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 대접받을 상황 아냐"…교수는 라꾸라꾸 침대 들이고 당직 뛴다 [르포]

김민주, 안대훈 2024. 2. 2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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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경남 양산부산대병원에 있는 어린이병원(부산대어린이병원) 1층에서 진료 접수를 기다리는 부모와 자녀들. 안대훈 기자

“아이가 갑자기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는데, 전공의 선생님들이 안 계신다니 막막합니다.”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발하는 전공의가 집단행동에 들어간 첫날인 20일 오전 7시50분쯤 경남 양산부산대병원 어린이병원. 11살 아들과 내원한 엄마 김모(40대)씨가 이렇게 걱정했다. 거주지인 경북 포항에서 이 병원까진 1시간30분 걸린다. 선천성 신장 장애를 앓는 아들을 데리고 10년 넘게 소아 질환 전문병원인 이곳에서 투석 등 치료를 받았다. 그는 “근방에서 우리 아이 진료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이라고 했다.

입원 환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8년 전 치료한 혈액암이 재발해 지난해부터 입ㆍ퇴원을 반복해온 조모(50대)씨는 “기득권 싸움에 환자만 불안하다”면서도 “갑자기 1년에 (의대 정원을) 2000명씩 늘린다고 하는 정부도 문제다. 무리하게 하다 보니, 의사들이 반발하는 게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산대, 전공의 86% 사직서 던졌다


양산부산대병원과 본원인 부산대병원에선 전날 전공의 407명 가운데 350명(86.0%)이 사직서를 던졌다. 병원은 이들 대다수가 20일부터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병원 로비 등지에서 눈에 띄는 전공의가 일부 있었다. 사직서를 냈는데 나왔거나 아직 사직하지 않은 거로 보였지만 이들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접근이 부담스러운 듯 이름과 직함 등이 적힌 가운을 벗기도 했다. 전공의 공백에 당장 ‘의료 마비’가 촉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술 보조와 입원 환자 돌봄, 당직 등 진료 업무 전반에서 역할 하던 이들이 사라진 여파는 갈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집단 행동을 시작한 20일 오전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대국민 호소문이 부착돼 환자들이 살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대병원은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파업 때 ‘입원 환자 강제 퇴원’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노조원 이탈에 환자를 안전하게 돌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정성운 부산대병원장은 “(파업이 끝난 후) 환자가 다시 늘어나며 병원이 정상화하는 시점이었다”며 “오늘부터 수술은 평소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당직 뛰고 라꾸라꾸 놓고…진료 공백 메우러 나선 교수


교수들은 “전공의를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교수 사회는 “필수 진료 과목 위기는 잘못된 수가를 보정하는 방식으로 극복해야 한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과도하고 실효성도 없다”는 전공의 의견에 대체로 동조하는 듯했다.
전공의 집단행동 첫날인 20일 오전 7시20분쯤 부산대병원 외래센터 접수처에서 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민주 기자

일부 교수는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나섰다. 배용찬 부산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이번 주 목요일 오랜만에 당직을 선다. 고참 대접받을 상황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성형외과의로서는 드물게 대학병원을 지키고 있는 배 교수는 주로 피부암 환자의 피부 재건 등 수술을 맡는다. 그는 “환자에게 직접 전화해 수술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간호사에게 부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 교수가 마찬가지”라고 했다. 필수 의료 위기와 의대 증원,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아이보다 강아지 받는(출산) 게 훨씬 더 비싼 구조는 분명히 문제다. 경제 양극화와 지역 격차 등 요인은 복합적이다. 그런데 의대생 2000명 증원이라는 ‘처방’을 정해두고 강요하니 전공의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지난 19일 부산대병원 쉼터에서 의료진이 환자와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민주 기자

신용범 재활의학과 교수는 “중증 환자와 응급실부터 고통이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신 교수는 “부산대병원에서 수술받는 이들 중 ‘경증’은 없다. 수술 일정 조정에 환자는 낙담할 수밖에 없다”며 “응급실에 온 환자도 긴급 처치는 받지만, 전공의가 없으니 입원이 안 될 거다. 응급실이 들어차 수용 못 하는 상황도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응급 환자를 처치하는 일이 많은 신 교수는 “연구실에 라꾸라꾸 침대를 들였다. 병원에서 숙식하며 (전공의 공백에) 대응해야 한다.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심정”이라고 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1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이 시간부로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다″며 ″오늘 현장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며, 현황이 파악되면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연구실장으로 전공의들과의 대화 창구였던 신 교수는 “면허 박탈이나 구속 수사 등 정부가 너무 강한 언어를 사용하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 이게 젊은 전공의들을 오히려 자극하고, 집단행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봤다. 그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병원은 전공의 의존도가 우리처럼 높지 않다. 오히려 국가 재원을 들여 전공의를 교육하고, 병원은 전공의 대신 전문의를 채용해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기형적인 ‘전공의 의존’ 체제를 되돌아볼 논의가 절실하다. 이번 사태를 해소할 방안도 신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술 연기 발생…의대생들은 ‘동맹 휴학’ 움직임


잇단 전공의 사직 여파로 경남 삼성창원병원에서는 흉부외과 등에서 예정된 수술 2건이 연기되기도 했다. 이 병원에선 전공의 99명 중 71명(71.7%)이 사직서를 냈다.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동참이 필요한 수술 중 비교적 급하지 않은 2건은 보호자 동의를 받아 연기했다”며 “다른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 의과대학(옛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건물. 연합뉴스

이런가운데 부산·경남 의과대학에서 ‘동맹 휴학’ 움직임도 뒤따르고 있다. 부산대 의과대학 비상시국 정책대응위원회에 따르면 의대생 590명 중 582명(98.6%)이 휴학계를 제출했다. 부산 동아대 의대생 294명은 이날부터 수업을 거부하는 등 동맹 휴학에 참여하기로 했다. 부산 고신대와 진주 경상대 의대에서는 현재까지 휴학을 신청한 학생은 없다고 한다.

의대생 약 400명이 재학 중인 진주 경상대 관계자는 “의대생이 휴학 절차를 많이 문의하고 있다”며 “하지만 휴학 신청을 하려면 먼저 지도교수와 상담해야 하는 등 절차 까다롭기 때문에 정식으로 휴학계가 접수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휴학하려는 의대생의 상담을 피하시는 교수님들도 계시다”며 “조만간 다수의 휴학 신청에 대비해 학사일정 조정 등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ㆍ양산=김민주ㆍ안대훈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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