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의사 파업, 실패 답습하는 정부…피해는 국민에

신대현 입력 2024. 2. 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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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20년 전이나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정부는 공공병원을 동원해 부랴부랴 대처하다가 결국엔 무릎을 꿇는 일이 최근 20여년간 3차례나 반복됐다. 달라진 것은 없다고 지난 파업들을 몸소 경험한 이들은 말한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4번째 의료대란이 시작된 가운데 정부는 이번엔 반드시 의료개혁을 완수한단 계획이지만, 실패를 답습하는 정부에 국민들의 기대는 옅어지고 응급상황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단 불안감이 커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김혜경 전 대한공공의학회 회장은 21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1999년 말부터 2000년 말까지 1년간 이어진 의약분업 사태를 회고하며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1988년 구리시 초대 보건소장을 시작으로 경기도 보건과장, 수원시 장안구보건소장 등 수원시 4개구 보건소장을 역임한 공공의료 전문가다.

김 전 회장은 2000년 의약분업 사태로 촉발된 의료공백을 틀어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의료진 중 한 사람이었다. 의약분업 제도는 의약품 처방은 의사가, 조제·판매는 약사가 담당하도록 의사와 약사의 직능을 분할한 법이다. 당시 전국 병·의원 대부분이 의약분업에 반대해 휴진했고, 개원의와 전공의(인턴·레지던트)의 파업 참여율은 90%에 달했다. 의약분업 제도는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의사단체는 의과대학 정원 10% 감축, 의사면허 취소 조건 강화 등의 전리품을 챙기며 사실상 승리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의약분업 파업으로 보건소는 극심한 업무 과중에 시달려야 했다. 김 전 회장은 “그때도 지금처럼 정부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소의 연장 근무를 지시했지만 우리가 뾰족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며 “보건소는 진료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 의료기관 관리 기능까지 해야 하는데 병·의원들이 파업하지 않게 홍보하고, 파업한 의료기관의 인력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증거를 수집하는 역할까지 수행했다”고 전했다.

의사 파업은 이어졌다. 2014년 정부가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영리화를 추진하려 하자 의료계는 또 반대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일부 필수의료 인력을 제외하고 전공의 대다수가 환자를 등졌다. 가장 최근인 2020년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도입 정책으로 촉발된 파업도 병의원의 집단 휴진과 전공의 총파업으로 좌절됐다. 의대생들은 의사면허를 따기 위한 국가시험을 거부했다. 정부는 시험을 거부한 의대생을 구제하기 위해 유례없는 추가 시험 기회를 제공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이 환자와 보호자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커지는 ‘환자 피해’에 매번 백기 든 정부

의료계 파업 때마다 정부는 의사단체에 백기를 들었다. 의사들은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 피해’였다. 의대 입학정원 2000명 확대 정책으로 촉발된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해 현재 전국의 병원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환자 피해는 두말할 것도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일 오후 6시를 기준으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신규 접수된 환자 피해 사례는 총 58건이다. 주로 일방적인 진료 예약 취소, 무기한 수술 연기 등이다. 수술 취소 등에 따라 발생한 손해보상을 위해 법률 서비스 지원을 요청해 법률구조공단으로 연계한 사례가 있었다. 또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부재로 수술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은 환자가 결국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비극은 온전히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몫이다. 2020년 파업 때 경기 의정부시에서 30대 심정지 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또 부산시 북구에선 음독 환자가 발생해 119구급대가 경남과 부산지역 대학병원 6곳, 2차 의료기관 7곳에 치료를 문의했지만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이송할 병원을 찾지 못했다. 3시간 만에 울산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중증질환자들은 지금을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21일 호소문을 통해 “중증질환자들은 질환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에 더해 앞두고 있는 수술이나 치료가 연기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의협과 정부의 강대강 대응으로 의료공백이 장기화돼 희생양이 되는 환자의 사례가 거듭되는 게 두렵다”고 토로했다.

서울시의사회는 15일 저녁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의대 증원 확대와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파업 ‘연전연승’에 콧대 높아진 의사들

거듭되는 파업에 정부를 무릎 꿇려온 의사단체는 기세등등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며 “의료대란이 현실화하면 여론의 화살은 방향을 바꿔 정부를 향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노 전 회장은 지난 2014년 전국 의사 총파업을 주도한 바 있다. 김택우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도 지난 17일 열린 제1차 비대위 회의에서 “단 한 명의 의사라도 면허 관련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의사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전문가는 정부의 무른 대처가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20일 자정 MBC ‘100분 토론’에서 “의협은 2000년 이후 의사 파업을 통해 정부의 정책을 매번 무산시켜왔고, 이번에도 의대 증원 결정을 무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번에도 파업에 굴복해 증원에 실패하면 앞으로 언제 다시 증원 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될 지 모른다”고 짚었다.

정부는 의사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의료현장에 복귀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강제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의료계 집단행동 관련 관계 부처 합동브리핑’을 통해 “불법적인 집단행동으로 인해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한다면 적용 가능한 모든 법률과 사법적 조치를 강구해 가장 높은 수준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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