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어느 집서 발견됐다…이건희가 찾은 ‘전설의 女화가’
백남순의 1936년작 ‘낙원’
■ 이건희·홍라희 마스터피스
「 세기의 기증이 세계와 만납니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이건희 컬렉션’, 그 남겨진 이야기입니다. 명작은 시대와 만나 작가가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 더, 그 작품을 발굴하고 남기고 전하는 컬렉터와 만나야 합니다. 이 모든 만남의 경이를 미술경영학 박사 권근영 기자가 ‘온라인 전시’와 함께 소개합니다. 이번엔 한때는 잊혀진 전설의 여성 작가 이야기입니다.
이건희가 세상에 알린 ‘낙원’…이중섭 스승, 전설의 女화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8604
」
매년 전 세계에서 700만명이 찾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 지난해 말 이곳 한국실에 새 그림이 걸렸다. 백남순(1904~94)의 1936년작 ‘낙원’.
캔버스 천으로 짠 8폭 병풍의 맨 오른쪽 낙원 입구에 결혼 서약을 하듯 남녀가 서 있다. 폭포수 쏟아지는 낙원으로 들어간 여자는 아이를 낳아 키우고, 남자는 고기잡이를 한다. 쏟아지는 폭포수와 야자수, 험산 준령과 푸른 초원, 누드의 인물과 서양식 집.
동서양의 이상향이 뒤섞인 기묘하고 신비로운 그림이다. 식민지 조선의 몇 안 되는 파리 유학파 화가 백남순은 병풍 캔버스에 하이브리드 낙원을 그렸다. 메트 한국실은 ‘낙원’ 옆에 16세기 ‘계회도(契會圖)’를 걸었다. 같은 해 태어나 비슷한 시기 과거에 급제한 사대부들이 환갑에 모여 함께 시를 지으며 남긴 그림이다. 미국서 나고 자란 현수아 큐레이터는 “조선시대 이상향을 묘사한 ‘계회도’와 20세기 백남순의 유토피아 풍경화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여겨 함께 걸었다”고 했다. ‘낙원’은 2021년 이건희 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2022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에서 마련한 ‘사이의 공간: 한국 미술의 근대’에 전시됐고, 두 전시를 눈여겨본 메트 현수아 큐레이터에 의해 뉴욕에 오게 됐다.
백남순은 한국 최초로 파리에 유학한 여성 화가다. 1928년 파리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배웠고, 현지 공모전에 입선해 전시도 열었다. 백남순은 파리에서 화가 임용련(1901~50)과 결혼했다. 3·1운동 가담으로 수배받고 중국으로 피신한 임용련은 상해임시정부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고, 예일대 미대를 수석 졸업하며 유럽미술연구 장학생으로 파리에 갔다. 거기서 백남순을 만났다. 이후 귀국한 두 사람은 1930년 11월 서울서 ‘임용련·백남순 부부 유화전’을 열었다. 금의환향이었지만 당시 서울에 이들이 화가로 꿈을 펼칠 곳은 없었다.
이중섭 ‘은지화’ 가르친 스승
임용련은 평북 정주 오산학교에서 영어와 미술을 가르쳤고, 백남순도 남편을 도와 미술부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중엔 이중섭도 있었다. 백남순은 “담배 은박지를 손으로 구겼다가 펴 보이며 많은 선에서 제 나름의 독창적인 선과 형상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여 년 뒤 이중섭이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 때 내게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습니다’라고 인사했다”고 돌아봤다 (김재혁, ‘백남순 취재기’,
「계간미술」
1981년 여름호).
‘낙원’도 이때 그렸다. 임용련이 캔버스 천으로 8곡병 한 쌍을 짠 뒤, 부부가 병풍을 하나씩 나눠 그렸다. 백남순이 ‘낙원’을 그릴 때 임용련도 낚시하는 노인, 바둑 두는 사람 같은 동양화 소재를 서양화 방식으로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임용련의 병풍은 사진조차 찾을 수 없다.
6·25 발발 후 임용련은 공산군에 끌려가 처형당했다. 백남순은 이후 일곱 자녀를 이끌고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오산학교 시절 그림들은 챙길 겨를도 없었고 전쟁 통에 폭격으로 전소했다. 백남순은 “우리들의 작품이 지구상에 한 점도 남아 있지 않게 됐다”고 통곡했다. ‘낙원’은 전남 완도로 시집간 친구의 결혼 선물로 보낸 덕에 화를 면했다. 친구 민영순씨가 간직하다 반세기 뒤 세상에 나왔고, 후에 삼성가에 소장됐다.
“화가라 할 수도 없는 늙은이”
부산에서 백남순은 서울대 미대 강사로 지내다가 학교를 설립해 전쟁고아와 빈민교육 사업에 헌신했다. 이후 자녀가 있는 미국에 이민 가 뉴욕에 정착해 뒤늦게 다시 붓을 들었다. 백남순은 남편의 예일대 시절 사진과 십자가를 걸어둔 아파트 거실에서 “오늘은 꼭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그림 그리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홀로 지냈다.
국내 화단에서 잊혀진 존재였던 그는 팔순을 바라보던 1981년
「계간미술」
(지금의
「월간미술」
) 기사를 통해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그를 인터뷰했던 중앙일보 뉴욕 특파원은 백남순이 “(나는) 화가라 할 수도 없는 늙은이”라며 인터뷰를 한사코 고사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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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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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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