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 대접받을 상황 아냐"…교수는 라꾸라꾸 침대 들이고 당직 뛴다 [르포]
“아이가 갑자기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는데, 전공의 선생님들이 안 계신다니 막막합니다.”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발하는 전공의가 집단행동에 들어간 첫날인 20일 오전 7시50분쯤 경남 양산부산대병원 어린이병원. 11살 아들과 내원한 엄마 김모(40대)씨가 이렇게 걱정했다. 거주지인 경북 포항에서 이 병원까진 1시간30분 걸린다. 선천성 신장 장애를 앓는 아들을 데리고 10년 넘게 소아 질환 전문병원인 이곳에서 투석 등 치료를 받았다. 그는 “근방에서 우리 아이 진료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이라고 했다.
입원 환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8년 전 치료한 혈액암이 재발해 지난해부터 입ㆍ퇴원을 반복해온 조모(50대)씨는 “기득권 싸움에 환자만 불안하다”면서도 “갑자기 1년에 (의대 정원을) 2000명씩 늘린다고 하는 정부도 문제다. 무리하게 하다 보니, 의사들이 반발하는 게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산대, 전공의 86% 사직서 던졌다
양산부산대병원과 본원인 부산대병원에선 전날 전공의 407명 가운데 350명(86.0%)이 사직서를 던졌다. 병원은 이들 대다수가 20일부터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병원 로비 등지에서 눈에 띄는 전공의가 일부 있었다. 사직서를 냈는데 나왔거나 아직 사직하지 않은 거로 보였지만 이들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접근이 부담스러운 듯 이름과 직함 등이 적힌 가운을 벗기도 했다. 전공의 공백에 당장 ‘의료 마비’가 촉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술 보조와 입원 환자 돌봄, 당직 등 진료 업무 전반에서 역할 하던 이들이 사라진 여파는 갈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당직 뛰고 라꾸라꾸 놓고…진료 공백 메우러 나선 교수
교수들은 “전공의를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교수 사회는 “필수 진료 과목 위기는 잘못된 수가를 보정하는 방식으로 극복해야 한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과도하고 실효성도 없다”는 전공의 의견에 대체로 동조하는 듯했다.
일부 교수는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나섰다. 배용찬 부산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이번 주 목요일 오랜만에 당직을 선다. 고참 대접받을 상황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성형외과의로서는 드물게 대학병원을 지키고 있는 배 교수는 주로 피부암 환자의 피부 재건 등 수술을 맡는다. 그는 “환자에게 직접 전화해 수술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간호사에게 부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 교수가 마찬가지”라고 했다. 필수 의료 위기와 의대 증원,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아이보다 강아지 받는(출산) 게 훨씬 더 비싼 구조는 분명히 문제다. 경제 양극화와 지역 격차 등 요인은 복합적이다. 그런데 의대생 2000명 증원이라는 ‘처방’을 정해두고 강요하니 전공의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신용범 재활의학과 교수는 “중증 환자와 응급실부터 고통이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신 교수는 “부산대병원에서 수술받는 이들 중 ‘경증’은 없다. 수술 일정 조정에 환자는 낙담할 수밖에 없다”며 “응급실에 온 환자도 긴급 처치는 받지만, 전공의가 없으니 입원이 안 될 거다. 응급실이 들어차 수용 못 하는 상황도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응급 환자를 처치하는 일이 많은 신 교수는 “연구실에 라꾸라꾸 침대를 들였다. 병원에서 숙식하며 (전공의 공백에) 대응해야 한다.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심정”이라고 했다.
교육연구실장으로 전공의들과의 대화 창구였던 신 교수는 “면허 박탈이나 구속 수사 등 정부가 너무 강한 언어를 사용하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 이게 젊은 전공의들을 오히려 자극하고, 집단행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봤다. 그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병원은 전공의 의존도가 우리처럼 높지 않다. 오히려 국가 재원을 들여 전공의를 교육하고, 병원은 전공의 대신 전문의를 채용해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기형적인 ‘전공의 의존’ 체제를 되돌아볼 논의가 절실하다. 이번 사태를 해소할 방안도 신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술 연기 발생…의대생들은 ‘동맹 휴학’ 움직임
잇단 전공의 사직 여파로 경남 삼성창원병원에서는 흉부외과 등에서 예정된 수술 2건이 연기되기도 했다. 이 병원에선 전공의 99명 중 71명(71.7%)이 사직서를 냈다.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동참이 필요한 수술 중 비교적 급하지 않은 2건은 보호자 동의를 받아 연기했다”며 “다른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가운데 부산·경남 의과대학에서 ‘동맹 휴학’ 움직임도 뒤따르고 있다. 부산대 의과대학 비상시국 정책대응위원회에 따르면 의대생 590명 중 582명(98.6%)이 휴학계를 제출했다. 부산 동아대 의대생 294명은 이날부터 수업을 거부하는 등 동맹 휴학에 참여하기로 했다. 부산 고신대와 진주 경상대 의대에서는 현재까지 휴학을 신청한 학생은 없다고 한다.
의대생 약 400명이 재학 중인 진주 경상대 관계자는 “의대생이 휴학 절차를 많이 문의하고 있다”며 “하지만 휴학 신청을 하려면 먼저 지도교수와 상담해야 하는 등 절차 까다롭기 때문에 정식으로 휴학계가 접수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휴학하려는 의대생의 상담을 피하시는 교수님들도 계시다”며 “조만간 다수의 휴학 신청에 대비해 학사일정 조정 등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ㆍ양산=김민주ㆍ안대훈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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