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의 두 장면 [김선걸 칼럼]
공교롭게도 같은 날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KBS 대담 방영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관훈클럽 토론회는 2월 7일 한날이었다.
우연이 만드는 기억이 있다. 이날이 그랬다. 선입견 없이 봤지만 이 두 행사는 분위기부터 매우 달랐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다.
우선 한 위원장이다.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의 토론회에 초청됐다. 비대위원장이 된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을 관록의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치른 셈이다.
질문자 대부분은 정치부장 등을 거친 베테랑들이었다. 날 선 질문이 쑥쑥 들어왔다. ‘검사 독재라는 비판에 대한 생각은’ ‘대통령이 사퇴 요구했다는데 당무 개입 아닌가’ ‘이재용 삼성 회장이 무죄 판결받았는데 (검사 시절) 수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대통령에 출마할 계획이 있는가’ 등의 질문에 이어 ‘종부세 얼마 냈는지 숫자로 얘기해달라’는 개인 사안도 물었다.
김건희 여사 디올백 관련 질문도 이어졌다. 첫 질문에 한 위원장이 “몰카 공작이지만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는 답변을 하자, 곧바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아쉽다는 건가’라고 물었고, 연이어 다른 질문자가 ‘당신이 현직 검사였다면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했겠나’ ‘최 목사라는 사람의 의도는 뭐였다고 보나’ 등의 조리돌림식 질문이 이어졌다. 플로어의 언론인들은 ‘5·18 묘지 참배에 대한 의견’ ‘통일에 대한 입장’ ‘부정선거 논란과 수개표에 대한 생각’ 등을 물었다. 2시간 가까운 토론회에서 나와야 할 질문은 대부분 나왔다고 본다.
과연 이 기자회견은 한 위원장이나 국민의힘에 득이 됐을까 독이 됐을까.
효과를 단적으로 측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날 한 위원장의 발언은 하루 종일 회자됐다. 예를 들어 ‘검사 독재라는 비판에 대한 생각’을 묻자 “만약 검사 독재라면 이재명 대표는 지금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즉답했다. 발언은 모든 언론사와 포털 유튜브 헤드라인에 올라갔다. 검색어 키워드를 추산하는 구글 트렌드도 수위에 올랐다. 지지율 면에서 최소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이날 밤 10시 윤석열 대통령의 KBS 대담이 방영됐다. 형식과 내용이 모두 관훈클럽과 대조적이었다. 윤 대통령이 용산 집무실과 국무회의실을 소개하는 등 다큐멘터리 느낌으로 시작해 앵커 한 명과 대화했다. 이미 많은 평가가 나왔으니 짧은 칼럼에서 또 논하고 싶진 않다. 질문은 맥없었고 당연히 답변도 무난했다. 대통령이 열심히 준비한 게 느껴졌지만 이 정도면 굳이 특정 언론사에 나올 필요가 있었나 싶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심리적인 육탄전’이라고 부른다. 원치 않는 질문을 받아야 하고 실언으로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민주 국가의 정상들은 그 육탄전에 나선다. 왜일까?
핵심은 회견의 내용보다 그 육탄전에 참전하겠다는 의지 자체다. 기자들과 난타전을 벌이며 벌거벗듯 국정을 논하는 그 자체가 무엇이든 솔직하게 국민에게 진실을 밝히겠다는 메시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잃는 것이 많지만 얻는 것이 훨씬 큰’ 일이다. 이런 기자회견의 기회를 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반지성·반민주 세력이 딱 원하는 것이다.
정권 초 윤 대통령은 역대 처음으로 도어스테핑을 할 정도로 열려 있었다. 당시 내용을 떠나 그 태도가 자랑스럽다는 사람이 많았다.
조만간 분기점이 올 것이다. 대통령이 자청해 당당하게 회견장에 서는 순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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