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족공조를 정권 세습에 이용해온 북한 민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에서 행한 충격적 발언의 여진이 크다. 민족의 동질성을 부정하고, 민족 대단결에 기초한 평화적 통일을 비난한 발언은 그동안 김일성과 김정일이 강조해 온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선대의 유산까지 건드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3대에 걸친 세습 지도자들에게 민족 공조는 핵심 이익이 아니었고, 핵심 이익 유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속내를 마침내 인정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씨 세습 정권의 핵심 이익은 당이 아닌 수령 유일 지배 체제, 국내외의 위협으로부터 이를 수호하기 위한 군사력 배양 및 사회 통제,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경제력 유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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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 정권의 핵심이익 유지 수단
정부, 민족과 통일 입장 견지하고
무력·적화 통일 위협에 대비해야
」
북한이 남북 대화와 민족 공조를 유달리 강조한 것은 두 차례였다. 1970년대 초반 미국과 소련이 데탕트를 추구한 시기, 1990년대 초 동유럽 공산권이 대부분 개혁·개방을 추구함에 따라 북한이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큰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나 전 세계가 포스트 냉전 시대를 구가하는 시기에 북한은 극도의 폐쇄 사회를 유지하면서 오로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해 왔고, 북한 경제는 1990년 이전으로 후퇴했다. 이런 북한에 미·중의 패권 갈등에 따른 긴장 관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유리한 국제 체제 변화의 신호로 여겨졌을 것이다. 중·러의 비호를 받으며 공공연하게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러시아에 수백만 발의 포탄과 미사일을 공급한 반대급부로 북한은 경제 원조를 받고 대량살상무기(WMD) 기술 이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렇게 핵심 이익인 군사력 배양과 경제력 유지에 한숨 돌린 북한에 당면 문제로 부각한 것이 사회 통제다. 북한 정권은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동경하고 모방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번번이 좌절을 경험했고,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형벌 강화로 대응해왔다. 이런 배경에서 북한 정권이 민족의 동질성을 강조할수록 같은 민족인데 왜 이렇게 극도로 상이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지 북한 젊은이들이 의문을 더 갖게 된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일견 선대의 유산을 건드리는 것으로 보이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의 결정이 대한민국에 던진 외교·안보 차원의 시사점은 무엇인가. 우선, 정부는 민족과 통일에 대한 기본 입장을 그대로 견지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정통성은 매우 중요하다. 1973년 6·23선언,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조치를 했으나, 그러면서도 이것이 ‘통일을 이룰 때까지 과도적 잠정 조치’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런 기초 위에서 아세안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북한의 개성 공단에서 만든 제품에 대한 관세 특례 조항을 요구할 수 있었고, 탈북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 노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북한 유사시에 한국의 외교·안보적 선택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도 정통성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둘째, 북한은 평화 통일을 부정했지만, 핵무기를 동원한 무력·적화 통일에 대한 야욕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인식하는 핵심 이익 전반을 압박하는 노력을 집중해 나가야 한다. 우리와 우방국은 그동안 외교·정보·군사·경제(DIME) 전반에 걸친 대북 압력을 행사해 왔다. 이런 노력이 앞으로 더 강화돼야 북한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있다.
셋째, 한국 사회 내부에서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유지해야 한다. 북한은 그동안 여섯 차례 핵실험을 했는데, 네 차례가 김정은 집권 이후에 강행했다. 김정은은 지난 2022년에만 미사일 실험 도발을 90차례나 했다. 한국이 미국·일본 등 우방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 노력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윤석열 정부 때문에 전쟁 날 판”이라고 앞뒤가 바뀐 주장으로 실상을 호도하고 있다. 국내 일부 학자와 정치인들이 북한의 주장을 대변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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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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