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이강인 공격, 더 해야 합니까

이상언 2024. 2. 2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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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

에릭 칸토나라는 축구 선수가 있었다. 프랑스 국적인데 선수 전성기를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보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등 번호 7을 달고 뛰었다. 그 숫자는 맨유의 에이스를 상징한다. 베컴과 호날두가 7번이었다. 칸토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1992년에 맨유에 입단해 두 시즌 연속(92∼93, 93∼94)으로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런데 95년 1월에 경악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경기 중에 상대 선수 엉덩이를 고의로 걷어차 퇴장당해 그라운드 밖으로 걸어나가다가 갑자기 관중석으로 돌진해 한 남성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렸다. 거친 경기 스타일로 악명을 떨쳐왔지만 관중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장면이 그대로 중계 카메라에 잡혔고, 다음 날 영국 신문 1면에 점프 발차기 사진이 실렸다. 태권도의 날아차기와 유사한 몸놀림이었는데, 영국 언론은 ‘쿵후 킥’이라고 표현했다. 관중이 칸토나 가족을 모욕하는 야유를 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 모두가 손흥민·임영웅일 수 없어
잘못에 책임 묻는 게 선수 보호
언론도 역적 만들기는 자제해야

잉글랜드 축구협회(FA)는 칸토나에게 9개월 출장 정지를 명령했다. 중징계였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여론이 일자 알렉스 퍼거슨 당시 맨유 감독이 “축구 선수도 어머니 들먹이는 욕설에는 화가 나는 보통 사람일 뿐”이라고 감쌌다. 칸토나는 그해 말에 그라운드로 돌아와 맨유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칸토나가 맨유에 있던 5년 동안 팀이 네 차례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이 됐다.

스포츠계에는 ‘악동(brat)’이라 일컬어지는 선수가 많다. 다 큰 어른인데도 그렇게 불린다. 테니스 시합에서는 화를 못 이겨 라켓을 던지거나 부러뜨리는 선수가 자주 나타나는데, 1980년대에 윔블던 대회와 미국오픈에서 자주 우승한 존 매켄로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심판 판정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때로는 욕설을 해 물의를 빚었다. 선수 시절 내내 문제를 일으켰지만 코트 밖으로 내몰리지는 않았다. 나름 팬도 많았다. 그의 이름이 1999년에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스포츠 스타 인성 논란의 선두에는 타이거 우즈가 있었다. 다른 선수들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았다. 안하무인이었다. 2009년에 터진 성 스캔들은 엽기에 가까웠다. 그 이후에도 약물중독 문제가 불거졌다. 산전수전을 겪어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에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악동이었을 때도 구름처럼 많은 팬을 몰고 다녔다. 그가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인격까지 훌륭하면 좋겠지만 모두가 손흥민이나 임영웅이 될 수는 없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아시안컵 준결승 직전 분란에 대한 첫 뉴스가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특종 보도를 한 영국 매체의 기사에는 이강인의 ‘주먹질’은 없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말을 인용한 국내의 후속 보도에 주먹이 등장했다. 이강인 선수는 손흥민 선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축구협회는 진상을 확인하고 알리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그럴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선수 사이에 폭력 행위가 있었다면 그에 따른 처분이 필요하다. 이강인 선수를 향해 다른 선수가 욕설에 가까운 험한 말을 한 것이 신체적 마찰을 불렀다는 말도 돈다. 이 역시 사실이라면 징계감이다. 잘못에 대한 책임이 분명해야 앞뒤 분별없는 여론 재판의 수렁에 빠지지 않는다. 그게 선수를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언론도 문제다. 포털에 많게는 하루에 1000개 넘는 이강인 선수 관련 기사가 게재됐다. 과거와 가족까지 겨냥했다. 스물세 살 선수가 만고의 역적이 됐다. 칼럼니스트 노정태씨는 최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 ‘배우나 운동선수 모두 엔터테이너다. 그들이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면 되지 그들 자체를 엔터테인먼트로 즐기지는 말자.’ 동의한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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