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 남겨질 두 딸을 위한 엄마의 선물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세상 모든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죽음 앞에 선 환자와 남겨질 가족이 서로 전하는 따뜻한 말들, 그리고 손을 내밀면 따뜻하게 잡아주는 그 손의 온기는 생명의 고귀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줍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죽음으로 인해 헤어짐을 맞이해야 하는 이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너무나 절절합니다.
환자분은 늘 아프기만 했던 엄마가 너무나 싫었는데 자신도 똑같이 아픈 엄마가 되었다는 것에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아픈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로운 청소년시기를 보냈는데 내 자식들도 그렇게 살게 되는 게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과거 어머니를 향한 원망과 그리움, 미래 자식들을 향한 불안과 걱정이 환자를 괴롭게 붙잡고 있었습니다. 가슴 아픈 과거의 기억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두려움이 환자의 아픈 몸을 더욱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환자 옆에 앉아서 환자의 뒤엉킨 감정들을 함께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분의 대화는 늘 같았습니다. “우리 애들 불쌍해서 어쩌지요?”로 시작해서 “결혼할 때 엄마가 없어서, 임신했을 때 엄마가 없어서, 산후 조리할 때 엄마가 없어서”로 끝나는 걱정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엄마를 그리워하던 과거 자신을 향한 연민을 쏟아내곤 했습니다. 혼란스럽고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을, 저는 창의적 작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래의 자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했습니다. 그것들을 적고, 그리고,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해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했을 때 전해줄 위로의 말, 첫 이성 교제 때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조언, 결혼할 사람을 고를 때 발휘할 지혜, 임신하고 입덧이 심할 때 알면 좋은 팁, 산후 조리 때 친정엄마가 필요할 텐데 옆에 없어서 미안하다는 사과…. 환자분은 마치 외로웠던 과거의 자신을 돌보듯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것처럼 뚝딱뚝딱 거침없이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사무치는 눈물도 흘렸지만 환하게 웃을 수 있었고, 딸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희망과 기대감도 품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우리 엄마도 나 어릴 때 떠나면서 얼마나 힘들고 속상했을까?”라며 처음으로 친정엄마를 향한 원망이 아닌 이해와 용서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딸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담은 그 작품들을, 딸들이 시집갈 때 친정엄마가 예쁘게 함을 쌓듯 정성을 들여 포장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예쁜 보자기로 포장하실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환자분은 자신이 임종하는 날 듣고 싶은 음악을 골랐고, 딸들에게 주려고 만든 선물을 장례식 이후 누구를 통해 어떻게 전달하고 싶은지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작업을 며칠 하다 보니 자연스레 통증 조절이 잘되고 평안한 표정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환자분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두 딸을 병원으로 불렀습니다. 저희 의료진은 딸들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엄마가 말했던 귀여운 막내가 바로 너구나, 네가 그렇게 수학을 잘한다는 큰 딸이구나, 엄마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
아이들이 멍하니 엄마의 임종을 보고만 있지 않도록, 평생에 힘든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아이들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도 함께 불렀습니다.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지만,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이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는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희망을 남겨주었다는 것에 위로를 얻기도 했을 겁니다.
제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별을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제자에게 모리 교수는 “죽음은 삶을 끝나게 하지만, 우리의 관계를 끝나게 하지는 못 한다”라고 말합니다. 엄마의 천국 가는 길을 용기 있게 배웅했던 그 두 딸이 오래도록 엄마를 따뜻하게 추억하기를 바랍니다. 환자분이 바라셨던 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슬픔과 원망으로만 채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보자기 속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는 딸들로 자라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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