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뺏고 적반하장, ‘내남결’ 송하윤의 변신 [쿠키인터뷰]
안방에서 들리는 밀어에 여자는 긴장한다. 문을 활짝 열어보니 남편이 낯선 여자와 누워 있다. “와, 씨” 떨리는 목소리에서 억누른 울화통이 전달된다. 배우 송하윤은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이하 내남결) 15화에 등장한 이 3초로 ‘연기 천재’라 환호받았다. “모르겠어요. 그땐 (감정이) 그렇게 나왔나 봐요.” 드라마 종영을 앞둔 20일 서울 청담동 킹콩by스타쉽 사옥에서 만난 송하윤은 이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그가 연기한 정수민은 고등학교 동창 강지원(박민영)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빌런(악당). 회사 동료와 눈 맞은 남자친구 때문에 눈물짓던 백설희(KBS2 ‘쌈, 마이웨이’)의 화려한 변신이다. 송하윤은 20년 가까이 연기를 하면서도 악역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에선 남편의 외도를 모른 채 마냥 해맑은 세경을 연기했고, MBC ‘내 딸 금사월’에선 어린 시절 기억을 잃고 갖은 고생을 하는 오월이 됐다. 그래서일까. 송하윤은 한때 “내 연기에 질려 있었다”고 했다. 매번 비슷한 얼굴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서다.
권태에 지쳤을 때 만난 ‘내남결’에서 송하윤은 이전과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화를 낼 땐 입술 근처 근육이 파르르 떨렸고, 가족에게 버림받았다 생각했을 땐 목이 새빨개지도록 오열했다. 근육이나 세포를 마음대로 조절할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송하윤은 고개를 젓더니 “나도 TV를 보며 ‘수민이 열받았네’ 한다. 정수민을 구경하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현장에서 독한 대사를 들으면 손이 떨리고 머리가 핑핑 돌아요.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지거나 몸이 떨리기도 하고요. 나이를 먹으면 얼굴에서 삶이 보인다고 하잖아요. 정말 그렇더라고요. 나쁜 역할로 살아보니까 인상이 달라진 것 같아 거울을 보고 놀랐어요.”
송하윤은 ‘내남결’을 준비하며 정신과 의사와 프로파일러를 찾아갔다. 수민이 어떤 심리인지, 그것이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수민과 지원의 학창시절 장면을 찍는 날 촬영장을 찾아가 청소년 배우들 연기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는 “수민과 지원의 과거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때가 내겐 수민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며 “어린 지원을 연기한 배우 엄서현과도 몇 시간씩 통화하며 캐릭터 분석 등을 공유했다”고 돌아봤다. 이런 송하윤에게 수민의 삶을 온몸으로 경험한 여운은 길게 남았다. 인터뷰 도중 “교도소에 두고 온 수민이 마음에 걸린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힐 정도였다. 말하는 내내 목소리를 자주 가다듬기도 했다. 악쓰는 연기를 하느라 목을 다쳐 치료받고 있단다.
19세에 연기를 시작해 출연한 작품만 30편 남짓. 송하윤의 필모그래피엔 누군가의 ‘인생작’이 많다. 드라마 데뷔작인 MBC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과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쌈, 마이웨이’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내남결’도 그에겐 소중하다. 송하윤은 “이 작품 덕분에 연기 가치관이 넓어졌다”고 했다. 이전까진 “내 안에 배역을 왕창 넣어서 일상에서도 배역의 성격에 가깝게 지내려는 편”이었지만, 수민을 표현할 땐 “나와 배역을 분리해 굉장히 이성적으로” 연기했다. 1년여의 여정 끝에 송하윤은 새로운 무기 하나를 얻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수민은 작년의 송하윤이 표현할 수 있는 악인이었다”며 “정수민을 소화한 후의 송하윤은 또 다른 느낌으로 악인을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지금껏 제가 연기한 배역과 경험이 쌓여 수민이를 완성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설희를 연기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수민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을 거예요. 저도 그래요. 제가 배우로 보낸 많은 시간이 쌓여서 지금의 제가 됐어요. 그래서 지나간 실패나 잘못마저 저는 좋아요. 좋은 내일도 오늘을 잘 보내야 맞이할 수 있다고 믿으며 하루를 잘 쌓아가려고 해요. 이제는 어떤 역할이든 재밌게 다르게 연기할 수 있을 거란 용기가 생겼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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