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남긴 자화상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다
[박균호 기자]
자화상이란 자기 얼굴이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15세기 무렵부터다. 신의 세계가 아닌 인간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화가는 신이 아닌 인간 그중에 특히 자기 자신을 그림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 치료가이자 트라우마 전문가로 알려진 김선현 작가가 자화상에 주목하고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를 펴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세 사람들이 신에 매몰되어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하나의 부속품 같은 삶을 살았다면 근대 이후의 사람들은 직장과 성공이라는 거대 담론의 부속품처럼 살아간다.
성공과 생존에 쫓기며 살다 보면 정작 자신을 바라볼 수 없으니, 현대인들은 고독한 존재가 되기 쉽다. 많은 현대인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성공을 노리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철저하게 자신을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 표지 표지 |
ⓒ 한길사 |
화가가 남긴 자화상은 천차만별이니 우리는 그 많은 자화상 중에서 자신과 처지가 같은 자화상을 만나기 마련이다. 즉 우리는 화가가 남긴 자화상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자신이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동기를 마련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림을 마주하는 사람은 그들이 남긴 자화상을 누림으로써 진실한 자신을 만나고 성장할 수 있다. 더불어 자화상에는 다양한 시대적 배경, 미술사, 그림의 여러 기법 등이 담겨 있으니,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고 다양한 시대의 역사에 대한 지식도 넓혀갈 수 있다.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에는 명화 104점이 담겨 있다. 우리는 104가지 인생을 발견할 수 있고 104가지 세상을 체험할 수 있으며 104가지 통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믿고 있는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어렵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배신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이익을 따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한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럴 때면 더 이상 분노에 시달리지 말고 '베브 두리틀'의 명화 <내 영혼의 비상>을 감상해 보자.
이 그림 속 모델은 혼자 강가에 앉아 초록색 자연을 감상한다. 그리고 시선은 우측 상단을 향한다. 이런 시선의 흐름은 눈앞의 현실보다는 다른 곳으로 시각 전향을 유도한다. 즉 답답하고 화가 날 때는 일단 밖으로 나가서 높고 푸른 언덕을 바라보자고 김선현 작가는 조언한다.
그러고 보니 그 누구보다 아낀 사람에게서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운 1년을 보내고 있는 내가 사는 아파트 1층 밖 풍경에 탄성을 지은 이유를 알겠다.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아파트 정원인데 나는 왜 이 풍경에 감탄하고 지금까지 이 풍경을 좀 더 누리지 못하고 산 것을 후회할까?
고통스러운 현실을 잠시 벗어나 초록 세상에 귀의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별것 아닌 아파트 정원에 위로받고 넘쳐나는 행복감을 느끼도록 나에게 시킨 것은 아닐까? 화가 날 때 우리가 담배를 피우면 화가 다소 가라앉는다면 그것은 담배 덕분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는 공간과 공기가 준 효과는 아닐까?
자화상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화가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그가 남긴 유명한 자화상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에서 태연하게 파이프를 물고 있는 반 고흐는 불안, 고독, 불행과 싸우면서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상징한다.
▲ 자화상 자화상 |
ⓒ 한길사 |
누구나 핸디캡은 있다. 그러나 핸디캡을 대하는 자세는 다양하다. 도스토옙스키에게 도박중독과 간질이라는 치명적인 지병이 있었지만, 그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의 지병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자신의 핸디캡에 매몰된 나머지 세상에 대한 원망과 욕구 충족에 몰입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비참한 결말을 맞기 마련이다.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는 자신의 불운과 분노를 오히려 행복으로 가는 계단으로 승화시켜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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