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냐 출구 전략이냐…키옥시아 눈덩이 손실에 하이닉스의 딜레마
일본 낸드플래시(낸드) 제조 기업 키옥시아 실적 악화로 이 회사에 투자한 SK하이닉스 고민이 깊다. 2018년 SK하이닉스는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이 주도하는 한미일 컨소시엄으로 키옥시아에 약 4조원을 투자했다. 기대와 달리, 키옥시아가 조(兆) 단위 손실을 기록하면서 SK하이닉스 영업외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최근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 간 합병 재개 움직임도 SK하이닉스는 달갑지 않다. 합병 후 키옥시아가 낸드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시장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어서다.

키옥시아, 실적 반등 난망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니케이)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키옥시아는 일본 회계연도 시작 월인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2540억엔(약 2조3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번 적자 규모는 키옥시아 전신 도시바메모리사업부 발족 후 17년 만에 가장 큰 규모라고 니케이는 전했다. 니케이는 적자 원인으로 스마트폰·PC용 낸드 수요 부진을 지목했다. 키옥시아는 과거 일본 반도체 기업 도시바메모리코퍼레이션이 전신이다. 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메모리에 데이터가 계속 저장되는 플래시메모리의 일종인 낸드가 주력 제품이다. 세계 낸드 시장점유율 2위다.
키옥시아 부진은 SK하이닉스 실적에 큰 부담을 준다. 키옥시아 실적 저조로 지난해 4분기 SK하이닉스의 키옥시아 투자자산 평가손실은 1조4300억원에 달했다. 이 기간 SK하이닉스 전체 영업외손실(-2조2200억원)의 절반 이상이 키옥시아 투자자산 평가손실에서 초래됐다. SK하이닉스는 2022년에도 낸드 업황 침체에 따른 키옥시아 실적 악화로 1조883억원의 평가손실을 냈다. 투자 지분 재평가는 실제 현금 유출입과는 무관하지만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키옥시아 투자 자산 평가손실이 영업외 일회성 손실로 반영되면서 SK하이닉스는 2023년 4분기까지 5개 분기 연속 순손실을 이어갔다.
최종 감사 과정에서 평가손실 규모가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 투자 구조가 복잡하고 투자 자산 규모와 비중이 커 SK하이닉스도 키옥시아홀딩스 투자 자산에 대한 가치 측정을 직접 하지 않는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삼일회계법인은 SK하이닉스 핵심감사사항(KAM)으로 ‘키옥시아홀딩스코퍼레이션(키옥시아홀딩스) 투자 관련 금융 자산의 공정가치 평가’를 적시했다. 키옥시아홀딩스 가격의 적정성과 도출 과정의 합리성 등을 중점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문제는 단기간 키옥시아 실적 반등을 기대하기 난망하다는 데 있다. 키옥시아는 2022년 3분기부터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22년 4분기 1714억엔(약 1조5600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1·2분기에도 대규모 손실을 냈다. 시장점유율도 하락세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키옥시아는 지난해 3분기 점유율 14.5%로 낸드 3위 자리를 웨스턴디지털에 내줬다.

키옥시아, IPO 재추진할 듯
사정이 이렇자 SK하이닉스 안팎에서는 키옥시아 출구 전략(Exit)에 관한 의구심이 커진다. 그룹 차원에서 투자 전략 전체를 돌아보자는 재무 기조가 확산하면서 키옥시아를 이대로 두고 봐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투자 구조상 당장 SK하이닉스가 주도적으로 출구 전략을 짜기도 간단치 않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에 총 4조원가량 투자했다. 이 가운데 2조7000억원은 사모투자펀드(PEF) 베인캐피탈이 만든 펀드의 출자자(LP·유한책임사원)로 참여했다. 나머지는 당시 도시바메모리가 발행한 1조3000억원어치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데 썼다. 2조7000억원의 투자금은 펀드 출자자로 참여한 것이라 키옥시아를 상대로 직접 경영권을 행사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사모펀드(무한책임사원·GP) 주요 출자자로 간접적인 지배력은 행사할 수 있으나 유한책임을 지는 LP 자격으론 의결권이 없어 매각 등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자본시장법상 자산 매각 시기, 가격, 방법 등은 무한책임사원 권한이다. 다만, SK하이닉스가 가진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의결권 지분 15%를 확보할 수 있다.
