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러시아 원한다" 나발니 아내, 반정부 투쟁 이어갈까

백일현, 김하나 2024. 2. 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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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 의문사한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가 지난 19일(현지시간) 브뤼셀 유럽이사회 건물에 모습을 드러냈다. AP=연합뉴스


옥중에서 의문사한 러시아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47)가 반정부 투쟁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나발나야가 남편의 유지를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맞서겠다고 선언하면서다.

나발나야는 19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동영상을 올려 “알렉세이는 푸틴에 의해 살해됐다”며 “나는 알렉세이가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자유로운 러시아를 원한다. 내 편에 서서 함께 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푸틴이 사흘 전 왜 알렉세이를 죽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며 “조만간 이에 관한 내용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지난 16~18일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 참석 중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도 예정에 없이 연단에 올라 “알렉세이가 나였다면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그는 여기, 이 무대에 있을 것”이라며 “러시아에 있는 끔찍한 정권을 물리치기 위해 여기 있는 모든 이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뭉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어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외교장관회의에도 참석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저항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EU는 나발니 급사와 관련해 새로운 러시아 제재 논의에 착수했다.

율리아 나발나야가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장관회의에 앞서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나발나야는 푸틴이 남편을 죽였다고 비난하고 나발니의 일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나발니가 러시아 북극 교도소에서 사망한 지 3일 만이다. AFP=연합뉴스


외신들은 잇따라 나발나야를 조명하고 나섰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푸틴의 새로운 적 율리아 나발나야는 누구인가’라는 기사에서 나발나야의 동영상에 대해 “열정적인 선언이자 명백히 정치적인 선언”이라며 “남편이 투옥된 후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더 루카셴코에 대항하는 시위의 선봉장이 된 스비아틀라나 치카누스카야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도 20일 살해되거나 투옥된 남편의 정치적 깃발을 대신 들었던 다른 여성들을 언급했다. 스비아틀라나 치카누스카야 외에 1983년 남편이 필리핀 귀국길에 총에 맞아 사망한 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물리친 코라손 아키노가 거론됐다.


“야권의 퍼스트 레이디”→“푸틴의 새로운 적”


나발나야는 1976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은행에서 일했다. 1998년 튀르키예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나발니를 만나 2000년 결혼해 슬하에 딸과 아들을 뒀다.

나발나야는 전업주부로 지내왔으나 나발니가 반부패 운동가를 시작으로 2013년 모스크바 시장에 도전하고, 2018년 대선 출마를 시도하면서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존재감을 키워가는 과정에 함께 했다. BBC는 “나발나야는 러시아 야권의 ‘퍼스트 레이디’로 묘사돼 왔다”고 평했다.

NYT는 나발나야의 활약을 보여준 일화를 소개했다. 2020년 8월 나발니가 독극물로 쓰러져 러시아 지방 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을 때 위협적인 경찰로 인해 이동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나발나야는 나발니의 보좌진이 들고 있던 휴대폰 카메라로 “우리는 알렉세이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한다. 지금 이 병원에는 의사보다 경찰과 정부 요원이 더 많기 때문”이라며 푸틴 대통령에게 남편을 독일로 이송시켜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나발니는 독일 베를린의 병원으로 이송돼 회복할 수 있었다.

2020년 9월 독극물 테러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18일 만에 깨어난 알렉세이 나발니(오른쪽 둘째)가 당시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사진. 그는 독일 베를린의 샤리테병원 병상에 앉아 부인 율리아(오른쪽), 아들, 딸과 함께 한 사진을 올렸다. 나발니는 당시 여객기 탑승 직전 공항에서 차를 마신 뒤 쓰러졌고, 몸에선 치명적 독극물 노비촉이 발견됐다. 나발니 인스타그램

직접 독극물 공격 받아 이겨내기도


나발나야도 독극물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들 부부의 친구들에 따르면 나발니가 쓰러지기 여러 달 전 나발니를 향한 게 분명한 공격에 노출됐으나 이겨냈다.

나발니는 나발나야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곤 했다. 나발니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도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아내에게 전하는 “나는 당신이 모든 순간 나와 함께 있다고 느낀다”는 메시지였다.

NYT는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야당 지도자의 아내는 오랫동안 스포트라이트를 피했지만, 그의 죽음으로 인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나발나야는 ‘저는 포기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며 “친구와 동료들은 나발나야가 지능, 침착함, 강인한 결단력, 회복력, 실용주의, 스타성을 겸비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알렉세이 나발니와 율리아 나발나야가 2015년 4월 러시아 모스크바 루블린스키 지방 법원에서 열린 심리에 참석했을 때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폴리티코는 “나발나야의 잠재력을 감지한 러시아 국영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는 오랫동안 그녀를 약화시키려고 노력해 왔다”며 “나발나야의 아버지가 KGB요원이고, 나발나야가 독일 국적이라는 의혹 등이 유포됐으나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러시아 석유재벌 출신 야권 활동가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나발나야에 대해 “정계입문을 결심했다면, 나는 무조건 그를 지지한다”며 나발나야 등이 이끄는 야권연대를 촉구했다.

한편 나발니가 생전 푸틴 대통령에 맞서 옥중 투쟁을 이어가면서 직접 한국의 민주화를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NYT는 나발니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생전 그가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입수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들 중 지난해 9월 편지에서 나발니가 한국의 민주화를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나발니는 언론계 지인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만약 한국과 대만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러시아 또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고 NYT는 전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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