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음세대와 명절 덕담 유감- 사과와 위로를 전하면서
추태화 이레문화연구소 소장은 전 안양대(기독교문화학) 교수를 지냈다. 독일 뮌헨대(석사)와 아우그스부르크대(Dr. Phil)에서 공부했다. 저서로는 ‘권력과 신앙 :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문화의 미로에서 길을 찾다’ 등 14권의 책을 펴냈다.
그런데 명절에 서먹서먹하게 만드는 풍경이 보인다. 아랫집 아이가 유명 대학에 입학했네, 윗집 아이가 대기업에 취직됐네. 아랫동네 누구는 판검사가 되었다지, 윗동네 누구가 큰 부자집에 시집 갔대…. 설날 아침상을 푸짐하게 차려놓은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들리면 금방 자녀들에게 눈길이 간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는데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래 너는?’ 비교의식이 고개들며 상대적 박탈감이 기어나오는 현장이다.
명절에 집을 찾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여러 미디어 보도가 일러준다. 한마디로 비교당하기 싫어서란다. 어른들 눈길이 추궁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층은 진학이다 취업이다, 그야말로 경쟁에 경쟁을 하고 있으며 팍팍한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데, 여기에다 비교까지 당하니 스스로 자괴감이 들 때도 있고, 청년에 속한다는 것 자체가 극한 인생이다. 최고만 인정하려는 사회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게다가 모든 물가는 감당 수준을 넘어가려 한다. 생활비이며 집값이며, 오르지 않는 게 없다. 데이트 비용도 만만치 않으니 무슨 연애며, 더구나 결혼을 생각이나 할 수 있으랴.
설 명절에 할 수 있는 덕담은 분명 축복이겠지만 축복의 말을 듣는다 하여 금방 반짝하는 변화가 있을 수 없으니 덕담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간다. 기성 세대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할지니.
아마도 다음세대는 기성 세대인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내세우며 질문하지 않을지 조금 염려스럽다.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 11:17) 다음세대가 즐거워해도 세대간 격차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고, 다음세대가 고통 당해도 역시 “요즘 젊은 것들이란!” 하면서 혀를 차며 돌아서기 일쑤다. 청년층은 기성 세대에 대해 공감능력과 인지능력 부족이라며 안타까워 하며 심지어 ‘꼰대’라고 비웃는다. 그렇다. 다음세대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다음세대는 우리와 같은 기성 세대에게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헌데 우리가 남겨준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뷰카(VUVA) 시대이다. 이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으로 조합된 신조어이다.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확실하게 물려준 것은 유감스럽게도 뷰카인 셈이다. 안개 속 같은 뷰카 시대에 신자유주의, 뉴노멀, 4차 산업혁명 파도가 밀려들고 인공지능(AI)이 상용화 될 기세가 드높다. 앞으로 수천 수만의 챗GPT가 세상에 등장하면 그야말로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셈이다. 사라지는 직업, 새로 생겨나는 직업으로 세상의 판도는 그동안 인류가 경험했던 것 이상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이미 잉여인간이란 용어도 생겨나고 기업에서 실직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AI를 활용한 LoT, 로봇들이 노동 영역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다음 대가 어려서부터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다 하더라도 시대와 사회적 안전망은 기성 세대가 구축해 놓았어야 했다. 세대간 연착륙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구조를 준비해 놓았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 기성 세대는 저희들 밥그릇 다툼에 발이 빨랐고 권력 싸움에 전력 투구하여 국론 분열이라는 상황에 봉착했다. 견리사의(見利思義)는 멀리 있었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 6:33)라는 주님 말씀은 뒷전이었다. 미래와 다음세대는 안중에 없었다는 말이다. 물론 기성 세대가 애쓰고 수고한 보람은 확실하다. 현재 누리는 모든 성과는 기성 세대의 헌신에서 비롯되었다. 누가 이를 부인하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유증이 없다 할 수 없으니 역기능 현상이 드러난 것이다. 예를 들면 위험사회(U. Beck), 수축사회(홍성국), 피로사회(한경철), 불안사회, 우울사회, 히스테리사회, 분노조절장애사회, 초개인화사회, 양극화 등의 용어가 등장했다. 이제 다음세대는 불확실한 생존 현장에서 무한경쟁, 각자도생이라는 생의 방식에 자연스레 내몰리게 되었다. 이는 실존의 고통이요 시대의 비극이다. 요즘 쇼펜하우어가 다시 읽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 현상을 사례로 심각하게 짚어봐야 한다. 명절 덕담이 오히려 부담스럽고 미안한 것은 이런 자각과 죄책감 때문이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생명과 자연, 그리고 사회공동체(나라와 민족)를 하나님의 섭리에 맞게 최선을 다해 섬기지 못했습니다. 죄로 오염된 우리의 내면이 그대로 탐욕과 과욕으로 드러나 환경 오염, 환경 파괴, 기후 위기를 초래했고, 정신 건강(Mental Health) 균형이 깨지므로 건전한 사회 질서와 규범에 혼란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둘째,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일선 정치인들과 다음세대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방관적인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와 과오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반성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하여 사회에 여러 분야에서 양극화, 국론 분열 등이 심화되는 지경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음세대가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의 지식과 방법론을 믿고 교만하게 행동한 점을 사과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는 약속(창 1:28)과 은혜를 간과하고 우리의 얇팍한 예견으로 인구 문제를 조절, 통제할 수 있다는 과신을 뼈아프게 반성합니다. 초고령화, 저출산율, 학령 인구 감소, 노동 인구 절감, 인구 절벽, 국가 소멸 등과 같은 참극이 다가오도록 해서는 안 되었는데 다음세대가 그 후유증을 안고 가도록 방치한 점을 사과합니다.
넷째, 다음세대를 하나님의 복된 자녀로 여기며 따스한 사랑과 말씀의 훈육으로 대했어야 하는데, 세대 갈등에 함께 부화뇌동하여 다음세대를 미성숙한 세대라 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것이 불찰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다음세대는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세대임을 인정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기성 세대를 모델로 하여 성장하였기에 더욱 미안한 마음입니다. 우리도 휘청거리며 흔들려 왔기에 이유 불문하고 다음세대에게 우리의 실수와 오판이 전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아비 세대를 부디 용서해주고 함께 현실을 타개해 나가기 기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사막의 길을 걷는 백성에게 선포하게 하십니다.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무한 경쟁 사회에 내몰려 마치 사막과 광야 같은 길을 걷는 다음 세대에게, 이제 인간의 빈약한 말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주 하나님의 말씀을 빌어 기원합니다. 다음세대는 하나님의 언약이 보증하는 확실한 약속 위에 서기를 기도합니다. 일점 일획이라도 변치 않으시며 다 이루시는 주님 말씀이 다음세대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를 맛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새해에는 더욱 크신 은혜와 복이 다음 세대에게 임하시길 기원합니다.
명절 덕담을 대신하여 말씀으로 응원합니다. 우리의 다음세대로 하여금 말씀 위에 서서 이렇게 외치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 126: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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