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6500억 손실…은행 "자율배상은 배임" vs 당국 "되레 유리"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기반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배상을 놓고 금융당국과 금융사의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사들은 금융감독원의 자율배상 요구에 “배임이 될 수 있다”며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하지만 금감원은 “자율배상은 오히려 제재 감경 사유”라며 은행의 적극적인 태도를 주문했다.
확정 손실 6558억…자율배상 놓고 신경전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5개 은행의 ELS 판매 상품 중 지난 16일까지 만기가 도래한 상품의 원금은 총 1조2609억원이다. 이 중 확정 손실액은 6558억원으로, 손실률은 평균 52%에 달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ELS 만기가 10조2000억원이 몰려 있다. 홍콩H지수가 지금 수준을 유지한다면, 손실 확정 금액이 상반기에만 5조원이 넘을 수 있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쌓이자 금감원도 지난 16일부터 ELS 불완전 판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2차 현장 검사에 돌입했다. 다만 이와 별도로 은행권의 자율배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 5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불법과 합법을 떠나 금융권 자체적인 자율배상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銀 “자율배상 배임 될 수 있어 불가”
ELS 주요 판매사인 은행들은 금감원의 구체적 제재 근거 없이 금융사가 먼저 자율배상에 나설 경우 배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 여부가 가려지지도 않았는데, 덜컥 배상부터 나서면 향후 배임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서 “또 자율배상을 하면 책임을 인정하는 꼴인데, 그럼 향후 금감원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금감원 “자율배상 오히려 제재 감경 사유”
하지만 이런 은행권의 반응에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자율배상은 은행 의지의 문제지, 배임 이슈가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또 해당 관계자는 “자율배상을 먼저 하면 오히려 향후 제재의 감경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시행세칙’ 제50조에 따르면 ‘감독기관의 인지 전에 위규 사실을 스스로 시정 또는 치유한 자’는 제재를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과거 사례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1년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팝펀딩 등 불완전 판매로 문제가 된 10개 사모펀드에 대해 투자원금 1584억원을 전액 보상했다. 이 영향에 제재 수위가 사전 통보받았던 기관경고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기관 주의로 감면됐다.
“펀드 사태와 ELS 달라”
자율배상을 놓고 금감원과 금융사의 입장이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는 것은 ELS 불완전 판매에 대한 시각 차이가 더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은행들은 과거 펀드 사태와 ELS 손실 문제는 다르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판매한 상품에 문제가 있었던 펀드 사태와 달리 ELS는 상품 자체엔 문제가 없다”면서“일부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있겠지만, 모든 ELS 판매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실제 ELS 가입자 대다수가 이미 해당 상품을 오랫동안 이용한 재가입자란 점도 은행권 주장에 힘을 싣는다.
팽팽한 입장차, 배상안 시간 걸릴 듯
금감원과 금융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분쟁 조정안 합의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금감원은 빠르면 이달 말 ELS 손실과 관련해 책임부담 기준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ELS 불완전 판매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은 금융사들은 금감원 책임분담안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결국 소송 등을 통해서 보상안이 마련될 수밖에 없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불완전 판매 검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자율배상 이야기부터 꺼내면서 금감원이 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면서 “배상이 가능한 대표적 불완전 판매 사례부터 먼저 발표해 은행과 배상안에 빨리 합의하는 것이 지금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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