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일도 책임도 다 떠안는다" 아산병원 간호사의 비명

하수영, 김한솔 2024. 2. 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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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 ″병상이 포화 상태로 진료 불가합니다″라고 쓰인 입간판이 세워져있다. 박종서 기자

의과대학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에 이어 업무 중단까지 나섰다. 이로 인해 간호사들이 업무 부담 가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의료계의 부당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간호사가 인턴 업무를 하고 있다'는 제목의 글이 게시돼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빅5' 대형병원 중 한 곳인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한다는 간호사 A씨는 "지금 인턴만 파업 중이고 곧 전공의까지 파업한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인력이 부족하니 인턴 업무를 간호사에게 하도록 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적었다.

'빅5' 병원 전공의 전원은 지난 19일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날 오전 6시부터는 근무 중단에 돌입한 상황이다.

사진 블라인드 캡처

A씨는 "전공의까지 파업하게 되면 간호사들이 환자의 컴플레인과 의사의 업무를 다 받고 만일 환자가 잘못될 경우엔 법적 책임까지 떠안게 될 텐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20일에 전공의들 파업 시작한다는데 답이 없다. 이미 저희 병원에 중환자분들 너무 많은데, 다른 병원에 전원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저 환자들 내버려두고 나가버리면 죽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전공의까지 없는 상태에서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환자 발생하면 어떡하냐"며 "바로 처방하러 달려올 사람이 없어 약도 못 준다. 정말 큰일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파업하려는 이유는 알겠지만, 최소한 파업을 하더라도 병원이 돌아갈 수 있도록 대처방안을 내놓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일 오전 제주대병원 응급실 입구에 인력부족으로 인한 비상진료체계 가동을 알리는 안내문이 전광판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제주대병원에서는 전날 전공의와 수련의 95명 중 73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뒤 이날 무단결근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연합뉴스


이미 전공의 업무 다수 대신해…"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히 해야"


사실 이번 사태 이전부터 간호사가 전공의 등 의사의 업무 중 상당수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의료계의 공공연한 관행이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는 "전공의 업무를 간호사가 떠맡으면서 실제 법적인 업무 경계를 넘어선 불법의료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간호사들은 전공의의 업무 중 동의서 서명, 드레싱, 동맥혈 가스 검사, 배설관리(인공항문·방광) 등을 대신하고 있었다.

노조는 "의료현장에서는 전공의 진료중단에 따른 불법의료 발생, 의료사고 위험, 간호사들의 업무량 폭증과 번 아웃, 환자들의 민원 폭발이 우려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대한간호협회(간협)은 "정부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PA(진료보조) 간호사를 투입하는 방침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간협은 앞서 간호법 국회 통과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대치한 바 있지만,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정책에 대해선 협조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고, 업무 범위에 대한 명문화 없이 간호사가 대체 업무에 투입되면 법정 범위 외의 업무와 책임을 떠맡는 전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강경 대응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간협은 지난 19일 낸 설명자료에서 "정부는 PA 간호사 적극 활용 방침과 관련해 대한간호협회와 사전 협의한 바 없었으며 이후에도 공식적인 협의가 없었다"면서 "정부가 먼저 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화 및 법적 보장과 안전망 구축을 약속하고 반드시 이를 법 보호 체계에 명시화해야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총 1만3000명 중 약 95%가 근무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19일 오후 11시 기준 전공의의 55% 수준인 6415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이 낸 사직서는 모두 수리되지 않았다. 또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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