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X 얼굴 좀 보자!" 조사받으러 간 경찰서, 가해자가 달려들었다

김화빈 2024. 2. 2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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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2차가해①] 가해자와 한공간서 조사받고 국선변호사 선임 지체... 경찰 대신 증거수집도

"국가의 2차가해." <오마이뉴스>가 만난 범죄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수사, 재판, 피해 회복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입은 상처, 그리고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안을 취재해 네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말>

[김화빈, 복건우 기자]

 '편의점 숏컷 폭행 사건' 피해자가 지난 1월 26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사건 직후 첫 피해자 조사를 받았던 경찰 지구대 내부를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한 채 폭언 속에서 진술을 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 김화빈
 
"저는 경찰을 못 믿어요." - '바리캉 사건' 피해자 아버지
"범죄 피해자가 되는 순간 일상이 사라졌어요." - '인천 스토킹 살인' 피해자 사촌언니

그저 생소했다. 범죄를 겪은 직후부터 피해자들은 수사와 재판이라는, 평소 겪어보지 못했던 절차와 맞닥뜨렸다. 나아가 '국가의 공백'과도 마주해야 했다.

자신 또는 가족의 사건임에도 피해자들은 형사소송에서 제3자였다. 수사기관과 재판부 재량에 따라 활동 범위가 결정됐다. 피해자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가해자에게 정당한 죗값을 묻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그들의 일상 회복은 뒤로 밀렸다.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내면 "국가에 무엇을 바라고 저러냐"는 세간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대한민국의 범죄 피해자들은 "국가의 부재와 마주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피해자 절규로 휴대전화 압수, 그걸로 끝
 
 일명 '바리캉 폭행' 사건 피해자 부모가 지난 1월 25일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지난 6개월간 수사·공판 과정에서 모은 서류들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 복건우
 
2023년 7월 11일 경기도의 한 오피스텔에서 머리카락이 바리캉으로 밀린 21살 박예진(가명)씨가 구조됐다. 박씨는 4박 5일간 수시로 목이 졸렸고, 맞았고, 성폭행과 불법촬영을 당했다. 가해자인 남자친구는 박씨의 얼굴에 소변을 누거나 침을 뱉었고, 반려견용 배변 패드에 용변을 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이는 가해자가 잠든 사이 박씨가 휴대전화로 부모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드러났다.

문자를 받고 즉각 112에 신고한 아버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해자는 긴급체포된 상태였다. "감정이 북받쳐 가해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아버지의 눈에 머리카락이 마구잡이로 밀린 채 "(가해자의) 휴대전화를 뺏으라"고 울부짖는 딸의 모습이 비쳤다. 피해자의 절규로 불법촬영물이 담긴 증거가 경찰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가해자를 긴급체포한 경찰은 현장에서 휴대전화 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현장보존 또한 되지 않아 혐의 입증에 필요한 추가 증거까지 분실됐다. 박씨의 아버지는 "경찰의 압수수색은 사건 발생 일주일 뒤인 7월 18일에야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출동했으면, 현장을 보존할지 말지 결정해서 피해자한테 알려줘야 하잖아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현장이 보존되지 않았어요. 가해자가 잭나이프 비슷한 칼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수도 없이 우리 아이를 '죽이네, 살리네' 협박했는데 결국 찾지 못했어요. 심지어 (가해자가 소변을 누라고 강요했던) 강아지용 소변패드는 (증거라고 생각하지 못해) 우리가 청소하면서 치웠어요." - '바리캉 사건' 피해자 아버지

국선변호사 지원 또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성폭행 사건 피해자는 국가(검사)로부터 국선변호사를 지원받을 수 있다(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7조). 박씨는 구조된 다음 날인 12일 경찰서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았는데 국선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없었다. 국선변호사는 가해자가 검찰에 송치되기 전날(17일)에야 배정됐다.

