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쿠바 수교 후 두문불출…안팎으로 코너 몰린 김정은 선택은?
북한이 형제국인 쿠바와 한국의 국교 정상화 이후 관련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주일째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연초부터 이어졌던 포격, 순항미사일, 핵 어뢰 등 다양한 군사 도발도 잠시 소강상태다.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김정은의 마지막 공식일정은 지난 14일 오전 북한 해군에 장비할 신형 지상대해상미사일인 '바다수리-6형'의 검수사격을 지도한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밤 한국과 쿠바는 외교관계 수립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김정은의 잠행은 22일까지 북한 보도를 기준(지난 15일)으로 7일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2주년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과 관련한 각종 행사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선 한-쿠바 수교로 인해 전열정비가 필요한 만큼 김정은이 다양한 외교적 선택지를 두고 장고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한국과 쿠바의 수교 발표 다음날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나서 북·일 정상회담에 호응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또 3월 중순 러시아 대선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북할 가능성도 지속적으로 거론된다.
특히 일본을 공략해 한·미·일 공조를 흔들며 반제·반미 외교 노선을 재설정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하지만 북한이 조건으로 내건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핵·미사일 거론 불가'에 대해 일본 내 여론은 경계하는 분위기가 더 짙다.
결국 '실탄'이 마땅치 않은 가운데 불법 행위의 '공범'인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한층 더 과시하는 게 김정은의 1차적인 선택지로 보인다. 제재 품목에 해당하는 고급 승용차를 주고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정상 간 '케미스트리'를 부각시키고, 군사·외교 분야에 이어 노동당·농업·정보산업·수산·체육 대표단을 잇달아 러시아에 파견하며 양국 간 협력을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와의 밀착을 더욱 강화하면서 한국과 쿠바의 수교에 따른 충격을 만화하려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사상 단속을 강화하면서 민심 이반을 방지하고 내부결속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경제부문에서의 '규율' 확립을 강조하는 동시에 김정은이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시한 '지방발전 20×10 정책'의 관철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21일 국가경제 사업에서 '무규율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자인하면서 "지금이야말로 경제규율을 강하게 세우기 위한 사업을 당적, 법적으로 적극 밀어주고 담보해 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지난달 초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중국 동북부의 지린(吉林)성의 공장 여러 곳에서 임금 체불에 반발해 집단 행동에 나섰던 사태를 주목했다. 단순 파업이 아니라 폭동 수준의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이 재발 방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정대진 교수는 "북한 당국이 초유의 폭동사태로 인해 적잖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체제 보존을 위한 외화벌이와 사상이완 우려라는 모순적 상황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고민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은 유일 영도체계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새삼 김정은 정권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19일 1면에 실은 사설에서 "유일적 영도체계는 우리 혁명의 백전백승의 힘이며 우리 국가의 존엄이고 위력"이라며 "당과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에 저해를 주고 일심단결을 파괴하는 사소한 현상과 요소에 대해서도 각성있게 대하고 강도높은 투쟁을 벌려나가야 한다"고 독려했다. 대내외적인 어려움에도 동요하지 않고 김정은 정권에 충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장은 규율과 통제를 강조하면서 내부결속에 방점을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출구전략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며 "한-쿠바 수교에 따른 외교적 압박과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국지도발이나 국면전환용 북·일 또는 북·러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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