우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짜증만 밀려온다. 그런 심리상태가 관객에게 '방백' 형태로 전달된다. 감독으로선 지독한 자학 개그인 셈이다.
이 난국을 회피하는 감독 대신 어떻게든 돌파하려는 결기의 조감독이 눈물겨운 활약을 이어간다. 밥 못 먹어 기운이 없다는 배우에게 삼각김밥을 전하고, 부족한 조명 배터리를 공수한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라 시나리오를 수정해 시간 안에 어떻게든 촬영을 마치려 종횡무진한다. 그런 일련의 전개를 통해 영화 제작현장의 여러 스태프들이 수행하는 역할과 임무가 자연스럽게 소개된다. 마치 연극이 끝난 후 친절하게 배우와 스태프를 소개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가목은 산속에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스태프와 연기자가 아무리 조력해도 영화의 책임을 짊어져야 할 이는 감독이라는 것을 구현하는 결말이다. 그렇게 극중 극 형태의 이야기는 마지막 순간에 흑백이 컬러로 바뀌면서 제목처럼 달이 차올라 일식을 완성하는 것처럼 종결된다. 그렇게 영화가 완성되기 직전의 순간을 담는다.
▲ 영화 <벗어날 탈 脫> 스틸 이미지 |
ⓒ 씨네소파 |
'너와 나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라는 문장이 반복되며 영화가 시작된다. 무미건조할 정도로 텅 빈 작은 아파트 안에서 한 남자가 108배와 참선을 거듭한다.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수행자인 듯하다. 그의 고요한 일상은 하지만 연거푸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침범을 당한다. 여자친구인 듯한 목소리는 남자가 '쉬운 걸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며 타박과 애원을 뒤섞어 돌아오라 하지만 남자는 매몰차게 끊어버린다. 통화 내용을 짐작해보니 남자는 불치병을 앓고 있고 자신이 죽기 전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죽기 전에 깨달음을 얻고 가리라 결심한다. 남자는 그런 자신의 결의가 '물고기가 물을 찾는 것과 같다'고 긍정한다.
하지만 수행 과정은 썩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탐독하던 경전에선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지' 부정하는 문답이 소개된다. 자신은 과연 가능할까? 남자는 불안해진다. 그런 그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듯 차례로 기이한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남자의 심리상태인지 관객은 알 도리가 없지만, 그의 마음이 평정심과는 아득히 멀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날개개미가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날개가 달린 개미는 번식에만 역할이 있고 그 기능을 다하면 곧 죽는 수개미다. 그의 유일한 외출시간인 아파트 단지 주변 산책길에서 발견한 덤불. 남자는 그 속으로 무작정 들어가본다. 그곳엔 한 송이의 붉은 꽃이 맺혀 있지만 남자는 그 꽃에 온전히 도달하지 못한다. 그는 불타는 장작의 환상을 보며 자신도 그 장작처럼 태워 없어지는 식으로 멈춘다는, 곧 죽는다는 암시에 사로잡힌다.
강박적으로 포스트잇에 '없을 무 無'를 적어 아파트 곳곳에 붙이던 남자에게 어느 순간부터 붉은 옷을 입고 얼굴을 분간할 수 없는 여인의 환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이렌이 갑자기 요란하게 울린다. 아파트 복도에 나가보니 전신이 불에 탄 남자가 실려 나가는 것을 목격한다. 냉장고 밑에서 남자는 지중해 휴양지 '니스'의 흔적을 발견한다.
'해변의 사나이'가 움직임을 통해 부활하다
아파트 단지 내엔 또다른 주인공이 있다. 여자는 기이한 드로잉을 작업하는 중이다. 그는 원치 않던 택배를 수령하자마자 공터에서 불태운다. 그는 지중해 여행 중 '해변의 사나이'라 이름붙인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무심코 동양 남자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 직후 남자는 바다에서 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사진 속의 남자 이미지는 이미 현실에선 사망한 본인과 별개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무한히 반복되는 현재성의 주인공이 된 그 남자를 여자는 '해변의 사나이'라 부른다.
그런 생각에 잠긴 여자에게 산불을 조심하라는 재난문자가 도착한다. 여자는 혹시 자신이 태우던 택배에서 불이 옮겨붙었을까 싶어 현장으로 달려가고, 불탄 자리에서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를 발견해 놀란다.
참선하던 남자에게는 계속 빨간옷의 얼굴을 분간할 수 없는 여인이 출몰한다. 이제 남자가 잠을 자기 위해 누운 자리 옆에 여인이 누워 있다. 남자는 불안에 떨고 초조해진 나머지 자신이 그토록 외면하던 여자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상대처럼 전화를 받지 않는다. 원룸 아파트 안에서 남자는 빨간옷 여인을 피해다니는 중이다.
