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이셔티브’ K증시, 만년 저평가주에 ‘PBR 마법’?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4. 2. 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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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증시 벤치마킹…정부 주도 ‘밸류업’

‘유니셔티브(Yoonitiative).’

외국계 증권사 CLSA가 최근 외국인 투자자 대상 로드쇼에서 만든 신조어다. 윤석열 대통령의 성(姓)과 ‘주도한다’는 의미의 영어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합쳤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윤 대통령이 주도한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

지난해부터 국내 주식 시장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움직임이 거세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개인 투자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비판받던 현행 공매도 제도에 대한 개선 요구를 듣고 공약으로 내놨는데, 일부를 관철시켰다. 지난해 증시 폐장 당일인 12월 28일에는 ‘양도세 대주주 주식 보유액 기준 완화’를 시행했다.

최근 윤 대통령이 내놓은 화두는 저평가 상장사의 재평가다. 금융위원회는 조만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적인 내용을 공개한다.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 중 하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또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의 목표치를 상장사가 제시하도록 한국거래소의 가이드라인에 규정하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정부가 공개할 저평가 기업 찾기에 분주하다. 한편에서는 ‘묻지마’ 저PBR 투자는 낭패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은 유독 PBR이 낮은 기업이 많았다. 과거 고성장기 쌓아놓은 자산 규모는 컸는데, 이 자산을 효율적으로 증식시키지 못한다는 불신 때문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극단적인 양적 완화와 엔화 약세 정책을 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일본 증시를 살려낸 건 ‘PBR의 마법’이다. 지난해 4월 도쿄 증권거래소(TSE)는 PBR 1배 미만의 기업에 주가 부양 계획을 내도록 요구했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BPS·Book-value Per Share)로 나눈 비율. PBR이 1이라면 해당 기업 주가와 1주당 순자산이 같다는 의미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기업의 자산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는 점을 뜻한다. 일본 정부는 기업 주가가 청산 가치보다 못한 상황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자본 수익성과 성장성을 높이는 이행 방안을 스스로 찾으라는 취지로 정책을 마련했다.

도쿄 증권거래소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기업이 저평가 극복에 나설 수 있도록 새 지수를 개발했다. ROE, 자본비용, PBR 1배 이상 기업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일본거래소그룹(JPX) Prime 150 지수다. 또한 기관 투자자가 이 지수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크하도록 장려했다. 올해부터는 아예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재한 기업 명단을 매월 공표한다.

정부 정책에 따라 일본 기업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10년래 최고 수준으로 자사주를 매입·소각했다. 배당을 늘리며 주주환원에 애썼다. 비효율적인 자본 활용의 대표 케이스였던 전략적 투자 비중도 의미 있게 감소했다.

그러자 꼼짝하지 않던 일본 지수가 상승세를 탔다. 도쿄 증권거래소의 개선안 요구 이후 올해 2월 니케이지수와 토픽스지수는 30% 가까이 올랐다. 선진국 내에서는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일본 증시는 최근 3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며 ‘축포’를 날렸다. 바로 윤석열정부가 벤치마킹하는 일본 모델이다.

韓 상장사 PBR은 고작 0.9배

세계 주요 증시서 1 미만 유일

한국 증시 역시 일본처럼 고질적인 저평가에 시달려왔다. 지난 2월 13일 기준 코스피지수 PBR은 0.9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3.7배), 나스닥(5배), 유로스탁50(1.7배), 니케이(1.8배), 상하이종합(1.2배) 등 세계 주요 증시와 비교해 PBR 1배를 밑도는 건 코스피뿐이다. 이미 젊은 층에서는 “국장(국내 증시)은 답이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대한민국 증시는 신뢰를 잃었다. 2024년 새해 주가도 실망감을 안겼다. 미국 증시가 AI 관련 기술주를 중심으로 초강세를 이어가고 일본 증시도 사상 최고치를 구가하지만 한국만 하락세였다. 윤석열정부가 ‘한국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하는 이유다.

정부는 PBR 등 투자지표를 업종별로 공시하고 지표가 부진한 기업에 대해 개선을 요구한다. 주가가 기업가치를 밑돌 경우 일부러 주가 수준을 낮게 유지하거나 주주 이익 제고에 불성실한 것으로 간주해 ‘제재 대상 기업’으로 분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간 정부 정책에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증시도 ‘PBR 마법’에는 반응했다. 공매도 규제, 증권거래세 인하 등 선심성 정책의 약발이 먹혀들지 않다가, PBR 공시 방안이 언급된 이후 증시가 급반등했다.

증권가에서는 정부가 선정할 저평가 기업에 촉각이 모아진다. 공식적인 리스트에 오른 기업이 적극적으로 기업가치 향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서다. 금융위원회와 거래소는 이 같은 방안을 담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정책을 2월 말 발표한다. 증권가에서는 이미 예상 리스트가 등장하고 있다. 성장세가 보이는데도 주가가 낮은 자동차 업종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는 PBR이 0.6배로 낮으면서도 ROE는 높다는 점에서 ‘밸류업’ 종목으로 추천됐다. 또는 이익잉여금을 기준으로 하나증권 등이 언급되기도 한다. SKT나 KT 등 통신주는 만년 저평가주로 분류돼왔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정책을 계기로 통신주가 재평가받으리라 기대한다. 이 밖에 고배당 정책을 고수하는 국내 금융지주사 대부분이 ‘레벨업’ 리스트 1순위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 주도 ‘PBR의 마법’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다. 일본 역시 2013년 아베 총리 시절부터 거버넌스 개혁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모회사와 자회사 복수 상장과 순환출자, 소수 주주 권리 외면 등으로 해외 투자자로부터 거세게 비판받았다. 이에 아베 전 총리가 경제 성장 정책 일환으로 기업 거버넌스 개혁과 이를 통한 기업가치 증대를 강조했다. 2014년 금융청(FSA) 주도로 일본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했고, 일본 공적기금(GPIF)은 투자 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이 이어지며 일본 증시 ‘레벨업’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본이 ‘슈퍼엔저’를 용인하고 초저금리를 이어간 세계 최대 채권국이라는 점을 잊어서도 안 된다. 아울러 단순한 주가 부양보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제2의 삼성전자를 키우는 게 더 절실한 과제일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7호 (2024.02.21~2024.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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