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거나 낙인찍거나, 끌려 나간 카이스트생과 '입틀막' 언론
[민주언론시민연합]
▲ 대통령 축사 도중 항의하다 제지 당하는 졸업생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할 때 R&D 예산과 관련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을 향해 항의를 하던 중 제지를 당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은 2월 16일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 참석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축사 도중 카이스트 졸업생 신민기씨는 "R&D 예산을 복원하십시오"라며 정부의 올해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냈는데요. 발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통령실 경호원은 신씨의 입을 틀어막았고, 졸업생으로 위장한 경호원들에게 사지가 들려 행사장 밖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대통령실 과잉 경호, 조선·중앙·매경·한경 축소 보도
과잉 경호가 벌어진 다음 날, 매일경제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매달 최대 110만원 준다>(2월 17일 고재원·우제윤 기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공계 지원 공약을 1면에 보도했습니다. 16일 대전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이 '이공계 학생들이 학비·생활비 걱정 없이 학업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전일제 이공계 석·박사에 매달 80~110만원의 연구생활장학금을 도입한다'는 내용인데요. 매일경제는 연구생활장학금을 비롯해 대전 '과학수도' 조성,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 사업 등 윤 대통령의 공약을 나열하며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행사장에서 벌어진 강압적인 퇴장 사건은 4면 기사 하단 <이공계 달래기 나선 윤…장학금 늘리고 대전에 나노반도체 단지>(2월 16일 고재원․박윤균․홍혜진 기자)에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는데요.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 소란 행위자"를 "법과 규정, 경호 원칙에 따라" 분리했으며 "불가피한 조치였다"였다는 대통령실 해명만을 전했습니다.
졸업생의 입장이나 과잉경호에 대한 지적은 없었으며, "해당 참석자는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으로 알려졌다"며 사건과 관련 없는 당적을 언급했습니다. 조선일보·중앙일보·한국경제도 하나같이 윤 대통령의 이공계 공약을 강조하며 과잉 경호 문제는 행사장의 작은 소란 수준으로 보도했는데요.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기사 말미에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 △ 카이스트 졸업생 과잉경호논란을 축소 보도한 중앙일보(좌)와 매일경제(우) 17일 보도 |
ⓒ 중앙일보, 매일경제 |
KBS "퇴장 조치", MBN "야당 인사"·"소동"
▲ 카이스트 졸업생 과잉경호논란을 보도한 저녁종합뉴스 비교(2/16) |
ⓒ 민주언론시민연합 |
KBS는 대통령실 과잉 경호 논란을 저녁종합뉴스 중 유일하게 단신으로 보도했습니다. 경호원의 과잉 경호 상황은 언급하지 않은 채 "퇴장 조치"했다고만 전했습니다. MBN은 졸업식의 주인공인 졸업생이 고성을 질렀다는 이유로 끌려 나간 엄중한 사건을 '소동'이라고 치부했습니다. JTBC는 '소란'이라고 보도했는데요. 경호구역 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소란행위자를 분리했다는 대통령실 입장을 전하며 '소동'·'소란'이라고 사안을 축소 보도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졸업생 '소신 발언'을 '정치적 행위'로 변질시킨 언론
KBS·SBS·TV조선·채널A는 '녹색정의당'을 보도 제목에 포함시키며 졸업생이 정당 소속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채널A는 "녹색정의당 소속 정치인", MBN은 "야당 인사"라 표현하며 졸업생을 정치인으로 둔갑시켰는데요. 채널A는 "(대통령실이) 졸업생이 옷 속에 항의 문구가 적힌 천을 숨겨서 들여왔다며, 준비된 정치 행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이와 관련해서 MBC는 보도 말미에 "당과 무관하게 졸업생 자격으로 준비한 것"이라 밝힌 해당 학생의 발언을 전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과학계 카르텔', 연구비 나눠 먹기를 운운하며 2024년 연구개발 예산을 14%나 삭감했습니다. 'R&D 예산을 복원해달라'고 외친 졸업생의 발언은 연구비 삭감으로 미래가 불투명해진 과학도들의 당연한 요구인데요. '정당'을 강조하며 '야당 인사'라고 보도하는 것은 졸업생의 '소신 발언'을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하고 낙인찍는 부적절한 보도 행태입니다.
한겨레 <사설/카이스트 졸업생 '입틀막', 비판 목소리는 안 듣나>(2월 18일)도 '고의적인 정치행위'라 주장하는 국민의힘을 향해 "헌법에 '정당 가입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이 무슨 궤변인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하며 "야당 당적을 갖고 있으면 대통령에게 항의도 못 하냐"고 되물었는데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의 외침이 당적과 무슨 관계가 있나"고 일갈했습니다.
동아일보·한국일보 '병 주고 약 주는' 총선용 정책 아니어야
대통령실의 과잉 경호 다음 날, 한국경제는 <사설/인재가 유일 자원인 나라, 과학기술 배양엔 진영 따로 없다>(2월 17일)에서 "과학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 노력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칭송하며 올해 "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가 되살아나는 과정에서 빚어진 '과학계 홀대 논란'을 돌아보면 과학기술 진흥 정책이 상당히 안정돼 정상화하는 분위기"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동아일보 <사설/R&D 예산 깎곤 대학원생 장학금… '정책 덧칠'로 오류 덮어질까>(2월 18일)는 "'병 주고 약 주는' 모양새"라며 "정부가 충분한 사전 검토나 준비작업 없이 올해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더니 "과학기술계의 심상찮은 분위기"로 뒷북성 달래기 대책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뒷수습을 위한 '정책 덧칠'로 "현장의 혼란이 해소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는데요.
한국일보 역시 "R&D 예산 삭감으로 일부 대학원생들은 월급이 깎이는 등 타격을 입은 터라, 총선용 민심 달래기 정책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반복하는 권위주의적 '입틀막' 사태, 언론의 비판 감시 필요해
노컷뉴스 <인터뷰/"입틀막 경호… 그 날 내가 하고 싶었던 말">(2월 19일)에서 졸업생 신민기씨는 구두경고도 없이 경호원들에 바로 제지당했으며 별실에 감금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입장 전 소지품 검사를 받았으며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한 대응이었다고 입장을 피력했는데요. 정치적 행동은 시민의 권리이며 정당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불과 한 달 전인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도 윤 대통령과 악수 도중,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강성희 진보당 의원을 대통령 경호원들은 입을 막고 강제로 행사장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경향신문 <항의 외침에 또 입 틀어막은 정부…시민들 "현대판 독재국가">(2월 19일 전지현·이예슬 기자)는 "대통령실 관계자가 시민의 입을 막고 사지를 들어 연행한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 올해 들어서만 한 달에 한 번꼴로 발생"하고 있다며 윤 정부가 "비판이나 이견을 틀어막는 이른바 '권위주의적 통치'를 일삼는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는데요. 언론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시민의 목소리가 강압적으로 통제되는 상황을 비판하고, 발언의 자유가 박탈된 상황을 날카롭게 감시하면서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꾸준히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방송 : 2024년 2월 16~18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 채널A <뉴스A>, MBN <뉴스7>
신문 : 2024년 2월 17~19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기사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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