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미 대선 전에 한미관계 ‘못박기’?…“트럼프 잘 모르고 하는 일”
“트럼프를 참 모르고들 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을 놓고 미국과 조기 협상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지난 트럼프 정부에서 일했던 고위 인사가 한 이야기다.
올 초부터 국내 언론에선 한·미가 12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에 조기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6년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내년부터 협상을 시작하면 됐다. 이례적으로 시기를 앞당긴 것은 다분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에 대비해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주한미군 철수 카드까지 흔들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5배까지 올려 불렀다.
그러니 한국 정부 입장에선 지금의 분담금 수준을 못 박아두기 위한 발 빠른 조처라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고위 인사는 “쓸데없이 트럼프의 관심만 끌 어설픈 수”라고 평가했다.
‘해외로 줄줄 새는 납세자 돈을 이제 미국을 위해 쓰겠다’는 구호는 트럼프 지지층 ‘마가(MAGA)’들이 가장 환호하는 지점 중 하나다.
트럼프가 러시아 침공 장려까지 운을 띄우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돈 더 내라고 협박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런 와중에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이 예년 수준으로 미리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어떨까. 트럼프의 시선은 단숨에 나토에서 주한미군으로 옮겨갈 게 분명하다. 바이든 정부의 실기를 찾느라 혈안이 돼 있던 그에게 선거 기간 내내 공격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방위비 협정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약(Treaty)이 아닌, 협정(Agreement)이다. 이론적으로 어느 한쪽이 일방 파기하려 해도 막기 힘들다. 따라서 서둘러 끝낸 방위비 협정은 트럼프 재집권 시 우선적으로 ‘전 정권 흔적 지우기’ 대상이 될 가능성도 크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물인 핵협의그룹(NCG)의 후속 단계를 문서화하려고 서두르는 것도 트럼프에겐 같은 맥락으로 읽힐 수 있다. 트럼프 2기라는 불확실성에 맞서 뭐라도 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눈에 안 띄게 할 자신이 없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미 대선이 본선 레이스에 들어갔을 때, 혹시라도 트럼프 입에서 “거봐라. 나라면 받아냈을 수십억 달러를 부자 나라 한국이 바이든에게서 떼어먹었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조기에 못 박아 놨다며 좋아하던 분담금 협정은 악몽이 될 수 있다.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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