"저희는 경찰조사 첫날부터 국선변호사를 요청했는데 (담당 경찰관은) '검찰청에 요청했는데 콜백(전화 회신)이 없다'고만 했어요. 경찰 수사가 다 끝난 그제야 국선변호사가 배정됐죠. 가장 필요할 때 변호사가 없었는데 이 제도가 무슨 소용인가요? 참다못해 전화를 걸면 경찰은 마치 피해자가 트집이라도 잡는다는 듯 웃으며 '잘 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어요." - '바리캉 사건' 피해자 아버지

정명화(법률사무소 이채) 변호사는 "법률 조력은 증거를 토대로 전략을 짜는 것인데 피해자 조사 후 선임된 국선변호사는 할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며 "국선변호사는 경찰 조사 전 지정돼야 피해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데 (조사 첫날에야 국선변호사 선임을 안내하는 등) 현장에선 원활한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는 신진희 변호사는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검사는 피학대 아동에게 변호사가 없다면 국선변호사를 선정할 의무가 있다"며 "(다른 범죄의 경우에도) 법에 그러한 내용이 있으면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 텐데 범죄피해자보호법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만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로 차고, 소리지르고... 가해자 협박 속 피해자 조사
 
 지난 1월 31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경남 진주 '편의점 숏컷 폭행 사건' 피해자가 사건 당시 부숴진 휴대전화를 내보이고 있다.
ⓒ 이정민
 
'편의점 숏컷 폭행 사건'의 피해자 또한 경찰서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23년 11월 4일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연주(20대, 가명)씨는 20대 남성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숏컷은 페미니스트만 한다"는 게 폭행의 이유였다. 이씨는 이 사건으로 2주간의 상해를 입었다. 이가 흔들렸고, 난치성 이명이 생겼다. "사지가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불안증과 함께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이씨는 사건 직후 간단한 검진만 마치고 경찰 지구대에서 첫 피해자 조사를 받았다. 그의 곁을 지킨 건 편의점 사장뿐이었다. 편의점 사장은 "이렇게 불안해하는데 옆에서 손이라도 잡아줘야 할 것 같다"며 진술 조력을 자청했다. 편의점 사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건만, 경찰은 가해자가 소리치고 있는 공간에 피해자를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가해자를 지구대 안쪽에 묶었다고 했는데 (의자를) 질질 끌고 오더니 제가 조사받는 방문을 걷어찼어요. 진술하는 내내 '페미X아 얘기하냐' '얼굴 좀 보자'며 욕을 하고 소리를 질러댔어요. 오죽하면 경찰도 '사람이 병원에 실려 갔는데 반성도 없냐'고 혀를 내둘렀죠. 진술 마치고 나갈 때 경찰관 세 명이 가해자 앞을 막았지만, 가해자 반항에 휘청거렸고 결국 눈이 마주쳤어요. 아마 묶어두지 않았으면 저한테 오지 않았을까요?" - '숏컷 폭행 사건' 피해자 이연주(가명)씨 

여성혐오 범죄가 분명했지만 경찰은 '여성긴급전화 1366'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씨는 '숏컷 폭행 사건'의 피해자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나서야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와 연결됐다. 이마저도 기사로 사건을 접한 정윤정 소장이 경찰서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먼저 의사를 전해 이뤄졌다.

정윤정 소장은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일선 현장에선) 스토킹 사건을  젠더폭력으로 인식해 (상담소에서) 지원을 한 바 있다"며 "(수사기관의) 매뉴얼에 여성혐오 기반 폭행이 젠더폭력으로 규정됐다면 경찰이 1366에 사건 지원을 요청해 상담원이 즉시 피해자를 조력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대신 증거 수집 나선 피해자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의 사촌언니가 지난 1월 18일 가해자 1심 선고(징역 25년) 직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김화빈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을 피해자가 대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23년 7월 17일 오전 6시쯤 인천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출근하던 최나연(30대, 가명)씨가 옛 연인이 휘두른 칼에 찔려 숨졌다. 가해자와 같은 직장에 다녔던 최씨는 심해지는 집착에 이별을 통보했는데,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의 폭행을 당하고 4개월 동안 스토킹에 시달렸다.

