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소는 누가 키우나
학부모 모임이 많다 보니 가는 곳마다 의대 증원이 화제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한 해에 5000명 이상이 의대에 진학하게 된다. 정원이 2000명 늘어나니 합격률도 당연히 높아진다. 유명 공대를 다니는 친구의 아들도 휴학을 생각하고 의대로 진로를 바꾼 수험생의 엄마도 있다. 수련의를 아들로 둔 지인은 동맹 휴학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고 선거용 선심성 발언이라는 의견도 있다. 저마다 다른 입장이지만 의대가 언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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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인기학과 정책 따라 달라져
AI 진료시대 의대 인기 식을수도
좋아서 해야 인생 후회하지 않아
」
대학의 인기학과는 국가 정책에 따라 수시로 변했다. 광업이 주요 산업이던 시대에 광산학과가 인기를 끌었고 정부가 중화학 공업을 육성할 때는 화학공학과가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될 때는 원자핵공학과가, 조선업이 활황을 이룰 때는 조선공학과가 대세였다. 전자산업이 뜰 때는 전국의 인재들이 전자공학과로 몰렸다. 국가가 주력하는 산업에 학부모와 수험생의 안테나가 같이 움직였다. 1970년대만 해도 전국 대학의 의예과 입시 순위는 최상위가 아니었고 치의예과는 공대보다 입학점수가 낮았다.
상위층 학생들이 의대에 몰리긴 했지만, 입학점수가 훅 높아진 것은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부터로 추산된다. 평생직장으로 알았던 기업이 도산하고 사무직은 물론 생산직까지 구조조정으로 밀려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내 자식만큼은 부모가 겪은 위기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인식은 교육열로 이어졌다. 사회적 대우와 고수익이 보장되는 가장 안정된 직업으로 의사가 꼽히면서 의예과는 최상위 성적의 수험생들이 지원하는 최고의 학과가 되었다. 의학전문대학원까지 설립되면서 타 전공자가 의사가 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인구는 감소했지만, 의사는 계속 증가해서 2024년 현재 12만 명에 육박한다.
그러나 지방은 여전히 의사가 부족해서 환자가 응급실을 전전하고 산모가 출산 병원을 찾아 헤맨다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된다.
지난 정부는 의대 증원을 언급했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백지로 돌렸다. 그때는 400명 선이었지만 현 정부는 2000명 증원을 발표하면서 “벼랑 끝에 서 있는 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골든 타임”이란 절박한 표현까지 썼다. 필수 의료는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와 같은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과목을 말한다. 일은 힘들고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과목이라고 한다.
지난해 지방 의료원에서 연봉 4억원을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의사가 지방에 가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수익 때문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도시와 지방의 불균형은 단순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방의 의료 부족을 의사들의 지방 의무 복무로 채운다면 진료의 질은 어떻게 될지 의구심도 든다. 도시라고 해서 모두 양질의 진료를 받는 것도 아니다. 민간 의료자본가가 지은 병원에서 의사에게 진료받을 때 짧은 면담으로 끝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의 경험상 대형 병원일수록 양상이 심했던 것 같다. 일설에 의하면 의료수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일수록 국민이 병원에 자주 가고, 의사도 많은 환자를 진료한다고 한다.
의사 수의 정원 문제는 정부와 의사단체가 협상할 문제지만 일각에서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파격적인 숫자의 의대 증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국민과 의사를 ‘갈라치기’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걱정되는 건 젊은 층의 희생과 의료대란이다. 기성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해묵은 문제는 폭탄 돌리기처럼 보였다. 전쟁은 늙은이가 일으키고 전투는 젊은이가 한다고 생각했는데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는 의대생들을 만류하면서 의대 교수들이 직접 비대위를 결성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지금 의사 증원이 심각하지만 머지않아 과거의 일로 회고하게 될 것 같다.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때 100만 명을 상회하던 수능생은 올해 30만 명 숫자로 내려앉았다. 2050년에는 10만 명 숫자로 주저앉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의사 수도 감축해야 할 상황이 빨리 올 것 같다. 인구는 감소하고 기술은 발전해서 AI가 진료하는 시대가 목전에 도래하고 있다. 의대가 인기를 누리던 시절을 옛이야기처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의 인기학과가 그렇게 명멸했듯이 말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지만 나는 의사라고 하면 『개선문』의 라비크 같은 외과 의사를 떠올리는 아날로그 세대다.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모임에서 웃으며 한 말이다. 너도나도 의대를 간다면 대체 소는 누가 키우는가?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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