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응급실 접수 중단…기약없는 기다림 시작됐다
19일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에 돌입한 가운데 응급환자들 중심으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의료대란’을 걱정한 시민들은 이날 새벽부터 병원을 찾았지만 시술할 수 있는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 발걸음을 돌린 경우도 있었다. 20일 본격 파업에 앞서 이날부터 전공의 가운데 일부가 근무를 중단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은 오전 11시부터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게 됐다. 부산대병원·전남대병원 등 지방 대형병원에서도 사직이 잇따르자 정부는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다.
세브란스병원에는 이날 오전 일찍부터 환자 대기 줄이 늘어섰다. 병원 3층 접수창구가 열리기도 전인 오전 8시 외래 접수 대기자는 이미 30명을 넘어섰다. “아이가 눈을 다쳐 수술을 받고 외래를 예약했다”는 김모(30)씨는 “이마저도 취소될까 봐 7시부터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암센터 접수창구에도 환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오전 8시40분 창구 대기실은 50명 넘는 시민으로 꽉 찼다. 식도암 2기 환자 김모(81)씨는 “초기 암환자들은 수술이 안 된다더라”며 “파업이 장기화하면 혹시 수술받지 못해 죽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실제 수술이 취소된 사례도 있었다. 21일 11개월짜리 자녀의 요도하열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던 A씨는 지난 16일 ‘전공의 파업으로 수술이 당장 어려울 것 같다. 다음 일정도 미정’이란 통보를 받았다. A씨는 “돌 전에 수술해 주려고 했는데 아이가 아파할까 봐 걱정”이라고 전했다.
급기야 오전 11시쯤엔 응급실에서 추가 환자 접수가 전면 중단됐다. 암환자 박모씨는 “응급실에서 2시간을 기다렸는데 방금 ‘파업으로 의사 수가 부족해 입원이 불가능하고 치료 일정도 미정’이라고 통보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세브란스병원 측은 마포소방서에도 더 이상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제주서 왔는데 2주간 통원치료 하라니” “환자 볼모로 이래도 되나”
다른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낮 12시 서울대병원 응급실엔 대기 중인 환자가 70여 명에 달했다. “평소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지만 시민들은 불안한 모습이었다. 아내의 암 증상이 악화돼 응급실을 찾은 박모(58)씨는 “새벽 2시에 왔는데 아직도 입원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공의 파업까지 예고돼 불안해 미칠 지경”이라며 “다른 병원에 가도 진료가 밀릴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지방에서 왔다가 발걸음을 돌린 시민도 적지 않았다. 제주에서 서울성모병원에 온 백혈병 환자 안모(29)씨는 “어제 응급실에서 ‘파업 때문에 상체 삽입 혈관 채취 시술을 할 수 있는 전공의가 없다’며 다른 시술로 대체하더니, 오늘은 대뜸 ‘입원이 힘들다. 2주간 통원치료를 해 달라’고 통보받았다”며 “급히 서울에 묵을 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본격 파업 돌입이 20일 오전부터라 외래진료 등은 아직 큰 차질이 없는 모습이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현재까지 수술만 절반 정도 줄인 상태”라며 “응급실 접수 중단은 응급실 과밀화 문제와 전공의 파업이 겹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20일 수술 일정 차질은 불가피하지만, 환자 긴급도에 따라 수술·입원 지연 안내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부 환자와 보호자들은 사직한 전공의들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아산병원 입원환자 김모(63)씨는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게 가장 먼저여야지, 환자를 볼모로 이래도 되느냐”고 되물었다.
장서윤·이찬규·김서원·이아미·박종서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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