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4대강 입찰 담합' 시공사도 수자원공사에 설계보상비 반환"
대표사 뿐 아니라 시공사도 반환 책임
4대강 사업 공사 입찰 담합에 참여한 컨소시엄의 대표사와 시공사들이 지급받은 설계보상비를 반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앞서 2심 재판부는 대표사들에 대해서만 100억원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는데, 대법원은 시공사도 설계보상비 반환 책임이 있다고 봤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한국수자원공사(이하 공사)가 건설사·건축사사무소 등 121개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설계보상비 반환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판결 중 일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2심 판결 중 공사가 일부 공사에 참여한 시공사들을 상대로 청구한 설계보상비 반환 청구를 기각한 부분을 파기하고, 나머지 상고를 기각했다.
이번 소송에는 계룡건설사업, 고려개발, 대림산업, 대명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서희건설, 성원건설, 쌍용건설, CJ건설, SK건설, GS건설, 한진중공업, 한화건설,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국내 굴지의 건설사들이 대거 피고가 됐다.
재판부는 "입찰공고의 주체가 입찰공고 당시 '낙찰자로 결정되지 않은 자는 설계비의 일부를 보상받을 수 있다'고 정했고, 입찰자가 이에 응해 입찰에 참여한 다음 입찰공고의 주체가 낙찰자를 결정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입찰공고의 주체와 낙찰탈락자 사이에는 미리 공고에서 정한 바에 따른 설계보상비 지급에 관한 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입찰공고, 입찰안내서 등 입찰 당시에 입찰자에게 제시된 문서들 중 설계보상비 지급과 관련된 부분에 의해 정해진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입찰의 무효에 해당하거나 무효에 해당하는 사실이 사후에 발견된 자는 설계비보상 대상자에서 제외하고 입찰의 무효사실이 발견되기 이전에 설계비를 보상받은 자는 현금으로 즉시 반환해야 한다'는 이 사건 특별유의서 규정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됐다고 할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이어 "피고들은 설계보상비 지급에 관한 계약에 기해 연대해서 원고에게 설계보상비를 반환할 의무가 있고, 위 피고들이 직접 담합행위에 관여했는지 여부에 따라 그 책임의 유무를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피고 업체들은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한강·금강·낙동강·영산강) 유역 정비 사업 1차 턴키(설계·시공일괄입찰) 공사와 관련된 입찰에 공동수급체를 꾸려 참여했지만 입찰에서 탈락했다. 당시 공사는 2009년 7월부터 2009년 10월 사이 국토해양부 서울지방국토관리청, 부산·대전지방국토관리청 등에 위탁해 조달청에 각 공사에 대한 입찰 진행을 요청했다.
이 사업에 22조원의 예산이 투입됐으나 입찰 과정에서 회사들이 가격을 합의하고 탈락한 회사들은 일부러 낮은 점수를 받도록 설계서를 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2015년 담합 사실을 확인하고 업체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일부 회사와 임직원은 형사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확정됐다.
이에 공사는 업체들이 수령한 설계보상비를 반환하라며 2014년 4월 소송을 냈다. 공사는 주위적으로 입찰 공고 당시 입찰안내서에 첨부된 공사입찰유의서에 기재된 내용(담합하거나 타인의 경쟁참가를 방해 또는 관계공무원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자의 입찰은 무효로 한다)에 따라 설계보상비 반환을 청구하면서 예비적으로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과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했다.
설계보상비란 입찰에 참여한 업체가 낙찰받지 못한 경우 정부가 설계비 일부를 보상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입찰 과정에서 담합 등 무효 사유가 확인되면 보상비를 다시 반환해야 한다.
1심 법원은 수자원공사의 청구를 대부분 인용해 업체들이 총 244억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 법원은 102억원으로 액수를 줄였다. 수자원공사로부터 위탁받은 지방국토관리청이 설계보상비를 지급해 이를 공사가 청구하는 것이 맞지 않거나 일부는 구체적 담합 행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상고심에서는 수자원공사가 직접 발주한 공사에서 입찰 공고의 '설계보상비 반환' 관련 규정을 수자원공사와 업체들 사이 맺은 계약으로 볼지가 쟁점이 됐다.
2심 법원은 반환 규정이 계약은 아니라고 보고 업체들이 반환금이 아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입찰공고 주체가 (설계보상비 관련 규정을) 정했고 입찰자가 이에 응해 참여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입찰공고 주체와 탈락자 사이에는 공고에서 정한 바에 따른 설계보상비 지급에 관한 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공동수급체에 참여한 대표사·시공사·설계사 중 어디까지 설계보상비의 지급 책임을 지는지도 달라졌다.
2심 법원은 담합을 주도한 대표사가 전액을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직접 담합에 가담하지 않았거나 수동적으로만 동조한 다른 회사들까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반면 대법원은 대표사와 시공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고와 시공사들 사이에서도 설계보상비 지급에 관한 계약이 성립했다"라며 "시공사들은 연대해 원고에게 설계보상비를 반환할 의무가 있고 직접 담합행위에 관여했는지 여부에 따라 책임의 유무를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정해진 용역을 이행하고 대가를 받는 형태로 계약한 설계사들은 책임을 분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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