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담임교사를 고집한 이유
[김홍규 기자]
▲ 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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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직교사 : 희망하지 않음, 희망 1순위 : 2학년 담임, 2순위 : 1학년 담임.
올해 학교를 옮기면서 '업무 희망원'에 적은 내용이다. 옮기는 학교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보직교사(부장교사)를 맡았으면 좋겠다는 요구였다. 제법 긴 통화에서 내가 한 말은 '담임을 하고 싶다'가 전부였다.
5년을 생활한 지금 학교에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도 같은 전화를 받았다. 그 전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절하지 못하고, 내 주장을 끝까지 고집하지 못했다. 겨우 지난해 보직교사를 겸한 담임을 맡았다.
겨울방학 후 20여 일 가까이 학교생활기록부를 쓰면서 담임 맡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생을 갈아 넣는다'라는 농담 섞인 말을 하면서 학교생활기록부를 '생기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생 개개인의 삶을 너무 깊숙이 알게 돼 생긴 감정이입 때문에 힘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들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어 좋았다.
예외도 가끔 있지만, 대체로 나이가 들면 보직교사를 맡는다. 담임은 젊은 교사들 몫이다. 학교에서 교사 업무를 나눌 때, 대부분 보직교사를 먼저 정한다. 보직교사는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채운다. 그런 다음 담임교사를 배치한다.
보직교사의 주된 역할은 행사와 활동의 기획, 행정업무 성격인 강한 일 처리다. 학교생활에서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은 학생 생활, 교육과 직접 관련된 경우에 한정된다. 행정업무의 경우 교장과 교감이라는 행정 경험이 풍부한 인력이 있어 얼마든지 효율적인 집행과 조정이 가능할 수 있다.
학생과 관련된 교육 활동의 경우, 부서 구성원과 협의를 통해 얼마든지 교육적 방향으로 정할 수 있다. 물론 5년 미만 저 경력 교사에게 보직을 맡기는 것은 담당 교사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경력이 보직 업무 수행과 큰 관련이 있지는 않다. 교육 활동 중심 학교를 지향한다면, 보직교사의 중요성이 너무 커서도 안 된다.
보직교사 선정에서 경력을 우선하는 관행에는 '보직'을 교사보다 높은 '직급'처럼 여기는 교직 문화에도 원인이 있다. 교직은 '2급 정교사 – 1급 정교사 – 교감 – 교장'으로 계급 구간이 적다. 그런데, 여기에 수석교사와 부장교사를 1급 정교사와 교감 사이에 존재하는 지위로 생각하는 교원들이 제법 있다.
내가 볼 때, 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은 담임교사이다. 학생들 곁에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담임교사가 어떤 교육철학을 갖고 있고, 어떤 태도로 학생들을 대하는 지에 따라 학생들의 삶은 차이가 난다. 물론 수업교사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하지만, 수업은 교사들 대부분이 하므로 역할 구분과는 별개다.
젊은 담임교사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 가장 좋은 점은 학생들과 소통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학생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 보호자를 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때가 있다.
내 주장의 핵심은 젊은 교사들이 담임을 맡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담임교사의 중요성을 학교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담임 역할을 직접 맡는 것이 필요하다.
교감과 교장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행사와 교육 활동을 기획하는 보직교사들이 담임교사의 고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오랫동안 담임교사를 하지 않다 보면, 과거 자신들의 경험에 비춰 판단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결정하는 일이 발생한다. 학생들을 오랫동안 떠난 교감과 교장, 특히 교장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지 못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담임교사 역할은 앞으로 교사 생활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학생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꼰대'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시험대. 비극으로 끝날지도 모르는 그 시험대에 올랐다,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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