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배신... 대파가 한 단에 5천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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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기자]
이번 달은 이래저래 지출이 많았다. 설날도 있었고 세뱃돈도 솔솔찮게 나갔다. '이 달을 넘기기 전에는 장 보러 안 나가야지' 결심했다. 당분간 냉장고를 파먹는 '냉파족'이 되기로 다짐했다. 식비를 줄이려 냉장고에 남아있는 재료들을 활용하려 했는데, 막상 밥때가 되어 냉장고를 열어보니 대파와 양파, 풋고추 등 야채칸 한편에 늘 있어야 할 '붙박이 야채'가 다 떨어졌다.
장바구니 두 개를 챙겨 시장에 갔다. 내 또래 50대 주부들은 크게 두 부류이다. 시장파와 마트파. 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시장파'를 고수하고 있다. 시장은 마트보다 식재료가 더 신선하면서 저렴하고 제철 식품이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소량 판매와 접근성의 편의성 때문에 마트를 이용하는 '마트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마저도 옛날 얘기가 돼가는 것 같다. 소비재 시장의 골리앗, 온라인몰의 출현은 '쿠팡파'를 탄생시켰다. 쿠팡이 신선식품 시장에 뛰어들면서, 동네 터줏대감 마트는 물론, 시장을 위협하던 대형 마트마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 대파 한 단 오천원의 시대 |
ⓒ 김상희 |
필수 야채를 사러 나갔지만 비싼 가격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아 빈 바구니로 시장만 한 바퀴 돌았다. 가장 먼저 충격을 안긴 것은 대파 가격이었다. 대파 한 단에 오천 원이다. 대파가 무슨 고기도 아니고, 장식용으로 쓰는 고급 야채도 아닌데 2500원이면 사던 대파가 5000원이라니, 두 배로 올랐다.
시장의 배신이다. 한 소쿠리 3000원이던 감자나 고구마는 개수는 더 적어진 채 5000이 되었고, 몇 개 더 담겼다 싶으면 1만 원이란다. 풋고추는 보통 때의 반보다 몇 개 더 담아놓고 같은 가격을 받으니 체감 물가 상승률은 40%다. 시장에서 야채 소쿠리 3000원짜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웬만하면 다 5000원이 시작 가격이었다.
▲ 금사과의 출현 |
ⓒ 김상희 |
예전에는 사과가 비싸면 귤 사 먹고 귤이 비싸면 사과 사 먹었는데, 이번엔 과일들끼리 무슨 가격 담합이라도 했는지 차별없이 비싸니 과일 모두에게 비싼 대접을 해줘야 한다. 그냥 '사과, 배, 귤'이라고 부르면 안 될 것 같다. '금사과, 금배, 금귤'로 불러야 한다.
해외에 장기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물가 높기로 소문난 도시들은 듣던 대로 서비스 요금이 높고 외식비가 비쌌다. 그러나 평소에 다들 이용하는 마트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해서, 마트 나들이만큼은 언제나 즐거웠다. 식재료로 가득 채운 장바구니는 행복 그 자체였다.
여행에서 돌아왔는데도 내 머릿속 물가 시계는 1년 전으로 세팅되어 있는지 적응이 잘 안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장바구니 물가만 오른 게 아니었다. 가스와 전기요금도 올랐고 목욕비와 이발·미용비도 올랐다. 지하철과 버스 요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수입이 줄어들었다
지난주에는 딸아이 자취방을 구하러 서울에 갔었다. 처음에는 딸아이를 독립시키는 부모 마음이라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고 관리가 잘 된다'는 오피스텔을 구해 주고 싶었다. 6평도 안 되는 강남의 오피스텔은 월세 70만 원이 최저가 수준이었다.
비싼 월세값도 놀라웠지만 채광도 좋지 않아 답답한 데다가, 한 사람이 겨우 누울까 말까 한 살인적인 크기에도 그 가격이라 더 경악했다. 결국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60만 원짜리 다세대 원룸을 얻었다. 중소기업에 갓 취업한 사회초년생이 적은 월급으로 월세를 어떻게 감당할까 싶다.
서울의 주거비가 높은 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니 그렇다 치고, 서울과 지방 할 것 없이, 공공요금과 교통비, 서비스요금, 외식비 등 '내 수입 빼고' 모든 게 다 올랐다. 아니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었을 뿐인데 내 구매력이 줄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내 수입이 안 오른 게 아니라 오히려 내 수입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고물가 시대를 어떻게 버텨갈까. 써봤자 별 뾰족한 수 없다고 던져두었던 가계부라도 다시 집어 들어야 하나? 정말 쉽지 않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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