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출산 지원, 현금보단 기업문화부터
설 연휴 전에 부영그룹이 직원 자녀 1인당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연년생 자녀를 출산한 세 가족과 쌍둥이 자녀를 출산한 두 가족에게 각각 2억원을 주는 등 모두 70억원을 화끈하게 쐈다. 이중근 부영 회장은 예전에도 통 큰 증여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여름에는 전남 순천의 고향 주민과 초·중·고 동창들에게 최대 1억원씩을 증여했다.
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인 이 나라에서 기업이 앞장서 출산 지원책을 내놓은 건 박수받을 일이다. 그런데 부영이 출산장려금 면세를 제안한 대목에선 머리가 복잡해졌다. 부영의 출산장려금을 증여로 보면 돈 받은 임직원이 10%인 1000만원의 세금을 내지만, 근로소득으로 보면 소득세 누진세율 구간이 높아져 세금이 늘어난다. 연봉 7000만원 직원이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받으면 3800만원의 세금을 더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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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영 1억 출산장려금 세금 논란
면세 위한 세법 개정은 신중해야
기업 육아휴직 비율부터 공시를
」
기껏 출산장려금을 줬는데 세금으로 뭉텅이가 빠져나가니 받는 직원이나, 주는 기업이나 속이 쓰릴 거다. 기재부의 첫 반응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일단 실태조사를 해보겠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설 연휴 직후인 13일 부산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의 자발적인 출산 지원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즉각 강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흘 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출산지원금에 대해 기업과 근로자에게 추가적인 세금 부담이 없도록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형평성에 어긋난다. 부영처럼 억대를 나눠줄 수 있는 대기업은 많지 않다. 포스코·금호·유한양행 등 일부 대기업만 출산 축하금을 준다. 중소기업을 포함해 출산장려금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박탈감만 커질 수 있다. 이미 있는 비과세 혜택도 제대로 못 누리는 이가 많다. 현재 기업이 근로자와 배우자의 출산이나 6세 이하 자녀 보육을 위해 지급하는 수당은 연간 240만원까지 비과세다. 하지만 2022년 근로소득 중 비과세 출산·보육수당을 신고한 근로자 1인당 평균수당은 67만9000원이었다. 기업의 출산·보육수당을 받는 이조차 비과세 혜택의 4분의 1만 누린다.
둘째, 세제를 이런 식으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즉석에서 고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리 대통령 지시가 있었더라도 충분히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래도 늦지 않다. 근로소득으로 보되 분할과세해 직원 세율을 낮춰 주고, 기업도 법인세 감면을 받게 해주거나 출산·보육수당의 비과세 한도를 높여 주는 방안이 흘러나온다. 어떤 식이든 감세는 정부가 할 일을 기업에 넘기는 게 본질이다. 출산지원 정책을 정부보다 기업이 더 잘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시라. 기재부는 1년에 한 번씩 세제개편안(세법개정안)을 모아서 발표해 왔다. 전체적인 세제의 큰 틀에서 세금을 결정하라는 취지라고 생각한다. 요즘 재정이 빠듯해서인지 세금으로 생색내는 정책이 너무 많다. 세수 감소가 크지 않다고 기재부는 주장하지만, 글쎄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지금 여유 부릴 때는 아니다. 발부터 뻗고 누울 자리를 만드느라 고생이 많다.
셋째, 출산 인센티브가 될지 불확실하다. 부영은 2021년 이후 자녀를 출산한 직원에게 줬다. 기존 출산의 축하금 성격이다. 미래의 출산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 투입한 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모른다.
현금 지원도 좋지만 우리 기업이 출산과 육아에 친화적인 기업 문화를 만드는 데 더 신경썼으면 한다. 눈치 안 보고 남성도 육아 휴가를 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출산과 육아 후 복귀하는 직원이 주요 업무에서 소외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육아휴직자 비율을 기업별로 공시해 출산·육아 친화경영을 향한 선의의 경쟁을 하게 하면 어떨까. 2017년 30대 그룹 중 육아휴직자 비율이 가장 낮았던 부영이 지금은 얼마나 개선됐는지도 문득 궁금하다.
글=서경호 논설위원 그림=심혜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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