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배 폭리 암표와 전쟁…얼굴 다 대조했다, 장범준 블록체인 티켓
공연 시작 1시간 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앞 대기줄엔 어느새 관객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안내 요원들은 사전에 지정된 입장 순서에 따라 휴대전화 화면에 뜬 QR(큐알)코드를 찍고, 관객 400명의 얼굴과 신분증을 일일이 대조했다.
지난 7일부터 3주 동안 매주 수·목요일에 진행되는 가수 장범준의 공연 ‘소리 없는 비가 내린다’ 입장권은 NFT(Non Fungible Token) 형태로 발행됐다. 가수의 공연에 NFT 티켓이 활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의 NFT는 데이터 저장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자산에 일련번호를 부여한다. 별도로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해 복제, 위·변조나 상호 교환을 막는 원리다. 장범준 측은 “암표 문제를 없애기 위해 NFT 티켓 도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초 자신의 공연 암표 가격이 정가(5만 5000원)의 6~7배 수준으로 팔리는 등 암표 거래가 기승을 부리자 기존 예매분을 전량 취소하고 추첨 방식을 도입한 바 있다.
NFT 티켓을 도입한 이번 공연은 본인 인증을 거쳐 1인 1매로 구매가 제한됐다. 암표상들이 주로 활용하는 매크로(구매 명령을 자동으로 입력하는 프로그램)는 원천 차단됐다. 또 블록체인 기술로 전송 또는 재거래를 막는 코드를 삽입해서 양도 자체를 불가능하게 설정했다. 앱을 통해 공연관람 신청을 받은 뒤, 무작위 추첨을 해서 당첨자에 한해 티켓 구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홀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많았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끼리 삼삼오오 북적이는 통상적인 공연장 분위기와 달리 조용한 대기 풍경이 연출됐다. 첫날 공연에 다녀온 김민지(36) 씨는 “혼자 휴대전화를 보면서 서 있는 분들이 많아 대기 시간이 꽤 적막했다. 혼자서 공연은 잘 안 가는 편인데, 이번에는 (주변에서 당첨이 안 돼) 어쩔 수 없었다”며 “공연 후 같이 감상을 얘기할 사람이 없어 아쉬웠지만, 어떤 관객들은 옆 사람들과 친해져서 얘기도 나누는 등 이색적인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입장할 때는 티켓 캡처 행위를 막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QR코드가 변경되는 ‘다이내믹 QR 체크인’이 활용됐다. 400명 중 250번대로 입장했던 이연주(33) 씨는 “일일이 QR코드와 신분증을 확인하면서 입장에 30분이 넘게 걸렸지만, 암표 방지를 위한 것이라 이해했다”고 했다. 그는 “저도 처음 써보는 앱이라 기능이 낯설었는데, 중장년 관객들은 더욱 사용하기 어려우셨을 것 같다. 실제로 현장 관객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고 덧붙였다.
2년 새 암표 신고 10배 ↑…“가상화폐 붐 현상 같아”
NFT 티켓이 암표 방지엔 효과적일지라도 암표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이종현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장은 “NFT 티켓은 규모가 작은 공연에선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관객을 한 명씩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관객 규모가 수천 명 이상 만 명 대가 되면 입장에만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NFT·안면 인식 등 여러 기술을 도입해도 법과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암표 거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매크로는 전체 암표의 20% 정도고, 전문 암표상 뿐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웃돈을 얹어 표를 팔거나 페스티벌 입장 손목밴드를 돌려쓰는 등 부정거래가 비일비재하다. 한때 가상화폐 붐이 일었을 때의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2년 새 암표 신고는 10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359건이었던 암표 신고 건수가 2022년 4224건으로 급증했다. 암표 신고자에게 해당 티켓을 포상하는 ‘암행어사제’를 운영하거나(아이유), 자체 신고센터를 만들어 추적하는(임영웅) 등 가수나 공연기획사가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 해결은 요원한 상태다.
내달 22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공연법은 매크로를 통한 부정 판매 금지 조항을 신설해,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된다. 백세희 변호사(DKL파트너스 법률사무소)는 “개정법에는 몰수·추징 규정이 없다. 매크로를 활용하는 조직적인 암표상에겐 범죄 수익이 벌금보다 높은 것이 현실인데, 벌칙 규정 만으론 위하력(威嚇力·법 자체로 범죄를 예방하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티켓 재판매 시 액면가의 50%를 넘지 못하게 규정한 캐나다는 위반 시 벌금 5만 캐나다달러(약 5000만원) 또는 2년 미만의 징역에 처한다. 프랑스는 암표에 대해 처음엔 벌금 1만 5000유로(약 2200만원)를 물리고, 반복되면 벌금을 2배로 올린다. 벨기에는 최대 6만 유로(약 8700만원), 대만은 300만 대만달러(약 1억 3000만원)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등 해외에선 강한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다.
백 변호사는 “우리의 개정 공연법은 ‘매크로’나 ‘상습 또는 영업’ 요건에 해당하는 부정 판매만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외 방식의 암표는 회색 지대에 놓이게 된다”면서 “티켓 리셀(되파는 행위)을 하나의 문화나 투자로 여기는 분위기에선 처벌 규정이 아무리 엄하더라도 암표를 발본색원하기 어렵다. 결국 암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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