크게 보면, 2조7000억원은 재무적투자자(FI)로, 나머지 1조3000억원은 CB 인수로 향후 합병을 견제하기 위한 비용 지출 성격이 짙다. 키옥시아 지분 투자 당시 미국 웨스턴디지털 등과 치열한 경쟁 끝에 SK하이닉스 컨소시엄이 승기를 잡았다. LP로 GP 의사 결정에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CB 인수로 의결권 지분 확보의 교두보를 마련함으로써 SK하이닉스 시장 지위에 잠재 위협이 될 수 있는 합병 등 주요 의사 결정을 전략적으로 견제할 수 있도록 구조를 짰다.
그럼에도 작금의 업황에 비춰 SK하이닉스 입장에서 뾰족한 출구 전략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게 반도체업계 시각이다.
낸드 업황을 고려하면 키옥시아 지분을 무작정 장기 보유하는 것도 마뜩잖다. 과점 구조 D램 시장과 달리, 낸드 시장은 다수 사업자로 파편화돼 있어 감산을 통한 가격 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낸드 시장은 업황 회복 시기를 가늠하기 힘든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키옥시아 지분을 장기 보유하는 것은 전략적 시너지보다는 마이크론이나 중화권 기업 등 경쟁사에 넘어가는 상황을 막는 방어적 차원의 선택지”라며 “SK하이닉스의 낸드 시장 지위를 고려하면 경쟁사에 키옥시아 지분을 넘기는 것은 고려하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재무적 평가손실을 줄이려면 키옥시아·웨스턴디지털 간 통합으로 회사 가치를 끌어올려 이후 기업공개(IPO)를 재추진하는 것이 차선의 시나리오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콘퍼런스콜에서 “원래 계획은 상장 이후 재무적투자자 형태로 투자한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두 회사 간 합병과 통합법인 상장은 ‘양날의 검’이라는 평가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선 투자 이익 극대화로 설비 투자 동력으로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시장 구조가 이익을 결정짓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키옥시아·웨스턴디지털 간 통합은 SK하이닉스의 낸드 시장 지위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의 낸드 점유율을 단순 합산하면 31.4%로 SK하이닉스·솔리다임(20.2%)보다 11.2%포인트 높다. 무엇보다 현시점에서 합병과 이에 따른 시장 구조 변화 등 미래 리스크의 정교한 측정이 힘들다는 게 난제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SK하이닉스는 “투자 자산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동의하지 않고 있다”며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 간 통합에 사실상 반대했다. 이 탓에 회계적 숫자에 불과한 평가손을 일정 수준 감내하는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게 반도체업계 시각이다.
베스트 시나리오는 낸드 업황 부활로 평가손실이 일단락되고 향후 키옥시아가 자체 동력으로 상장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최근 키옥시아는 8세대와 9세대 낸드플래시 양산 전략을 발표하며 성장을 모색 중이다. 키옥시아는 이르면 2025년 3분기부터 일본 미에현과 이와테현 공장에서 8세대와 9세대 낸드플래시를 양산한다. 총 투자금은 7000억엔으로 생산시설을 공유하는 웨스턴디지털과 이를 분담한다. 키옥시아 낸드플래시는 대부분 6세대에 머무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경쟁사가 200단 이상 8세대 공정으로 전환을 서두르는 가운데 더 이상 선단 공정 투자를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키옥시아는 내년 8세대 낸드플래시 양산을 계기로 실적이 개선되면 다시 상장을 시도하거나 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7호 (2024.02.21~2024.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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