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에 ‘공공병원’ 대응책…“쥐어짜기식 대처”

신대현 2024. 2. 20.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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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전공의 집단사직…정부 ‘비상진료대책’ 마련
한덕수 총리 “공공의료기관 역할 중요해진 상황”
열악한 공공의료기관들…“위기 상황 닥쳤을 때만 찾아”
“정부 대응 방식 채 2주도 못 갈 것”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며 의료공백이 현실화됐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하기로 하는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되자 정부의 대응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방의료원 등을 총동원할 방침인 가운데, 인력과 시설이 열악한 공공병원들을 쥐어짜는 식의 대처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의료계 집단행동 대응 관계 장관 회의’를 통해 35개 지방의료원, 6개 적십자병원을 포함한 97개 공공의료기관의 평일 진료 시간을 확대하고, 주말과 공휴일 진료도 실시한다고 밝혔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공보의와 군의관을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보건소 연장 진료도 검토한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도 진료공백을 막기 위해 대응에 나섰다. ‘비상진료대책’을 마련한 서울시는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될 경우, 공공의료기관인 서울 시립병원 8개소의 내과, 외과 등 필수진료과목 중심으로 평일 진료시간을 오후 8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서울의료원, 보라매병원, 동부병원, 서남병원 등 시립병원 4개소는 24시간 응급실 운영을 유지한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보건소에는 ‘비상진료대책본부’가 구성돼 평일 오후 8시까지 진료하고, 개원의들이 집단행동에 동참하면 주말까지 진료를 연장할 방침이다.

경상북도도 이날부터 비상진료대책본부를 확대 운영키로 했다. 경북은 현재 도립 의료원 3개소, 군립 의료원 1개소, 적십자병원 2개소 등 공공의료기관 6개소와 보건소 24개소, 보건지소 216개소, 보건진료소 298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구시는 의료기관별 대책 회의를 개최해 응급의료센터 비상운영 대책을 논의했다. 코로나19 이후 중단됐던 지역의료협의체도 재가동해 비상진료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국립중앙의료원이 코로나19 시기에도 최일선에서 가장 고생했는데, 또다시 어려운 상황을 맞게 돼 안타깝다”며 “상황이 조속히 안정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병원의 진료 축소에 따라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한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진 상황”이라며 “생명이 위중한 중환자와 응급환자들이 이송되는 경우 환자 진료에 문제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강제로 인력 끌어다 쓰면 전문의들까지 나갈 판”

정부는 공공병원들에 같이 위기를 극복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지만 정작 공공병원 의사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위기상황만 닥치면 찾는단 쓴웃음도 짓는다. 공공의료 전문가로 꼽히는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공공병원을 키워야 한다고 수십 년간 외쳐도 정부는 들은 척도 안 하다가 꼭 이런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찾는 것 같아 아쉽다”며 “위기 상황에서 공공병원들이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워낙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중증응급환자 관리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공공병원 중에서도 규모가 있는 서울시의료원이나 국립중앙의료원의 전공의들도 사직 행렬에 동참한다면 힘든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도 했다. 조 원장은 “서울시의료원이나 국립중앙의료원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지방 공공병원들의 현재 상태는 열악하다”면서 “이들 병원의 전공의까지 나가버리면 정말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년 전 의사 파업 때부터 정부가 공공의료에 대한 체질 개선에 나섰다면 지금 같은 위기는 겪지 않았을 것”이라며 “모든 게 정상화됐을 때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또 공공병원의 역할이 잊히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공병원에 속하는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운영 6개 보훈병원도 자체적인 비상진료대책을 수립해 진료 시간 연장 등의 계획들을 검토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중앙보훈병원에서 근무 중인 인턴 26명 중 23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인숙 중앙보훈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지금 우리 병원도 전공의들이 다 나가서 전문의들만으로 정부를 도울 여력이 안 된다”며 “정부가 강제로 인력을 끌어다 쓴다 하면 전문의들까지 병원을 나갈 판이다”라고 토로했다.

서울 시립병원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시립병원 가정의학과 A전문의는 시립병원들이 의료공백에 대비해 발 빠르게 대책을 세웠지만 현 위기 상황을 타파할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A전문의는 “답이 없다. 남아 있는 인력만 갖고 수술방을 돌리기엔 한계가 있어 신규 입원환자 수술은 가능한 한 미루게 될 것”이라며 “지금 정부의 대응 방식은 채 2주도 못 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겹쳐 보인다고도 했다. 당시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공공병원들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해 운영한 바 있다. A전문의는 “코로나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공무원들이 행정명령서 한 장 들고 병원에 찾아왔다”면서 “우리 같은 전문의들이 지박령으로 남아 끝까지 병원을 지킨다 해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공공병원들의 원활한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노력한단 방침이다. 정통령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중앙비상진료대책상황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시도보건국장 회의를 두 차례나 개최해 각 관할 지역 내 공공병원이 비상진료계획을 수립하도록 협조 요청을 했다”며 “또 35개 지방의료원과 6개 적십자병원을 포함해 전체 의료원장 회의를 통해서 비상진료에 관한 협조 요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의료원장들이 지자체와 충분한 협의 하에 비상진료 대책을 시행하는 것에 모두 긍정적인 입장을 줬다”며 “여러 의견을 모아 대책을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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