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등진 의사들에 커지는 분노…“사람 생명이 흥정거리”

신대현 2024. 2. 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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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여러분의 치료 여정에 항상 함께하겠습니다." 20일 서울성모병원 1층 로비에 걸린 현수막 글귀다.

환자의 치료 여정에 함께하겠다던 의사들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가운을 벗어던진 채 환자를 등졌다.

그러면서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까 환자들을 먼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며 "처음 의사가 됐을 때의 마음가짐이나 정신, 사명 같은 것들을 다시 떠올려 병원으로 돌아와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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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성모병원 1층 로비에 “환자 여러분의 치료 여정에 항상 함께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날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났다. 사진=신대현 기자

“환자 여러분의 치료 여정에 항상 함께하겠습니다.” 20일 서울성모병원 1층 로비에 걸린 현수막 글귀다. 환자의 치료 여정에 함께하겠다던 의사들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가운을 벗어던진 채 환자를 등졌다. 커지는 의료공백에 환자들은 불안해하며 사람의 생명이 이익집단의 흥정거리가 된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한다.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방침에 이른바 ‘빅5 병원’(서울아산·서울대·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 전공의들(인턴·레지던트)이 집단사직으로 파업에 돌입한 첫날 쿠키뉴스가 찾은 서울성모병원의 모습은 다소 어수선했다. 전공의 파업으로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는 식의 안내문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예정됐던 진료를 받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는 환자들을 찾긴 어렵지 않았다.

이날 오후 회사에 반차를 내고 아이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이강현(34·가명)씨는 “의사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같아 보기 안 좋다”고 꼬집었다. 이씨는 “그동안 정부가 충분한 시간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파업이 장기화될 시 진료를 못 받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크다”고 털어놨다.

외과 진료실 앞에서 함께 온 아내를 기다리던 신경훈(72·가명)씨는 진료시간이 35분 지연됐다고 알리는 전광판만 초조하게 바라봤다. 그도 의사들이 못마땅하다고 했다. 신씨는 “사람 생명을 갖고 파업에 나선다는 게 말이나 되나”라며 “사람의 생명이 흥정거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의 눈이 나빠서 정기적으로 안과 진료를 받으러 온다는 이경아(36·가명)씨는 이날 진료 보는 데 큰 지장이 없었지만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해 진료기록들을 다 떼놓고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당장은 괜찮더라도 파업이 이어지면 진료에 지장이 생길 것 같다”면서 “의사들이 파업하는 배경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환자들이 불편을 겪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까 환자들을 먼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며 “처음 의사가 됐을 때의 마음가짐이나 정신, 사명 같은 것들을 다시 떠올려 병원으로 돌아와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21개 수련병원에서 일하는 전체 전공의 1만3000여명 중 약 95%가 근무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의 점검 결과, 19일 오후 11시 기준 소속 전공의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630명은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각 수련병원에 담당자들을 파견해 이탈 현황을 파악하고 있지만 전국 곳곳에서 집단 사직이 진행돼 정확한 규모 파악이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공의 파업에 따른 의료공백과 환자 피해는 앞으로 더 커질 조짐이다. 지난 19일부터 운영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 사례는 총 34건이었다. 세부적으로 수술 취소 25건, 진료예약 취소 4건, 진료 거절 3건, 입원 지연 2건 등이 있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신고 사례 중에는 1년 전부터 예약된 자녀의 수술을 위해 보호자가 휴직까지 했으나 입원이 지연된 경우도 있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오길 촉구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통해 “환자 치료에 공백이 없도록 신속히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 소송에 대한 지원도 하겠다”며 “전공의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가주길 바란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뜻을 표현하기 위해 환자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일은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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