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 칼럼] ‘이상한 자본주의’ 하면서 주가 상승 바라나
탈취해도 소송가면 백전백패
소유권 보호 안 되는 비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 빠져 있는 게 문제의 핵심
‘회사·주주 위해야’로 고쳐야
이 조항 있어야 밸류업도 효과
주권 보호에서 중국보다 못한
착잡한 한국 현실 직시해야
한국 자본주의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잘 드러나는 게 회사의 물적분할이다. 기업에서 특정 사업 부문을 떼 새 회사를 만든다고 하자. 새 회사의 모든 지분을 기존 기업(모회사)이 보유하는 분할 방식이 물적분할이다. 이렇게 되면 모회사의 지배주주나 대표이사가 단독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는 기존 회사 주주들의 지분율대로 신설 회사의 지분을 나눠주는 인적분할과 대조된다.
물적분할 자체가 악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전제가 있다. 이렇게 할 경우 필연적으로 주주권이 훼손되는 모회사의 일반주주에 대해 어떤 형식이든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것이 작동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2020년 9월 LG화학이 알짜배기 2차전지 사업부를 LG에너지솔루션으로 물적분할해 상장한 것이다. 당시 LG화학의 지분 70%는 일반주주가, LG그룹 총수를 포함한 지주회사(지배주주)는 나머지 30%를 보유했다. 그런데 물적분할로 LG엔솔에 대한 일반주주의 주식 지배권은 제로(0)가 됐고 지배주주의 지배권은 100%가 됐다. 일반주주의 지배권 70%가 순식간에 LG화학 지배주주에게 이전됐다. LG화학 측에서 LG엔솔 분할에 따른 이득을 일반주주들에게 나눠주지도 않았다. 회사법 전문가인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상훈 교수는 이를 주주 지배권의 몰취(沒取) 내지 탈취라고 표현한다.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100만원을 넘어가던 LG화학 주가는 반 토막 났다.
이렇게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주주들이 할 수 있는 건 주식토론방에서 지배주주를 성토하며 울분을 토하는 것뿐이었다. LG화학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면 될 것 아니냐고 한다면 너무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무엇보다 LG화학 이사회에서 물적분할 및 LG엔솔 상장 건을 승인했다. 어떻든 ‘적법’한 절차는 거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일어날 수가 없다. 우선, 회사 경영진이 이런 안건을 들고 온다고 해도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안건에 찬성하면 주주들로부터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회를 통과했다 해도 가처분 소송에서 중지 명령이 나올 가능성이 100%다.
그렇지만 한국 기업의 이사들은 일반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것이 분명한 사안에도 서슴없이 찬성한다. 법대로라면 이사들이 주주의 이익을 돌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구절이 없다.
고작 이 구절이 없다고 소송에서 패소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가 명시돼 있지 않은 결과는 엄청나다. 대법원은 수차례 이 조항을 들어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일반주주를 희생시켜 사익을 챙긴 주주권 침해 소송에서 “주주의 이익은 (이사회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소유권은 자본주의의 고갱이 중 고갱이다. 그리고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업이 주주의 소유권을 침해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정상적인 자본주의라고 할지 의문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김우진 교수는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주권 침해를 막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게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이 상법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이다. ‘이사는 회사 및 주주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로 고쳐야 한다.
이러한 주주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핵심적인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 나라의 증시에 국내 투자자는 물론 해외 투자자가 돈을 넣을 리 없다. LG엔솔 사태 이후 정부가 내놓은 조치들도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가 없는 상태에서는 실효가 없는 것으로 미국에서 오래전에 결론났다. 참고로 지난해 12월 중국도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포함하도록 상법(公司法)을 개정했다. 주주권 보호에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뒤떨어진 ‘이상한 자본주의’ 한국의 현주소를 직시해야 한다.
배병우 수석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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