사건 발생 약 한 달 전, 최씨의 경찰 신고 후 가해자는 흉기를 구입했다. 이후에도 최씨 주변을 맴돌며 동선을 파악한 그는 스토킹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지만, 결국 범행을 저질렀다. 

보복살인죄는 일반살인죄보다 형량이 더 무겁다. 가해자는 당초 수사기관에 "스토킹 신고로 현행범 체포가 돼 화가 나 칼을 구입했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보복 목적이 아니었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최씨가 겪은 스토킹 피해를 없는 일 취급했고, 가해자에게 일반살인죄를 적용했다. 검찰 공소장엔 보복의 중요한 증거인 가해자의 흉기 구입 시점 등이 빠졌다.

최씨의 사촌언니는 발인을 마친 뒤 공소장을 받아 든 날을 떠올리며 "오로지 피고인의 이야기만 듣고 작성된 공소장"이었다고 말했다. 빽빽하게 나열된 활자 어디에도 스토킹에 관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고 그때부터 공소장 변경을 위한 사촌언니의 싸움이 시작됐다.

"가해자와 나연이가 같은 직장에 다녔는데도 경찰은 직장동료들에게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어요. 경찰은 (가해자가) 현행범이라 살인 동기는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나 봐요. 스토킹이 왜 살인으로 이어진 건지, 가해자가 보복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지 (경찰의 수사만으론) 알 수 없었어요." - '인천 스토킹 살인' 피해자 사촌언니

사촌언니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가해자가 어떤 주장을 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법원은 수사자료의 열람·등사를 허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약 600만 원을 들여 수사자료를 보게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800여 쪽 자료 중 200여 쪽이 제공됐는데 정작 수사기관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목록 등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가해자는 수사자료는 물론 유족이 제출하는 탄원서까지 열람했고 이를 토대로 수십 장의 반성문을 써 법원에 냈다. 이 반성문 또한 유족은 볼 수 없었다.

사촌언니는 경찰 대신 직접 직장동료를 만나 '최씨가 스토킹 피해를 당했다'는 진술을 수집했고, 이를 토대로 법정에 나가 이 사건이 보복살인임을 증언했다. 최씨의 노트북을 샅샅이 뒤져 스토킹 증거(통화 녹음, 카카오톡 대화) 또한 찾아내 법원 탄원서에 담았다.

사촌언니는 지난해 12월 5일 변호사를 통해 피고인의 죄명을 일반살인죄에서 보복살인죄으로 변경해 달라는 의견서를 법원에 냈다. 3일 뒤 검찰은 그 의견을 받아들여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고 법원은 이를 허가했다. 이후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보복살인죄를 인정하며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사촌언니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1심 선고 뒤 "가해자가 이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돼야 남겨진 유족들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주현 변호사(법무법인 정진)는 "(수사기관이) 피의자(가해자)를 송치·기소하려면 피의자 진술조서를 증거로 쓰기 위해 명확한 절차를 거친다"라며 "(그러나) 피해자의 얘기는 전적으로 수사 주체의 판단 사항이다. 특히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피해가 명확한데 굳이 더 조사할 게 있을까'라고 판단되면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는 CCTV와 같은 객관적 증거들, 피의자의 주장과 목격자 진술 등을 알아야 대응할 수 있는데 (수사자료의) 열람·등사 신청은 대부분 거절된다"며 "심지어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도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8일 형사소송법 개정을 입법 예고(열람·등사 신청의 불허에 대한 이의 제기 가능)했지만, 실효성엔 물음표가 붙는다. 한 변호사는 "피해자가 불복할 절차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현장에서 유효할지는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국가의 2차가해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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