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해양 안보 시대, 무너진 해기사 양성 체계부터 바로 세워야

2024. 2. 2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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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여파로 이 일대를 운항하는 민간 선박이 위협받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 후티는 지난 20일 미국과 이스라엘 선박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랍의 테러 단체가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해 무차별적으로 상선을 공격하면서 해로가 묶이고 있다. 종전을 압박하기 위한 테러 단체의 의도적 도발에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군사 역량에서 미국과 비교도 되지 않는 테러 단체의 의도가 먹힌다면 유사한 상황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 불안해진 국제 해로·해양 안보
미 해양 패권 유지에 중대 위협
한국도 안보 차원서 바라봐야
해운산업 획기적 대책 수립을

민간 활용한 미국의 해양 안보

한국 해운업계를 이끌어갈 갈 한국 해양대·해사대 3학년 학생들이 지난 해 5월 원양해양실습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해양 통제권을 확보했고, 패권 국가가 됐다는 견해가 많다. 일견 맞다. 그러나 미국은 이보다 훨씬 전부터 바다의 중요성을 간파했고, 해양 패권 확보를 위한 시도를 이어갔다. 미국이 바르바리 해적의 극심한 약탈로부터 미국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1794년 해군을 재창설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은 1775년 해군을 창설했지만, 재정적 부담으로 1778년 해체한 상태였다. 해군 해체 뒤 약탈을 막기 위해 미국은 매년 100만 달러를 해적에게 헌납했다. 국가 예산의 6분의 1 수준이다. 국가 경제와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을 느낀 미국 정부는 해군을 재창설해 문제를 해결했다. 세계 최강의 해군력으로 전 세계 바다를 통제하며 막강한 상선단과 함께 통상의 주도권을 확보했고, 결국 국가 이익 창출과 패권 국가를 이루는 발판이 됐다.

이후 미국은 1920년 지극히 배타적이고 보호주의 성격을 담은 상선법(Merchant Marine Act/Jonnes Act)을 제정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상선은 반드시 미국에서 건조해야 하고, 선원도 미국 국적자여야 한다. 미국의 상선대(단)는 무역으로 이윤을 취하는 이상의 중요한 임무와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차 세계 대전을 통해 엄청난 양의 전쟁 물자를 유럽으로 수송해야 했지만, 적국의 공격을 우려한 외국인은 임무를 거부했다. 미국이 선택한 건 미국인 선원들로 이뤄진 민간 상선단이다.

미국이 1936년 연방정부에 설치한 해양위원회(MARCOM/1961년 연방해사위원회로 개편)도 마찬가지다. 상선 건조와 해운 산업을 통제하는 MARCOM은 산하 기관인 국방예비함대(National Defense Reserve Fleet/1946년, 98척), 해운안보계획(MSP:Maritime Security Program/1996년, 60척), 해운동맹 선박공유계약(Voluntary Sealift Agreement/2003년)을 통해 178척의 국가 필수 선박(민간 상선대)을 유지한다. 이밖에 군수 물자 운송에 방점을 둔 화물우선적취권(Cargo Preference)을 운영하고, MSP 상선에 매년 5백만 달러의 지원금도 지급한다. 상선을 통한 안정적인 전략 물자 수송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규군 이상의 공을 들이는 것이다.

국내 항해 전문가 확보 비상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필자가 보기에 해운 산업은 총체적인 위기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은 자원의 부족으로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런데 해양 운송의 중요성에 비해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아프리카 해적으로부터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함 1척을 번갈아 파병하고 있지만,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해선 미흡한 수준이다. 그나마 군 당국이 최근 기존의 5000t급 구축함(KDX-Ⅱ)보다 대공 방어 능력 등 성능이 뒤지는 KDX-Ⅰ급으로 낮춘 결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선단을 보호할 능력이 부족하다. 해군이 대양에서 국가이익을 수호하는 것보다 북한의 위협이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1997년 비상사태 시 전략물자의 안정적 수송과 우리 선원의 안정적 고용을 위해 국가 필수선대제도를 마련했고, 2006년부터 88척의 선박을 선정해 시험 운영 중이다. 하지만 전문인력 부족으로 국내 항해 전문가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선령 15년 미만의 2만t급 이상 상선에 외국인 승선 인원을 6명 이내로 제한한다는 기준을 충족하기가 만만치 않다. 선박 숫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항해사와 기관사 등 해기사로 불리는 선박 운영의 필수 인력은 시간이 갈수록 감소세다. 실제 2008년 800척이던 국적 상선이 지난해 1200척으로 늘었지만, 해기사는 8000명에서 6000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이 추세가 지속하면 2030년 선박은 1500척으로 늘어나지만 해기사는 5000명으로 줄어든다. 실로 위기다.

해양안보,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어

최근 해상교통로의 위협이 가중되며 해양 국가들은 안정적인 해로 확보에 명운을 걸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미국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정책으론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갈등 구도에서 호주, 스페인, 핀란드 등 기존에 친미 성향을 보였던 국가들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천문학적인 해로 안정화 비용을 미국에서 요구받거나, 테러에 직면하는 양자택일의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얼마 전 조선업이 불황을 겪으며 한국 조선산업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다행히 조선산업은 위기를 넘겨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해로 보호와 해양 안보, 특히 국내 해운산업 토대가 총체적으로 흔들리는 위기의 상황에 관해선 관심조차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이 해양을 패권의 수단으로 삼듯 한국 역시 해양 산업에 국가의 명운이 걸렸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라도 해양 산업의 보호를 위한 제도와 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대책 수립이 절실하다. 우선 해기사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해양 관련 전문가 양성 시스템이라도 정립해야 한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전국의 해양 대학들은 인근 대학에 통합될 위기이고,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은 오히려 사라지고 있다. 전문 교육기관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사관학교와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해운산업은 한 기업의 이윤, 국가의 경제를 넘어서는 안보의 영역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할 해기사는 군인 이상의 충성심, 사명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국가 지도자의 혜안과 뜨거운 국민의 지지로 올바른 정책적 결단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제2의 한진해운 사태는 막아야 한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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