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국 전공의 6415명 사직서, 831명에 업무개시명령"
전체 전공의(인턴·레지던트)의 절반 가량인 6000여명이 병원에 사직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우려했던 대란 수준은 아니지만, 서울 빅5 대형병원 등 전국 곳곳에서 수술·입원 연기, 진료 지연 등 환자 불편과 혼란이 이어졌다. 전공의 부재가 장기화할 경우 의료 체계가 무너지면서 환자 피해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0일 보건복지부는 1만3000명 전공의 중 95%가 소속된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전날(19일) 오후 11시 기준 6415명(55%)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 전공의들이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내고 20일 오전 6시부터 진료를 중단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들 대형병원의 전체 의사 중 전공의 비중은 적게는 33.8%(서울성모)에서 많게는 46.2%(서울대)에 달한다.
전공의들의 사직서는 수리되지 않았지만, 제출자의 약 25%인 1630명은 병원에 출근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세브란스병원, 성모병원 등에서 근무지 이탈이 상대적으로 많았다”라며 “나머지에선 이탈자가 없거나 소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신촌 세브란스·강남 세브란스·원주 세브란스·한양대·한림대성심·건보공단 일산병원·순천향 천안·상계백·부천 성모병원·대전성모병원 등 10개 수련병원에 직접 나가 점검한 결과 이들 병원 전체 전공의 1630명 중 67% 수준인 1091명(19일 오후 10시 기준) 전공의가 사직서를 냈으며 757명이 출근하지 않은 사실을 파악했다. 정부는 이미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29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728명에게도 추가로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이날까지 누적 831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이 발령됐다. 이 명령이 내려지면 즉시 복귀해야 하고 불응할 경우 최대 면허 정지 행정 처분이 이뤄질 수 있다. 박민수 차관은 “반복적인 확인을 거쳐 장기간 이탈이라는 게 명확하게 될 때 명령이 나간다”고 했다.
전공의들 이탈로 이날 주요 대형병원들이 응급도 낮은 환자의 입원, 수술 일부를 줄여 연기하고 전공의가 담당하는 외래 진료를 축소하면서 환자 불편이 잇따랐다. 다만 중환자실과 응급실 등 필수 의료 기능은 아직 큰 문제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게 병원들의 이야기다. 빅5 병원 한 관계자는 “상당수가 사직서를 냈지만 일부 전공의는 근무하고 있다”라며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평상시처럼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빅5 병원 관계자도 “교수, 펠로우(전임의)들이 당직 근무를 서고 있다”라며 “아직은 무리없이 정상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빅5 병원 중 가장 먼저 단체행동에 들어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선 “응급실 병상이 포화 상태로 진료가 불가하다”란 내용의 입간판이 세워졌다. 하지만 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진료 규모가 평상시보다 준 것은 맞다”라면서도 “위험할 정도의 공백은 아직 아니다. 평소에도 환자가 많으면 똑같이 안내한다”라고 말했다. 이 병원 안과에선 전공의들이 보는 일반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안내 문자를 환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로 공식 확인된 환자 피해는 34건(19일 18시 기준)으로 집계됐다. 수술 취소가 25건으로 가장 많고 진료예약 취소 4건, 진료 거절 3건, 입원 지연 2건이다. 다만 인터넷 환자 커뮤니티 등에는 수술이 취소되고 입원이 제한되는 등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어 신고되지 않은 사례까지 더하면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심혈관 질환 환자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심장 쪽은 위급 상황이 아니면 아예 안 받아주는 것 같다. 3월 6일 진료인데 부전공인 선생님이 진료한다고 해 뒤숭숭하다. 심장이 아무 일 없이 잘 견뎌주기만 바란다”는 글이 올라왔다. 전날(19일) 부정맥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20대 환자는 “의사가 위험하다고 해서 외래를 오늘로 잡아줬는데 아침에 전화가 와서 예약을 취소한다고 통보했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박민수 차관은 “1년 전부터 예약된 자녀의 수술을 위해 보호자가 회사도 휴직했으나 갑작스럽게 입원이 지연된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라며 “치료에 공백이 없도록 신속히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 소송 지원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전공의가 빠진 자리를 선배 전임의나 교수, 간호사 등의 인력이 메우면서 불만과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 등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이날 “병원은 간호사들에게 의사 업무를 전가해 불법 의료를 조장하고 있다”라며 “주 52시간 이상 노동을 요구하며 근무시간 변경동의서를 받고 있다. 병원 노동자들은 전가된 책임을 ‘울며 겨자 먹기’로 안고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인력난에 허덕이는 지방 병원에선 이런 위기를 더 크게 절감하고 있다.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에 의료계는 더 뭉치고 있다. 이날 병원을 나선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자들은 긴급임시대의원 총회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전국 82개 수련병원의 임상강사·전임의들은 처음 공동 입장문을 내고 “의료 정책에 대한 진심 어린 제언이 모두 묵살되고 국민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매도되는 상황에선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라고 했다. 이들은 “잘못된 정책을 강행해 의료 혼란과 공백을 초래한 복지부에 의료인에 대한 협박과 탄압을 중단하고 의사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앞서 공공병원과 군병원 등을 의료 공백에 동원키로 한 데 이어 추가 비상 진료 대책을 내놨다. 전공의 대신 입원 환자를 보는 전문의에게 보상금을 주고 응급의료 전문의 진찰료 수가를 100% 올려 주기로 했다. 인턴이 응급실·중환자실에 투입되더라도 해당 기간을 수련으로 인정한다.
황수연·채혜선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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