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의문사에 입 닫은 트럼프…헤일리 "푸틴 편이냐" 비난
러시아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47)의 옥중 의문사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대응’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사망 발표 당일인 지난 16일(현지시간)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배후 의혹을 주장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푸틴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쏟아지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 “러시아가 16일 나발니의 죽음을 발표한 뒤 트럼프는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다른 많은 국내외 지도자들과 달리 갑작스러운 사망에 애도를 표하거나 푸틴의 나발니 투옥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발니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자신을 러시아 야권 인사 나발니에 비유하는 한 매체의 글 제목 ‘바이든:트럼프,푸틴:나발니’를 그대로 옮긴 게 유일하다. 푸틴 정권이 박해했던 나발니를 바이든 정부와 싸우고 있는 트럼프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등치시킨 것이다.
짤막한 이 글 뒤에는 미 보수 매체 TIPP 인사이트에 실린 같은 제목의 사설이 첨부됐다. 이 사설은 나발니가 조작된 범죄로 기소돼 투옥됐다면서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2020 대선 뒤집기 시도 및 2021년 1ㆍ6 의회 난입 사태 등으로 4차례에 걸쳐 총 91개 혐의로 형사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발니와 같은 희생자라는 취지다.
WP 칼럼니스트 필립 범프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기간 나발니 이름을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다고 한다. 2020년 8월 나발니가 신경작용제 공격을 받아 중태에 빠졌을 당시 미국의 대응에 대한 질문을 받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자신이 러시아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고만 했을 뿐 나발니 독살 미수 사건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오는 24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트럼프와 다시 맞붙는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트럼프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헤일리 전 주지사는 이날 ABC뉴스 인터뷰에서 나발니를 “부패와 싸운 영웅”이라고 한 뒤 나발니의 죽음에 트럼프가 뚜렷한 입장 표명이 없는 데 대해 “푸틴의 편이거나, 푸틴이 정적을 살해한 게 멋지다고 생각하거나, 그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공화당에서는 헤일리 전 주지사 외에도 푸틴과 러시아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가까운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은 이날 CBS 인터뷰에서 “나발니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용감했던 사람 중 한 명”이라며 “그는 (2022년) 러시아로 돌아갔을 때 푸틴에 의해 죽을 수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결국 푸틴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나발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러시아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 했고 나는 거기에 동의한다”며 “그들이 치를 대가는 테러지원국 지정”이라고 덧붙였다.
미 국무부는 1978년부터 매년 테러지원국 명단을 작성해 왔으며 현재는 북한ㆍ쿠바ㆍ이란ㆍ시리아 4개국이 지정돼 있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방위 품목 수출ㆍ판매 금지, 테러 사용 가능성이 있는 이중용도 품목 수출 금지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공화당 푸틴파의 백악관 재장악 막아야”
공화당 내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인사인 리즈 체니 전 연방 하원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푸틴이 나발니에 한 일은 법치가 없는 나라에서 지도자가 벌이는 보복의 단적인 예”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정적을 조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트럼프라는 존재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대선의 이슈는 공화당 푸틴파가 백악관을 다시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공화당에는 푸틴을 위해 변명하는 이들이 있을 자리가 없다”고 했다.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역사는 푸틴을 위해 변명하고 러시아 전제주의를 예찬하는 미국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며 온라인 평론가들의 반발이 두려워 침묵하는 미국의 지도자들에게도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각종 안보 현안에서 논란의 한복판에 등장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동부 격전지 아우디이우카를 러시아에 내주자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예산안이 트럼프가 장악한 공화당의 반대로 하원에서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공세를 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인상을 촉구하며 분담금을 충분히 부담하지 않으면 러시아 등 적성국의 공격을 독려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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