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는글쓰기] 사별한 엄마를 위로하는 방법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이정은 기자]
"엄마, 밤에 잠을 잘 주무셨어? 식사는 하셨고?"
인천에 사는 딸이 서울에 사는 엄마에게 하는 매일 하는 아침 인사다. 그동안에는 아버지는 식사를 하셨는지, 컨디션은 좀 어떠신지를 묻는 게 인사였다. 이제는 그렇게 안부를 물을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 대신 요즘은 이렇게 엄마의 일상을 묻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여러 가지 행정적 업무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덧 한 달도 훌쩍 넘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며칠 전 상속등기 문제로 엄마와 함께 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에 가 서류를 발급받을 때였다. 인감증명서가 필요했지만 엄마는 등록한 적이 없다고 했기에 등록하려고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담당자에게 엄마의 인감도장을 전달하고 인감등록부터 해야 한다고 말을 했더니 이미 등록이 되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등록된 날은 한 달 정도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인감도장을 나와 함께 만들고 난 다음 날이었다. 심지어 담당 직원까지 같았다.
이쯤 되면 잊고 있던 기억도 '아차, 그때 그랬지!' 하고 생각이 날 법한데 엄마는 정말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와서 인감을 등록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다.
▲ 우울감, 마음의 무게 |
ⓒ ⓒ kmitchhodge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약 3주 가까이 떨어지지 않는 감기 때문에 고생하셨다. 그 과정에서 입맛을 잃으셨고, 좋아하던 탁구장에도 통 나가질 못하셨다. 중요한 건 사별로 인한 상실감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는 거다. 보름쯤 전 엄마는 수시로 떠오르는 아버지 생각으로 혼자 그렇게도 울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이따금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말을 잇기 힘든 경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뒤늦게 안 사실은 처음 열흘 정도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힘들기도 하셨다고.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해리성 기억장애 증상까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심리학자인 토머스 홈스 박사와 리처드 라히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 사망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100점 만점에 100점으로 이혼(73점), 구속(63점), 해고(47점)보다 높았다(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국민건강지식센터 참고). 배우자의 죽음은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충격과 아픔인 것이다.
게다가 엄마의 경우 10대에 아버지를 만나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비록 사는 동안 다정한 부부는 아니었을지라도 그 상실감은 자식인 나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정도겠지.
엄마를 힘들게 하던 감기는 이제 떨어졌지만 떨어진 식욕과 의욕은 다시 쉽게 끌어올려지지 않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열흘에 한 번씩 친정에 가 엄마를 만날 때마다 엄마는 늘 괜찮다고 말을 하지만 눈에 띄게 살이 빠져 있다. 이런 우울감이 보다 무거운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요즘 엄마는 어느 날은 살면서 서운했던 감정을 토로하기도 하시고, 어느 날은 고마웠던 일들을 떠올리신다. 그러다 원망의 말씀을 하시기도, 측은한 마음을 보이기도 하신다. 그 모든 게 엄마 나름의 애도의 방법이다.
▲ 슬픔을 마주하기 |
ⓒ ⓒ benwhitephotography |
어느 심리학자는 사별 가족의 애도 과정을 충격-분노-타협(죄책감)-절망(슬픔)-수용의 단계로 이어진다고 했다. 엄마는 지금쯤 그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숨기지 않는 거다.
감정을 억제하고 속으로 담아두기만 한다면, 그 감정들은 어느새 마음속에서 딱딱하게 굳어 무거운 돌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결국 그 무게에 짓눌리게 되는 순간이 오고 만다. 그러니 순간순간의 감정을 속에 담지 않고 밖으로 꺼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건지.
그런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식사는 하셨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것과 운동은 아니더라도 가벼운 산책을 하실 수 있게 독려하는 것이다. 이따금 말로 쏟아내는 감정을 들어드리는 것. 자주 전화드리고, 자주 찾아뵙는 일. 그리고 그때만큼은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가 되어드리는 일이다.
주의할 것은 내가 그 감정에 공감은 하되 동요되지 않는 거다. 나 또한 아버지를 잃은 상실이 있지만 자식으로서 내가 느끼는 상실과 배우자로서의 상실은 다르다. 또 각자 애도하는 방법은 다르다. 나는 이렇게 글로 적어내며 아버지를 애도하는 반면, 엄마는 당신 나름의 방식이 있는 거니까. 그러니 엄마의 애도를 곁에서 도와드리되 그 감정이 내게 전이되어 나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나의 중심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애도에 정해진 기간이라는 건 없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도 않다. 그저 나의 오늘이, 엄마의 오늘이 어제보다는 보다 평안하기를. 엄마의 평안에 나의 공감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가족을 잃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을 잃은 그 마음은 절대 괜찮을 수 없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애도의 시작이다. 가족을 잃은 나의 마음이, 그리고 내 가족의 마음의 괜찮지 않을 그 마음에 조금은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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