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 환자 2시간 기다렸는데…" 세브란스 응급실 접수 멈췄다 [르포]

장서윤, 이찬규, 김서원, 이아미, 박종서 2024. 2. 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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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이른바 일부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에 돌입한 가운데 응급 환자들을 중심으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의료대란’을 걱정한 시민들은 이날 새벽부터 병원을 찾아 대기줄을 섰지만, 시술을 할 수 있는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 발걸음을 돌린 시민도 있었다. 20일 본격적인 파업을 하루 앞서 신촌세브란스병원은 19일 오전부터 전체 600여명 전공의 가운데 일부가 파업에 돌입했다. 이 때문에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은 오전 11시부터 더 이상 응급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태에 다다랐다.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19일 오전 8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외래 접수 창구에 환자들이 일찍부터 대기하고 있다. 이찬규 기자

이날 오전 7시 세브란스병원에는 파업 예고 소식을 들은 환자들이 일찍이 대기 줄을 형성했다. 접수창구가 열리기도 전인 오전 8시 병원 3층 외래 접수 대기자는 이미 30명을 넘어섰다. 아이가 눈을 다쳐 병원에 온 김모(30)씨는 “전에 아이가 눈을 다쳐서 수술을 받고, 외래를 예약했는데 이마저도 취소될까 봐 7시부터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암센터 접수창구에도 환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오전 8시 40분 암센터 접수창구 대기실은 50명 넘는 시민들로 꽉 찼다. 식도암 2기 환자 김모(81)씨는 “초기 암 환자들은 수술이 안 된다더라”며 “당장 수술받을 상황은 아니지만, 파업이 장기화하면 혹시 수술을 받지 못해 죽을까 봐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19일 오전 8시 40분쯤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접수창구 대기실이 시민들로 꽉 찬 모습. 이찬규 기자

“다음 수술 일정도 미정”…수술·입원 거부 잇따라


실제 수술이 취소된 사례도 있었다. 11개월짜리 자녀의 요도하열 수술을 앞두고 있던 A씨는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김모 교수로부터 오는 21일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16일 ‘전공의 파업으로 수술이 당장 어려울 것 같다. 다음 일정도 미정’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아이 돌 전에는 수술해주려고 했는데 아이가 아파할까 봐 걱정이다. 이렇게 취소되니 화가 난다”고 전했다.

급기야 오전 11시쯤엔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서 추가 환자 접수가 전면 중단됐다. 이날 응급실 진료 접수가 거부된 암 환자 박모씨는 “응급실에서 2시간을 기다렸는데 방금 ‘파업으로 의사 수가 부족해 입원이 불가능하고 앞으로 치료 일정도 미정’이라고 통보받았다”며 “이렇게 큰 병원에서 응급 진료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세브란스병원 측은 이날 마포소방소에도 여력이 안 돼 더 이상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응급실서 8시간 대기”…지방 환자 헛걸음도


다른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낮 12시 서울대병원 응급실엔 몇 시간째 대기 중인 환자들이 70여명에 달했다. 평소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지만, 시민들은 유독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아내의 암 증상이 갑자기 악화돼 응급실을 찾은 박모(58)씨는 “새벽 2시부터 왔는데 아직도 입원을 못 하고 있다”며 “전공의 파업 소식까지 예고돼 불안해 미칠 지경이다. 다른 병원을 가도 진료가 밀릴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지방에서 왔지만 발걸음을 돌린 시민도 적지 않았다. 제주에서 서울성모병원까지 치료를 받으러 온 백혈병 환자 안모(29)씨는 “어제 응급실에서 ‘전공의 파업 때문에 상체 삽입 혈관 채취 시술을 할 수 있는 전공의가 없다’며 다른 시술로 대체하더니, 오늘은 대뜸 ‘입원이 힘들다. 2주간 통원 치료를 해달라’고 통보받았다”며 “급히 서울에 묵을 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선 어머니의 항암 치료를 위해 전날 부산에서 온 손모(43)씨가 병원 측의 연락 두절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손씨는 “오늘 오면 된다고 해서 왔는데 접수처에 가니 예약이 안 돼 있다”며 “전화도 안 받고, 아무래도 파업 때문인 것 같아 답답하다. 몇 시간 더 기다려보고 다시 부산에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9일 오전 7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대기실에 있던 손모(43)씨는 어머니 항암치료를 위해 전날 부산에서 올라왔지만 담당 직원과 연락이 되지 않아 대책 없이 기다려야 했다. 사진은 손씨가 보낸 문자에 읽음 표시인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은 모습. 장서윤 기자

20일 본격 파업…“생명 볼모로 이래야만 하나”


서울의 한 병원 의료진 모습. 연합뉴스
다만, 본격 파업 돌입은 20일 오전부터라서 아직 외래 진료 등에는 큰 차질이 없는 모습이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일부가 이미 파업에 돌입한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도 외래는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자녀 식도에 문제가 생겨 병원을 찾은 구민주(35)씨는 “1시간 정도 기다리고 진료받았는데 원래 1시간 정도는 기다렸던 것 같다”며 “아침에 소아청소년과가 파업한다고 들어서 ‘혹시 우리 아이도 진료 못 받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하지만 아이나 노인에 대한 진료를 그만두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현재까지 외래 진료에는 차질이 없고 수술만 절반 정도 줄인 상태”라며 “응급실 접수 중단은 응급실 과밀화 문제와 전공의 파업이 겹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16일에 사직서를 제출한 48명 중 47명은 업무에 복귀한 상태”라며 “당장 20일 수술 일정의 차질은 불가피하지만, 환자 긴급도에 따라 수술, 입원 지연 안내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도 “응급도와 중증도를 고려해 일부 환자들의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며 “대체 인력 투입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일부 환자와 보호자들은 사직 전공의들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아산병원 입원 환자 김모(63)씨는 “병실에서 환자들이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는데 좋은 얘기는 하나도 안 나오고 의사 파업한다는 울적한 얘기만 나와 다들 걱정이 크다”며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게 가장 먼저여야지, 환자 볼모로 이래도 되느냐”고 되물었다. 초등학생 자녀가 아파 병원을 찾은 이모(40)씨는 “권리는 주장할 수 있지만, 생명이랑 직결되는 일인데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냐”며 “당장 파업을 해서 생긴 빈자리 때문에 누군가는 더 아파질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거다. 고통은 환자와 가족들의 몫”이라고 토로했다.

장서윤·이찬규·김서원·이아미·박종서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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