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HPV 9가’ 무료 접종 1회만 ?… 거센 반발에 정부 “재검토”
정부, WHO 권고, 호주·英 사례 들며
남녀 모두 기존 2회서 ‘축소’ 검토
전문가들, 1회 접종으론 한계 지적
한국, 2016년에야 12세 소녀 첫 접종
女 접종률 43%… 男은 3% 수준 그쳐
남녀 접종률 높이는 게 우선 지적
예산 확보 어렵다면 순차 연령 확대
제약사 비용 분담·바우처 등 제안도
정부는 자궁경부암과 항문암, 일부 생식기 질환을 예방하는 ‘HPV(사람유두종바이러스) 백신’ 접종의 국가 지원 확대를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다. 무료 접종 HPV 백신을 기존 2·4가 백신에서 바이러스의 예방 범위가 보다 넓은 9가 백신으로 바꾸고 지원 대상도 현재 12~17세 소녀와 일부 저소득층 여성(18~26세)에서 소년으로까지 넓히는 방안이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발표한 국가필수예방접종(NIP) 도입 우선순위 설정 연구결과를 보면 ‘HPV 9가 백신 도입 및 대상 확대’는 인플루엔자(독감)백신 확대와 고령층 폐렴구균(PCV13) 백신 도입에 이어 세 번째로 우선순위가 높았다. 내년 시행을 목표로 HPV 9가 백신 전환과 소년으로 확대라는 방향성은 확고해 보인다.
그런데 지원하는 접종 횟수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9가 백신은 2·4가 백신에 비해 훨씬 비싸고 소년으로 확대할 경우 그에 따른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질병청이 예산 절감을 위해 기존 2차 접종까지 지원하던 것을 남녀 모두 1차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전문가단체들이 “한국적 상황에서 1회 접종만 지원은 무리가 있다”며 반발했다. 이에 질병청은 “접종 횟수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질병청은 예산 확보가 가능한 선에서 다각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1회 접종만 지원하는 변경안은 철회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분위기다. 질병청 관계자는 19일 “전문가 의견 청취를 통해 1회 접종안은 재검토하기로 했다. 조만간 예방접종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상반기 안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접종 횟수 축소에 부정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1회 접종 지원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임상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회 접종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사항과 용법·용량과도 달라 ‘전례 없는 허가사항 외 NIP 사업’이 될 수 있다. 식약처는 4가 및 9가 HPV 백신의 용법·용량을 9~14세는 2~3회, 그 외 연령은 3회로 정하고 있다. 현재 국내 NIP 대상 질환 18종 가운데 허가사항 외 용법·용량의 일부만 지원한 사례는 없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만일 1회 접종만 지원된다면) 국내 허가기준에 맞춰 식약처의 검토 및 승인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1차 접종 후 2~3차 접종을 본인 부담으로 접종하도록 한다면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일부 계층만이 추가 접종을 진행해 건강 불평등을 초래하고 군중 면역 효과 달성에도 불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HPV 백신 1회 접종 지원을 검토한 배경에는 2022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와 이후 실제 정책을 전환한 호주와 영국 사례가 있다. WHO는 당시 1회 백신 접종만으로 기존의 2~3회 접종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고 9~20세 여성에게 1회 혹은 2회, 21세 이상 여성은 2회 접종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호주와 영국은 각각 지난해 2월과 9월부터 HPV 백신의 국가 지원을 1차 접종에만 적용하고 있다.
대한부인종양학회는 이에 대해 “1회 접종에 대한 연구들이 일관성이 없고 WHO 권고안은 국내 의료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을 고려해 향후 HPV 1회 접종에 대한 더 많은 연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WHO의 권고는 저개발국의 백신 부족 상황을 고려해 효율적인 분배를 고려한 전략으로, 한국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2016년말 12세 소녀 대상으로 NIP를 시작해 대상 폭을 조금씩 넓혔지만, 접종의 역사가 짧아 현재 여성 접종률은 43%, 남성은 NIP에 포함조차 안 돼 3% 수준에 그친다. 반면 호주는 2007년, 영국은 2008년 HPV 백신을 NIP(12~13세 소녀)에 도입해 한국보다 10년쯤 앞섰다. 또 호주는 2013년, 영국은 2018년부터 같은 연령대 소년으로 확대하고 각각 2018년과 2022년부터 9가 백신으로 전환했다. 호주의 HPV 백신 접종률은 2020년 남녀 15세 기준 78~80%, 영국은 2021년 15세 기준 60~70%에 달한다. 호주의 경우 이런 기세로 집단면역을 이뤄 자궁경부암을 완전히 퇴치하겠다는 목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NIP로 HPV 9가 백신을 남녀 모두에 접종하는 국가는 20개국이다. 한국은 멕시코 아이슬란드 등과 함께 여전히 여성에만 2·4가 백신을 맞히고 있다. NIP로 HPV 백신의 1회 접종만 지원하는 나라는 호주와 영국뿐이다.
질병청은 1회 접종을 뒷받침할 근거로 코스타리카 인도 케냐 탄자니아에서 이뤄진 임상연구를 제시했으나, 백신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국가라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발표된 1회 접종 연구들은 백신 접종 시 면역원성과 HPV의 감염 여부에 대한 효과성을 확인했을 뿐이다. 백신 접종의 궁극적 목적인 HPV에 의한 질환 예방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 1회 접종이 HPV에 기인한 자궁경부암, 항문암 등을 예방한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 특히 9가 백신 1회 접종 연구는 케냐 탄자니아에서 수행된 단 2건뿐이며, 남성 대상 효과성을 확인한 연구는 아직 없다.
김영태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최근 언론 기고에서 “HPV 예방의 우선 목표는 남녀 모두에서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나라들처럼 예방을 넘어 집단면역을 통한 퇴치까지 내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백신 접종 후 수십 년 후에나 나타나는 자궁경부암 등 HPV 관련 여성 및 남성 암의 특성상, 장기적인 백신 효과가 확인된 완전접종(9~14세는 2회, 그 외 연령은 3회)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부인종양학회 부회장인 이재관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면 소녀 접종을 처음에 12세로 시작했던 것처럼, 소년도 해당 연령에서 먼저 시행한 뒤 점차 연령을 늘리거나 1차 접종 이후 차수 접종엔 제약사의 일정 비용 부담, 바우처 형태 지원 등으로 접종자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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