한편 여자는 전시에 출품할 작업 독촉을 받는 중이다. '시간의 언어'라는 전시 주제 때문에 여자는 스트레스를 받아 번아웃 상태다. 일전에 '해변의 사나이' 사진을 찍고 난 뒤부터 여자는 작업 진도를 내지 못하는 중이다. 여자는 어릴 적부터 '끝'이라는 개념에 대해 집착해 왔다. 영화를 봐도 마지막에 올라오는 'The END'를 보기가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자막이 오르기 전에 먼저 자리를 피해버리곤 했단다. 학습되는 전형적 서사가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그런 통상적인 서사가 반드시 전제하는 '끝'은 곧 정지이자 죽음이란 불길함 때문이다.
▲ 영화 <벗어날 탈 脫> 스틸 이미지 |
ⓒ 씨네소파 |
흥미로운 '덩어리' 같은 독창적 작품세계에 매혹당할 준비
그렇게 영화는 여자와 남자의 전혀 동떨어진 것 같던 상황을 조합해가며 융합시켜나간다. 물론 이게 실제인지 상상인지 온전히 분간하기란 불가능하다. 극 중에서 여자가 뻔한 서사와 기승전결 귀결에 식상해하는 것처럼 이 영화 또한 그런 전형성을 부정하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분투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과도하게 추상적인 관념에 집착한다. 초반의 그는 오직 수행에만 골몰하며 물을 마시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음식도 먹지 않는다. 속세의 것을 벗어나는 행위로 궁극에 이르고자 했던 고금의 수많은 종교적 고행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식욕을 느끼는 순간, 기이할 정도로 영화는 유쾌한 기운으로 가득해진다. 그리고 뱃속으로 먹어치워질 닭의 형상이 마치 좌선하는 것 같다는 암시는 관념과 세속의 경계를 침범하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여자의 전시 준비과정은 그의 오랜 트라우마와 겹쳐지면서 '해변의 사나이'를 구해내려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물론 그런 노력의 결실을 구체적으로 측량할 순 없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상황과도 연동되는 고립된 상태에서 겪는 신경증과 예술 창작의 고통, 그리고 시간의 연속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아우르며 관객 각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답이 없는 과제로 말이다.
추상미술처럼 전개되는 작업 스타일 덕분에 배경자료나 인터뷰를 찾아보게 되는 영화의 개성은 자연스럽게 현대미술 전시의 그것과 닮은꼴이다. 감독은 엔딩 크레디트에서 여러 불교 경전과 함께 이성복의 '아포리즘', 패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구절을 발췌 인용하고, 여자의 작업과정에서 공개되는 애니메이션 장면은 아마 감독 자신이 영향받았을 고전명작영화들을 푸티지로 소개하는 데 열심이다. 몬티 헬만의 <자유의 이차선>,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아서 펜 <보니와 클라이드>, 존 포드 <수색자>, 알프레드 히치콕의 <노토리어스> 이미지가 어디에 어떻게 등장하는지 살펴보는 퍼즐 게임도 겸비하는 영화인 셈이다.
그렇게 영화는 정지와 운동, 삶과 죽음, 주체와 객체, 깨달음과 허무를 대비시키며 영상으로 접하는 철학교재 마냥 난해하지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전한다. 불교 철학의 진한 그림자와 모든 걸 의심하게 만드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 속 풍경들도 떠올리게 된다. 무엇보다 예전 단편들로부터 일관되게 연결되는 눈부신 혼란과 기묘한 몰입의 찰나가 장편에서도 밀도 깊게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쯤 되면 상업적 고려를 감독에게 강요할 게 아니라, 서보형 감독의 독창적 스타일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극대화시킬지 방도를 함께 찾아보는 게 더 적절하고 현명해 보일 지경이다. 그만큼 말로 설명하기 힘든 <벗어날 탈 脫>, 그리고 감독의 만만찮은 작품 연대기는 그저 스쳐지나기엔 여운이 너무나 진하다.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작품정보>
벗어날 탈 脫 Not One And Not Two
2021│한국│비주얼 서스펜스
2024.02.21. 개봉│72분│15세 관람가
각본/감독 서보형
주연 임호준(영목 역), 위지원 (지우 역)
출연 성용훈(검은 옷 역), 김현정(선화 목소리 역), 이정훈(현우 역), 권다함(자전거 남 역)
우정출연 장준휘(큐레이터 규 목소리 역)
제작 사보타지 필름
배급 씨네소파
2021 26회 부산국제영화제
2021 47회 서울독립영화제
2022 2회 세계일화국제불교영화제
24회 Tours Asian Film Festival (프랑스)
8회 THIS Buddhist Film Festival (싱가포르)
8회 LA Experimental Forum (미국) -BEST PICTURE AWARD,
BEST NARRATIVE FEATURE, BEST FIRST FE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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