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연의 일치일까…현실이 되어가는 KFA 고위관계자 '한 마디' [IS 시선]
김명석 2024. 2. 21. 19:03
“정해성 위원장 같은 이런 분들이 (전력강화위원장으로) 가고, 새로운 감독을 한국 사람으로 해서 수순을 밟으면 제가 볼 땐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3일이었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 탈락 이후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의 경질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선 대한축구협회의 경기인 출신 임원회의가 열렸다. 아시안컵에 대한 리뷰와 더불어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를 처음으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불참해 사실상 반쪽짜리 회의로 전락한 가운데, 이석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정해성 당시 대회위원장의 전력강화위원장 선임과 한국인 감독으로 차기 사령탑을 선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마이클 뮐러 당시 전력강화위원장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위원장 교체를 밝힌 데 이어, 차기 사령탑의 국적 기준에 대한 의견까지 더한 것이다.
클린스만 감독의 처참한 실패 이후 쇄신과 새 얼굴을 간절히 바라던 팬심과는 정반대의 의견이기도 했다. 정해성 위원장은 오랫동안 한국축구, KFA와 연결고리가 굵었던 인물이자 지난해 정몽규 회장 주도로 진행됐던 축구인 사면 논란에 반대 의사를 내비치지 못했던 ‘내부 인사’였다. 국내 지도자들 중에서도 역량 있는 감독들은 많지만, KFA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내 감독보다는 능력 있는 외국인 지도자를 선임해야 한다는 게 주된 여론이었다. 이석재 부회장의 앞선 발언은 전력강화위원장 후보도, 차기 감독의 국적 기준도 여론과 반대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석재 부회장의 그 한마디가 하나둘씩 현실이 돼가고 있다. 정해성 위원장은 실제 새로운 전력강화위원장으로 선임됐다. KFA는 별다른 선임 배경조차 밝히지 않은 채, 정 위원장의 선임 소식을 지난 20일 알렸다. 10명의 전력강화위원들도 모두 바뀌었다. K리그, WK리그 등 현역 감독들과 함께 해설위원, 사업가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들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을 선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전력강화위원이 됐다.
뿐만 아니었다. 전력강화위원회가 꾸려진 다음날 전력강화위원회 첫 회의.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브리핑을 통해 “국내 감독과 해외 감독 모두 열어 놓기로 했다”면서도 “3월에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예선 2경기가 있다. 상황을 봤을 때 그래도 '국내 감독 선임에 비중을 둬야 하지 않겠나'라고 의견이 모였다”고 밝혔다. 이어 “해외 감독이 오면 선수들에 대한 파악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K리그 현직 감독들은 문제가 없을 것이고, 쉬고 계신 감독들도 충분히 전력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외국인 감독 선임 가능성을 아예 닫아놓은 건 아니지만, 사실상 한국인 감독으로 선임하겠다는 기준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는 설명이었다. 더구나 '3월부터 정식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구상까지 밝혔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만큼 3월은 임시 감독 체제로 운영하고, 그 다음 A매치 기간인 6월까지 시간적 여유를 활용해 제대로 된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의견에 사실상 선을 그었다.
오는 주말 전력강화위 2차 회의가 열릴 예정이고, 거듭된 회의를 통해 방향성이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여러 정황상 이날 회의에서 가닥이 잡힌 기준이 바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지난 KFA 임원회의에서 나왔던 이석재 부회장의 한마디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기엔 석연찮은 구석들이 많다. 기자회견에서 나온 관련 질문에 정해성 위원장은 “부회장님의 의견이었지 다른 건 없었다. 그 말씀 때문에 이 중책을 맡은 건 아니다. 개인적인 의견 이후에 (선임이) 정해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떠한 절차를 거쳐 전력강화위원장 역할을 맡게 됐는지, KFA는 어떤 배경으로 정해성 위원장을 선임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동안 KFA의 의사 결정 방식은 굉장히 수직적이었다. 사면 논란 때도 그랬고, 클린스만 선임 과정 때도 그랬다. 당시 전력강화위원회가 유명무실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간 거센 비판을 받고도, 공교롭게도 고위 관계자의 의견대로 KFA가 다음 스텝들을 밟아가고 있다. 그것도 여론과는 정반대고, 그간 알려졌던 KFA의 내부 방침과는 일치한다.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건 KFA의 그간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최대한 빨리 새 감독을 선임해 클린스만 사태를 끝내겠다는 게 KFA의 계획이겠으나, 첫 회의에서 가닥이 잡힌 기준들이라면 앞으로도 거센 후폭풍들이 불가피한 일들만 남았다. 외국인 감독이 아닌 국내 감독이 선임되는 것만으로도 여론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고, 만에 하나 이 과정에서 K리그 현역 감독을 빼오기라도 한다면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궁지에 몰린 상황일수록, 여론이 들끓는 상황일수록 더욱 신중하고 철저해야 할 상황. 마치 기준과 방향성이 정해진 듯한 흐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김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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