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600건 새어나갈 뻔" KF-21 기술유출, 경찰 곧 수사 착수

이근평 2024. 2.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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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21 공동 개발을 위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파견된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관련 자료를 외부로 빼돌리려다 적발된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본격화한다. 1차 조사 결과 중요 기술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방위사업청이 지난해 6월 28일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보라매)의 마지막 시제기인 6호기가 경남 사천 제3훈련비행단에서 오후 3시 49분 이륙해 33분 동안 비행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KF-21 시제 6호기.방위사업청

21일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에 따르면 방위사업청·국군방첩사령부·국가정보원으로 구성된 합동 조사단은 인도네시아 국적 KAI 파견 연구원 A씨를 경찰에 수사 의뢰하기로 하고 이날 관련 절차에 착수했다. A씨는 지난달 17일 비인가 USB 여러 개를 지닌 채 퇴근하다가 검색대에서 적발돼 현재 출국이 정지된 상태에서 조사에 응하고 있다.

향후 경찰은 A씨의 방산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전망이다. A씨가 수년간 축적한 KF-21 관련 방산기술을 절취했는지 정확히 확인하기 위한 강제 수사도 예상된다. 지금까지 합조단 조사는 A씨의 협조로 임의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이뤄져 증거 인멸 우려가 계속 제기됐는데, 경찰은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광범위한 관련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또 디지털 포렌식 등 과학수사를 통해 보다 정확한 전말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수사의 핵심은 USB에 담긴 자료의 기밀 여부다. 조사단은 A씨가 가지고 나가려던 USB에 적게는 4000건에서 많게는 6600건의 자료가 담긴 것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이런 규모라면 KF-21의 주요 기술 상당수가 담겼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최근 KAI는 USB 내 수천 건의 자료 중 ‘유의미한 내용’은 극히 일부라는 취지의 자체 조사 보고서를 조사단에 제출했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유의미한 내용은 채 10건이 되지 않고 일부는 KAI가 기술 공유를 허여(許與)한 자료이지만, 일부는 무장 탑재된 KF-21 설계도면을 무단으로 촬영한 자료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조사단은 또 A씨 주도 하에 나머지 16명의 인도네시아 국적 파견 기술진이 이런 자료를 토대로 본국에 보내는 보고서를 작성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한다.

USB에 KF-21의 3차원 모델링 프로그램인 ‘카티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혹도 풀어야 할 쟁점이다. 해당 자료는 설계도면을 입체화한 것으로, KF-21 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

다만 KAI 측은 카티아 유출 가능성에 대해선 그동안 선을 그어왔다.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KF-21 기술을 자체 학습하는 과정에서 카티아나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볼 수는 있지만, KAI의 기술을 직접 유출하는 건 엄격한 통제 시스템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사권이 없는 조사단으로서는 이런 이론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경찰은 보다 폭넓은 자료와 진술 확보를 통해 이런 의혹의 진위 여부를 명확히 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A씨가 직접 기술을 유출한 게 아니라 카티아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며 연습한 것이라 해도 해당 과정에서 규정 위반이 없었는지, KAI가 이를 인지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는 별개로 따져볼 문제다. 궁극적으로는 KF-21 기술 관련 보안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출고식을 앞둔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 방위사업청


USB에 자료가 담긴 시점과 경위도 규명해야 할 사항이다. KAI 개발센터 내 USB 포트엔 정보유출방지(DLP) 시스템이 깔려있는데, 여기엔 해당 USB의 로그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A씨 역시 “USB를 전임자에게 인계받았을 뿐 이들 USB를 KAI에서 사용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적발된 USB가 전임자에게 받은 것이라면 이는 오히려 오래 전부터 관련 기술 정보가 본국과 파견 기술진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USB에 인도네시아어로 작성된 다수의 보고서가 담겨 있다는 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일각에선 수사와 별개로 원점으로 돌아가 USB 자료 중 유의미한 내용을 추리는 작업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산기술 또는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애초에 제대로 분류·지정되지 않아 유의미한 자료로 평가되지 않은 내용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KAI 측은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지난 2일 “군사기밀이나 방위산업기술보호법에 저촉되는 자료는 현재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입장을 냈다. 하지만 기밀 분류 체계 자체가 미비했다면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어도 국가 안보에 해를 끼치는 행위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경찰 수사와 별개로 방사청과 방첩사는 USB 내 자료들이 방산기술 또는 군사기밀에 해당되는지, 이같이 분류·지정이 안 돼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계속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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